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학교 보내고 내가 주로 하는 일은 피트니스에서 운동(첫 주에 3일 하고 중단), 글쓰기(1주일에 2~3일), 마트 구경과 외식(매일)이다. 마트 구경은 식구들 뭐 먹일까 고민하느라 간 거지만, 이런 생활도 충분히 재미있고 의외로 시간이 잘 간다. 그러나 문득 이러다 쿠알라룸푸르의 주요 관광지도 가지 않고 귀국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KLCC 도심에서 살짝 떨어진 곳으로 길을 나서기로 했다.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는 국립모스크로 정했다. 아이들이 아파서 참여하지 못했던 주말 투어에 포함되어 있던 곳이다. 국립모스크는 이슬람 사원이므로 반팔과 반바지를 입으면 안 되므로 긴 바지로 갈아 입었다. 긴팔 카디건도 챙겼다. 구글맵에서 국립모스크를 찾아보니 지하철 KLCC역에서 5호선인 LRT KJL(Kelena Jaya Line)을 타고 KL센트럴(KL Sentral)역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여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역에 내리면 가깝다고 나온다.
파란색은 숙소가 있는 KLCC역, 빨간색은 환승 및 목적지인 KL Sentral역과 Kuala Lumpur역
나는 KLCC역으로 향했다. 이번이 쿠알라룸푸르에서 네 번째 지하철 탑승이다.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하고 며칠 후에 숙소 근처를 정처 없이 걷다가 마침 지하철역이 나타나서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서 한 정류장 떨어진 암팡파크(Ampang Park)라는 역이었다. 쿠알라룸푸르 지하철이 어떨지 걱정하며 탔는데 아주 깨끗하고 쾌적하여 인상이 좋았다. 두 번째로는 지하철을 좋아하는 큰아이 건이를 데리고 지하철을 탔다. 숙소 근처인 KLCC역에서 5호선을 타고 두 역을 가서 모노레일로 환승하는 노선이었다. 쿠알라룸푸르의 지하철 환승 체계는 조금 복잡하다. 어떤 역에서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환승이 가능하나, 어떤 역은 밖으로 나가서 환승역까지 걸어간 후에 표를 다시 끊고 환승해야 한다. 모노레일 환승은 후자였다. 다행히 표지판이 잘 되어 있어 모노레일 역을 잘 찾아갈 수 있었다. 세 번째로는 쿠알라룸푸르의 명동이라 불리는 부킷빈탕(Bukit Bintang)을 걸어서 갔다가 올 때는 지하철을 이용했다. 부킷빈탕역 티켓 판매처 직원에게 길을 물어봤을 때 직원이 종이 노선도를 주면서 설명해줘서 도움이 많이 됐다. 그 노선도는 지하철을 좋아하는 아이(와 나)를 위해 숙소 벽에 붙여두었다. 9호선 Kajang Line을 타고 5호선으로 환승하였는데, 새롭게 타본 9호선 역시 아주 깨끗했다.
플라스틱 토큰과 개찰구
오늘은 무려 네 번째 지하철 탑승이니 자신감이 붙었다. 나는 제법 익숙하게 기계에서 토큰을 샀다. 낯선 곳에 가니 종이로 된 지하철 노선도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 티켓 판매처에 가서 물어봤더니 종이 노선도가 다 떨어졌다고 한다. KL센트럴(KL Sentral)에서 1호선으로 환승이 되냐고 물으니 직원은 밖으로 나가서 표를 다시 끊고 타면 된다고 친절히 대답해줬다. 나는 KL센트럴역까지 가서 자신 있게 밖으로 나가 1호선 티켓 판매처에 갔다. 직원에게 한 정류장 다음인 쿠알라룸푸르까지 가는 표를 달라고 했더니 직원이 난감한 표정으로 벽에 붙은 시간표를 본다. 그러더니 다음 열차는 한 시간 후라고, 5호선을 타고 한 정류장 가서 걸어가면 된다고 말한다. 내 입장에서는 타고 왔던 열차의 반대 방향으로 다시 타고 가야 하니, 여기까지 온 게 헛수고가 되었지만 이것도 경험이다 싶었다. 1호선과 2호선은 도시와 지방 도시를 잇는 통근 열차라 열차 간격이 꽤 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거의 모든 열차가 서는 ‘쿠알라룸푸르의 서울역’인 KL센트럴역에 와본 것이 의미 있었다.
