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고기 천국

말레이시아에서의 외식

by JOO

* 다수의 음식 사진이 포함되어 있으니 식단 관리하시는 분께서는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큰 즐거움은 남편과 함께하는 점심 외식이다. 입맛이 까다롭고 한식 위주로 먹는 아이들을 데리고 외식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아이들은 집에 한 번 들어오면 좀처럼 나가려 하지 않기 때문에 저녁은 웬만하면 숙소에서 먹는다. 아이들을 어학원에 보낸 동안 남편과 나는 필사적으로 외식하러 숙소를 나선다.


말레이시아는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의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는 나라이며, 영국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어서 동서양의 문화가 어우러진 곳이다. 그래서 음식이 다양하다. 우리 숙소 근처에는 트윈 타워와 붙어 있는 수리아몰(Suria Mall)이라는 대형 쇼핑몰이 있어서 푸드코트부터 다채로운 식당들이 가득하다. 또한 아이들의 어학원이 위치한 애비뉴 K(Avenue K)에도 식당이 꽤 있어서 우리는 두 군데 몰에 있는 식당을 주로 이용한다.


우리가 맛있게 먹었던 음식은 애비뉴 K 1층, 아니 G층에 있는 딤섬 집 돌리(Dolly)이다. 층 얘기가 나와서 살짝 짚고 넘어가자면, 말레이시아 건물은 1층이 1층이 아니다. 영국의 영향을 받아서 우리가 말하는 1층은 Ground Floor, 즉 ‘바닥층’이라고 부르고, 그 위층이 1층이다. 쇼핑몰에 갈 적마다 어찌나 헷갈리던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게 다반사다. 애비뉴 K 같은 경우에 G층 다음 M층이 또 있고, 그다음부터 1층, 2층이라 더욱 헷갈린다. 아이들의 어학원은 2층이니 에스컬레이터로 가면 금방 가겠지, 생각했다가 실제로는 4층이라 꽤 오래 걸렸던 적이 많았다.


다시 돌리 딤섬 집 얘기로 돌아가자면, 이곳은 우리 가족이 쿠알라룸푸르에서 처음으로 갔던 식당이다. 도착한 다음 날 오전 어학원과 마트, 환전소 등을 소개해주는 현지 오리엔테이션을 했는데, 끝나고 나니 점심때였다. 허기지는데 아는 식당은 없어서 G층에 큼지막하게 보였던 돌리 딤섬으로 갔다. 아이들에게 볶음밥과 탕수치킨(Sweet and sour chicken)을 시켜주고, 남편과 나는 딤섬류를 시켜보았다. 큰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탕수육이고 큰아이가 싫어하는 음식은 닭고기지만, 이슬람 국가에서 돼지고기 음식은 찾기가 힘들다. 물론 찾으려면 찾을 수 있겠지만 우리는 아직 쿠알라룸푸르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였고 배가 고팠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탕수 치킨은 탕수육과 맛이 별반 다르지 않아서 아이들이 순식간에 흡입하였다. 심지어 다 먹고 하나를 더 시켜 먹었다. 딤섬도 나오는 족족 맛있어서 놀라운 속도로 먹어 치웠다. 그 후로 돌리는 우리의 단골집이 되었다.

돌리의 탕수치킨과 각종 딤섬, 광동식 누들


말레이시아에 왔으니 말레이시아 음식도 먹어봐야 한다. 아이들이 어학원에 가 있는 동안 애비뉴 K의 지하에 있는 식당에 가서 국수류 두 종류(아삼 락사, 판미)를 시켰다. 맛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비린내가 약간 나고 많이 짰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달고 짜게 먹는 편이라고 한다.

아삼 락사(Asam Laksa)와 판미(Pan Mee)

우리 입맛에 딱 맞는 말레이시아 음식은 나시 르막(Nasi Lemak)이다. 나시르막은 코코넛 밀크, 판단(pandan) 잎을 넣고 지은 쌀밥에 볶은 멸치, 삶은 달걀, 볶은 땅콩, 오이, 삼발(sambal, 고추, 샬롯, 소금, 설탕 등으로 만드는 매운 양념) 등을 곁들인 요리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아침에 아이들을 어학원에 데려다주고 카페 앞에서 파는 삼각김밥 모양의 나시르막을 사본 게 처음이었다. 쌓여 있는 바나나잎을 벗길 때만 해도 맛이 있을지 살짝 걱정이었다. 먹어 보니 밥이 향긋하고 부드러운데다 살짝 매콤한 양념과 튀긴 멸치를 섞어 먹으니 일품이었다. 고추장 멸치 비빔밥 느낌이라 한국인 입맛에 딱이었다. 나시 르막은 말레이시아인들이 즐겨 먹는 아침 메뉴라 노점을 비롯한 카페, 빵집 등에서 많이 파는 것을 볼 수 있다. 이후에 토스트 박스(Toast Box, 싱가포르 카야 토스트 체인점)에서 나시 르막을 사 왔는데, 의외로 아이들도 아주 잘 먹었다. 처음에는 매운 부분 없이 밥과 계란만 주고 그다음 매운 양념을 살짝 묻혀줬더니 그 정도 매운맛은 괜찮다며 싹싹 긁어 먹었다. (내 건데…)

카페에서 아침에 팔던 나시 르막(NL이라 써있음)


