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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Nov 16. 2022

도서관과 화장실

도서관을 생각하면 화장실이 떠오른다. 도서관만 가면 배가 살살 아프고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시립도서관에서 도서 봉사를 했다. 봉사 점수가 필요했는내가 보기에 도사 봉사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책 냄새를 맡으며 책 분류 번호대로 책을 책꽂이에 꽂다 보면 어김없이 신호가 왔다. 꽂아야 할 책은 많고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들도 번호순으로 안 되어 있는 것들이 많아서 신경이 쓰이는 가운데 화장실을 다녀와야 했다.  


대학교 때 공강 시간에 도서관에 가도 마찬가지였다. 찬찬히 책 구경을 해야지, 결심하고 갔는데 조금만 둘러보면 화장실 신호가 왔다. 도서관 나들이는 다급하게 책을 대출한 후 화장실로 뛰쳐가는 것으로 끝이 났다.


처음 한두 번은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그러한 경험이 쌓이면서 분명 책을 만드는 종이나 인쇄하는 잉크에 변의를 일으키는 뭔가가 있을 거라 믿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도서 봉사를 하던 그 도서관에 약 15년 만에 방문하여 찬찬히 책 구경을 했는데 배가 아프지 않았다. 그 후로 몇 번을 방문해도 마찬가지였다. 무엇 때문에 배가 아프지 않았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오늘 아이의 학교 도서관에 도서 봉사를 갔다. 나는 1학기에 봉사를 한 번 해봤던 터라 이번은 다소 여유 있게 봉사를 할 수 있었다. 카트에 수북이 있던 책을 얼추 다 꽂아서 몇 권밖에 남지 않았다. 사서 선생님도 점심을 드시러 가셔서 자리를 비운 상태다. 이때다 싶어 성인 책 코너에 서서 책 구경을 했다. 성인 도서는 아이들 도서보다 훨씬 적었지만 다양한 분야의 유명한 책들이 제법 있었다.


'저 유명한 책들을 언젠가 읽어봐야 할 텐데. 빌려 갈까? 근데 내 취향 아니라 읽기 싫은데. 또 집에 대출해 온 책이 3권이나 돼서 여기서 빌려가 봤자 안 읽을 게 뻔하지.'


그리고 갑자기 깨달음이 찾아왔다. 내가 도서관에 갈 때마다 화장실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내가 책들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라는 것.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은 한정되어 있는데 그에 비해 도서관에 책이 너무 많았다. 이것도 저것도 다 읽어야 한다는 불안감, 왜 더 부지런을 떨며 많이 읽지 못하는지 자책. 그랬다. '읽고 싶다'가 아니라 '읽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했으므로 나에게 도서관은 그다지 편안한 장소가 아니었다. 그래서 빌리려던 책만 검색하여 후딱 나왔고, '이런 책이 있네'라며 찬찬히 둘러볼 여유 따위 없었다.

 


나는 내가 미미한 존재라는 걸 느낄 때마다 무기력감에 시달린다. 나란 인간에 비해 이 우주가 너무 크다고 느낄 때, 세상에 좋은 음악이 너무 많아서 살아 있을 때까지 다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느낄 때, 나의 시간은 제한적인데 책이 너무 많다고 느낄 때. 일과를 다 제쳐놓고 책만 읽는다고 한들 저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세상엔 왜 이리 책이 많이 나와 있는가? 다소 발칙한 발언이지만 책이 이 정도로 많을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세상에 책이 왜 이리 많은 거냐고 속으로 구시렁대며, 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꺼내 들었다.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 책인데, 표지를 들추면서도 '지금 이곳이 아니라면 내가 평생 읽지 않을 책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치 수용소 이야기라 당연히 무거운 이야기겠지만 도입부는 생각보다 무겁거나 처지지 않았다. 몇 장을 읽었더니 좀 더 읽고 싶어졌다. 도서 봉사를 하면 책을 대출해 갈 수 있다고 하여 이 책을 빌려 왔다. 이미 집에는 타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 3권과 읽다 만 책 1권이 있음에도 말이다.



책을 들고 나서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독서를 업으로 삼은 사람이 아니다. 그 말은 즉 독서에 있어서만큼은 내가 자유로운 신분이라는 의미다. 책을 읽다가 별로 재미가 없으면 그만 읽어도 된다. 이 책을 빌리며 남은 책은 언제 읽을지 한숨 지을 필요가 없다. 이 세상에 책이 아무리 많아도 자신의 취향대로 읽을 책을 골라서 읽으면 된다. 이미 출판된 책이 많은데 또 새로운 책이 출판될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때 도서 봉사를 하던 그 시립도서관에 약 15년 만에 방문했을 때 배가 아프지 않은 이유를 알겠다. 학생 신분을 벗어난 내 몸이 먼저 도서관의 중압감을 내던져서였던 것이다. 고등학생 땐 공부 잘하려면 혹은 논술 잘하려면 신문과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고, 대학생 때는 인문학도로서 인문학 서적을 읽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다. 석사 시절에 느꼈던 압박은 '말해 뭐해'다. 사회인이 된 지금, 책을 실적 채우듯이 읽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책을 읽음으로써 어떤 성과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내 머리는 깨닫지 못했어도 몸은 느꼈던 거 아닐까.



할 일이 아무리 많아도 오늘은 오늘 할 일을 하고, 책이 아무리 많아도 지금은 지금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면 된다. 그뿐이다. 못한 일에 눈길 주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





덧붙임.


도서 봉사를 하러 도서관에 들어섰을 때 마침 우리 아이 반이 있었다. 아이 학교는 반별로 돌아가며 도서관 수업을 하는데, 마침 오늘 그 시간이 아이 반 차례였던 것이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던 우리 아이는 나를 발견하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하굣길 놀이터에서 안면을 익혔던 아이들도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와 물었다.

"여기 왜 있어요?"

"여기서 일하세요?"


책을 정리하면서 명랑한 아이들에게 대답해 주느라 정신은 없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말할 때는 발랄하지만 책을 읽을 때만큼은 집중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대견했다. 아이들 덕분에 오늘 봉사는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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