철도 교통의 중심지, KL Sentral역
이렇게 된 이상 바로 돌아가기는 아쉬워서 나는 KL센트럴역을 둘러보기로 했다. KL센트럴역은 쇼핑몰로 연결되어 있었다. 쿠알라룸푸르의 쇼핑몰은 전반적으로 크고 깨끗한데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쇼핑몰을 잠시 둘러본 후 버거킹에서 햄버거를 사 먹었다. 버거킹은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하고 처음이라 반가웠다. (숙소 근처 쇼핑몰에 KFC와 맥도널드는 있다.) 말레이시아에 와서 KFC와 타코벨에서 감자튀김을 시켜봤는데 케첩 대신 칠리소스를 주어서 의아했다. 타코벨 직원에게 케첩이 없냐고 물으니 직원은 핫소스와 파이어(Fire) 소스를 흔들어 보이며 케첩은 없고 이 소스를 안에 넣어줬다며 환하게 웃었다. 버거킹에서도 역시나 케첩 대신 칠리소스를 주었다. 여기 사람들은 감자튀김에 케첩을 찍어 먹지 않나 보다. 감자튀김에 칠리소스를 뿌려 먹으니 맛이 괜찮았다. (나는 사실 케첩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국립 모스크는 관광객에게 관람을 허용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오전 관람 시간은 9~12시인데 이미 12시가 가까워져서 안에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국립 모스크는 다음에 가기로 하고 이번에는 차이나타운을 가기로 했다. 아까 타고 왔던 5호선을 타고 파사르세니(Pasar Seni)라는 역에서 내려서 슬슬 걸으니 프탈링 야시장(Petaling Street)이 나왔다. 차이나타운을 찾기 위해 프탈링 야시장을 구경하며 쭉 걸어갔는데 프탈링 야시장 끝이 차이나타운이라고 나와서 의아했다. 결국 차이나타운은 못 찾고 온 건가 싶었는데, 다녀와서 찾아보니 내가 간 곳의 옆 골목이 차이나타운이었다. 어쨌든 프탈링 야시장에는 크리스챤디올, 샤넬, 루이뷔통 등의 글자를 단 허접한 짝퉁 가방이 많았다. 나는 글씨가 없고 마크가 작은 크로스백을 하나 골랐다. 아이 숲체험 때 물통과 간식을 넣어주기 적당할 것 같아서였다. 가격표는 35링깃(약 10,500원)이고 아저씨가 30링깃(9,000원)으로 깎아줬는데 내가 더 깎아서 25링깃(7,500원)에 샀다. 20링깃까지 깎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프탈링 야시장. 말레이어의 'E'는 '으'와 '어' 중간으로 발음한다.
탄 냄새가 나서 보니 까만 돌에서 굽는 군밤.
다음으로 걸어서 므르데카 광장(Merdeka Square)으로 향했다. 쿠알라룸푸르에 와서 쇼핑몰 안에 주로 있다 보니 더위를 별로 못 느꼈다. 또한 지난 2주 동안 비가 오거나 흐린 날씨가 많아서 더욱 그랬다. 그런데 오늘은 무척 쨍쨍하다. 파란 하늘에 눈부신 햇살, 사진 찍기 최적의 날씨다. 그러나 도보 여행에는 적합하지 않다. 지도를 보느라 손에 쥔 핸드폰은 뜨겁게 달구어졌고, 내 머리도 뜨겁게 익어갔다. 가방에 넣어둔 모자 생각이 뒤늦게 나서 모자를 썼다. 가다 보니 ‘River of Life’라는 멋진 곳이 나왔다. 비록 강물은 누런 빛이었으나 운치 있는 곳이었다. 강변 카페에 앉아서 시원한 거라도 마실까 했지만, 핸드폰 배터리가 줄어드는 게 불안해서 멈추지 않고 므르데카 광장으로 갔다.