수리아몰 4층에 있는 리틀 페낭 카페는 꽤 유명한 말레이시아 음식 체인점이다. 나시 르막 커리 치킨과 새우 국수를 먹었는데, 국수는 면의 종류를 선택할 수 있다. 아주 얇은 면인 비훈(Bihun)과 일반 국수인 미(Mie) 또는 비훈과 미 혼합 중 우리는 혼합을 선택했다. 새우 국수의 국물이 진하고 시원하여 해장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먹어본 나시 르막은 밥의 고소하고 달달함만 빼면 어딘가 한국 음식의 맛이었는데, 이번에 먹은 건 나시 르막에 커리 양념이 들어가니 진정한 동남아의 맛이었다. 밥에 커리 양념과 닭고기 얹고, 계란과 튀긴 멸치, 볶은 땅콩까지 얹어 먹으면 만족도가 최상이다. (쓰면서도 군침이 흐른다.)

리틀페낭카페에서 시킨 Prawn noodle, 치킨 커리 나시 르막, 로작(과일을 소스에 묻힌 애피타이저. 많이 달았다!)


매일 쇼핑몰을 돌면서 점심 외식을 하는 재미에 푹 빠졌는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여기가 이슬람교가 국교다 보니 돼지고기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수리아몰에 있는 딘타이펑은 DIN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데 일반 식당, 즉 할랄 식당이다 보니 돼지고기 요리가 없다. 소룡포 만두조차 닭고기 만두다. 육즙도 있고 나름대로 맛도 있었지만 오리지널 맛과는 차이가 있어서 아쉬운 게 사실이었다. 피자 집에 가도, 브런치 집에 가도, 타코 집에 가도 돼지고기는 없다. 소시지는 모두 치킨 소시지이다. 돼지고기를 특별히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이곳의 지독한 닭고기 사랑에 돼지고기가 그리워졌다. ‘논할랄(Non-halal)’ 식당을 찾으려면 찾을 수 있지만 지천에 깔린 게 아니므로 일부러 찾아가야 한다.



마트에서 돼지고기를 사서 숙소에서 구워 먹자며 마트 논할랄 코너에서 돼지고기와 베이컨을 사봤는데, 종류가 많지 않고 품질도 썩 좋지는 않았다. 결국 ‘이세탄(Isetan)’이라는 일본 백화점의 논할랄(Non-halal) 코너에서 돼지고기 삼겹살을 사서 숙소에서 구워 먹고 만족했다. ‘몽키아라(Mont Kiara)’라는 한인타운에 괜찮은 한인 정육점도 있다는데 택시를 타고 20~30분 가야 해서 가보지는 않았다. 최대한 숙소 근처에서 먹거리를 해결하고 있다.



점심 외식할 때 아쉬운 점 또 하나. 여행 와서는 점심을 먹으며 맥주도 한잔해야 재미가 배가되는데 술도 팔지 않기 때문에 뭔가 빠진 듯이 허전하다. 마트에 가면 논할랄 코너에서 맥주와 와인을 팔고 있어서 사다가 저녁에 숙소에서 가끔 마시고 있지만, 숙소에서 마시는 거랑 밖에서 외식하며 마시는 것은 엄연히 기분이 다른 것을. 가격도 맥주는 꽤 비싸서 살 때마다 살지 말지 망설이게 된다. 와인 가격은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도보 20분 거리에 있는 파빌리온몰(Pavillion Mall)이라는 엄청나게 큰 쇼핑몰에 갔다. KLCC에서 파빌리온몰까지는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렇게 연결되어 있는지 모를 때라 밖으로 걸어갔다. 게다가 길을 잘 몰라서 지도를 보며 30분 정도를 쉼 없이 걸었다. 그동안 실내에만 있다 보니 별로 더운 날씨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걸어보니 더위와 땀에 절여지는 기분이었다. 배고픔은 덤이었다. 파빌리온몰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띈 태국 식당에 앉았다. 그런데 거기에는 맥주가 있었다! 망설일 것도 없이 바로 맥주를 시켰다. 실컷 걸은 후에 맥주를 마시니, 단 한 모금에도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팟타이(볶음국수)와 쏨땀(파파야를 피쉬 소스에 묻혀 김치처럼 만든 음식), 사테(꼬치)도 맛있었다. 그러나 가장 맛있었던 건 역시 맥주였다. 낮에 식당에서 술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흔하지 않기에 더 귀했던 것 같다.

생맥주 아닌 병맥주, 팟타이, 쏨땀, 사테



이 글의 제목은 ‘닭고기는 이제 그만! (No more Chicken)’이 될 뻔했다. 한동안 닭고기에 질려서 그 말을 달고 살았는데, 삼겹살을 몇 번 구워 먹었더니 소증이 풀렸는지 닭고기가 미워 보이지 않는다. 닭고기도 조리법이나 소스에 따라 맛이 다르고 무엇보다 이곳의 닭고기 요리와 치킨 소시지는 맛있으니까. 어차피 이곳은 이슬람 국가니 여기를 '닭고기 천국'이라 받아들이는 게 마음 편하지 않겠는가. 매일 뭘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다 보니 한 달의 반 이상이 흘렀다. 남은 기간도 잘 먹다 가야겠다.


* 모든 음식 사진은 남편이 찍음 (카페에서 사 온 나시 르막 사진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