River of life. 앞 하얀 사원은 자멕 모스크(Masjid Jamek)
므르데카 광장은 잔디가 깔려 있는 아주 넓은 광장이었다. 일단 너무 뜨거우니 풍경 사진을 대충 찍고 셀카도 찍었다. 아, 오늘 도보 여행은 나 혼자다. 말레이시아에 남편도 함께 오긴 했는데 평일에는 남편이 일을 해야 해서 나 혼자 돌아다녔다. 므데르카 광장 건너편에는 구리색 돔으로 된 건물이 있는데 이것은 정부 부처로 사용 중인 ‘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Sultan Abdul Samad Building)’이다. 한 외국인 여성이 건물을 찍고 있길래 사진 찍어줄까 물었더니 “너무 좋지! (I’d love to!)” 한다. 나의 사진 실력이 좋지 않아 그녀의 기쁨에 그다지 부응하지 못해 미안하지만, 그녀가 찍어준 내 사진은 훌륭했다. 그 사진을 보고 나니 더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잔디가 넓게 펼쳐진 므르데카 광장과 구리색 돔이 멋진 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
핸드폰 배터리가 40%밖에 남지 않았다. 오래된 핸드폰이라 배터리가 빨리 닳는다. 구글맵으로 가까운 지하철역을 찾아야 하는데 태양이 하도 강렬하여 화면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핸드폰 지도가 잘 보이지 않아 선글라스를 썼다 벗었다 했다. 조금 걷다 보니 아까 ‘River of Life’에서 봤던 이슬람 사원이 보인다. 표지판을 보니 ‘마스지드 자멕(Masjid Jamek)’이라고 쓰여 있다. 표지판까지 세워둔 걸 보면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인 듯하다. 그러나 너무 뜨겁고 더우므로 표지판은 읽지 않기로 한다. 그 대신 ‘마스지드 자멕’이라는 지하철역이 있었던 걸 떠올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상에서 다니다 지하에서도 다니다 하니 전철) 어쨌든 제대로 안 보이는 지도 보기는 포기하고 전철 소리에 귀를 기울여 전철역을 찾았다. 계단을 올라 전철역으로 들어갔다. 마스디드 자멕역은 익숙한 5호선이므로 마음이 편안하다. 이제 표를 끊고 지하철을 타기만 하면 되니 핸드폰이 꺼져도 상관없다.
5호선을 타고 세 정류장만 가니 숙소가 있는 KLCC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에서 내리면서 속으로 ‘와! 우리 동네다.’라고 외쳤다. 낯선 곳을 돌아다니다 친숙한 동네로 돌아오니 ‘우리 동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계획을 세웠다가 바꿨다가 다시 세우며 움직인 오늘의 나들이, 정말 즐거웠다. 그래도 숙소에 오니 편하고 좋다. 역시 집이 최고야!
* 므르데카 광장: 195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이 선포된 광장 (출처: 네이버 여행 정보)
* 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 영국 건축가 AC 노먼의 대표작으로 영국 통치 시기인 1897년에 지어졌다. 중앙에는 건물의 상징인 인도 사라센 양식의 41m 시계 탑이 있고 그 양쪽으로 계단이 있는 두 개의 타워가 있다. 시계 탑과 타워는 구리로 된 양파 모양의 돔이 씌워져 있다. 식민지 통치를 위한 여러 정부 부처로 사용되었다가 현재는 정보 통신과 문화 관련 정부 부처, 일부는 박물관으로 개방되고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 자멕 모스크: 1909년 건립된 모스크로, 국립모스크가 건립되기 전(1965년)까지 쿠알라룸푸르 최고의 모스크 사원이었다. 이국적인 건축 예술을 접할 수 있는 모스크는 인도 무굴 양식과 이슬람 양식의 영향을 받았고, 아름다운 무굴의 문양과 아치가 인상적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