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같은 나라 맞나요?

바투 동굴 방문기

by JOO

* 본 글은 철저히 개인적 느낌이며, 특정 민족이나 종교를 비하할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




설 연휴다. 말레이시아도 설 연휴라 월요일과 화요일 어학원 수업이 없다. 금요일 오후부터 화요일까지 4.5일의 긴 연휴에 다른 도시를 여행할까 잠시 생각했다가 가지 않기로 했다. 설 연휴에 여행을 떠나면 사람도 많고 복잡해서 고생일 게 뻔하므로. 대신, 수도권 통근열차 격인 KTM을 타고 바투 동굴에 가기로 했다.


KTM은 한 시간에 한 대꼴로 운영되므로 구글에서 KTM 시간을 찾아서 시간 계산을 미리 하고 숙소에서 출발했다. 오후에는 비 예보가 되어 있어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다. 숙소인 KLCC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KL 센트럴역으로 갔다. KL 센트럴역에서 표를 구입하며 열차 시간을 물어보니 내가 찾아봤던 시간보다 30분이 더 늦다. 내가 찾아봤던 열차 시간이라면 곧 탑승해야 한다. 혹시 직원이 실수했을 수도 있으니 승강장에 미리 내려가 보기로 한다. 내려가서 열차 시간표를 보니 두 종류가 있다. 위는 월~금 시간표이고, 아래는 토, 일, 공휴일 시간표다. 내가 찾아봤던 시간표는 평일 시간표였고, 오늘은 월요일이지만 설 연휴라 공휴일 시간표가 적용되는 듯했다. 열차 구경을 하며 기다리려 했지만 오가는 열차도 없어서 지루했다. 열차 시간이 되었는데 열차는 들어오지 않는다. 말레이어로 뭔가 방송을 하는데 지연된다는 건지, 곧 들어온다는 건지 알 수 없다. 몇 분을 더 기다리니 열차가 모습을 드러낸다.


열차는 외관이 깨끗해 보였지만, 일부 창문에는 거미줄처럼 금이 가 있었다. 열차가 달리며 창문이 깨질 일이 뭐가 있을까 싶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아이들이 돌을 던져서 창문이 깨진 거라고 한다. (관련 기사) 열차에 사람이 많지 않아서 크랙이 없는 창문 쪽에 자리를 잡았다.


드디어 출발이다. KL 센트럴역부터 바투 동굴(Batu Caves)까지는 8개 역이다. 8개 역밖에 안 되는데 왜 40분이나 걸리나 했더니 느리다. 기차 안에서 풍경이 쉭쉭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상상했었는데 아주 느리다. 그래서 40분이 걸리는 거구나. 가면서 반대편 열차도 보고 화물 기차도 봤다. 그렇게 바투 동굴 역에 도착했다.

사람들을 따라 바투 동굴 입구로 걸어갔다. 입구에서 우릴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굵은 뱀이었다. 으악! 저렇게 큰 뱀 실물로 처음 본다. 목에 뱀을 감고 있는 아저씨가 뱀을 감고 사진 찍으라며 손짓했다. 어우, 아저씨. 보는 것만으로도 땀나요. 후다닥 지나가고 싶은데 연휴라 그런지 사람이 아주 많았다. 사원까지 가는 길옆에 작은 노점상들이 줄지어 있었다. 바투 동굴은 힌두교 최대 성지이다 보니, 노점상에서 장사하는 것은 인도계 사람들이었다. 길쭉한 공작새 깃털을 팔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작은아이는 신기해했다.

“엄마, 저거 봐! 나 공작새 깃털 처음 봐!”

아이의 말에 적극적으로 호응해 주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고 악취가 났다. 바닥엔 쓰레기와 비둘기 똥이 가득했다. 노점상 옆 쓰레기통도 가득 차다 못해 쓰레기가 밖으로 다 비집어 나와 있었다. 깨끗한 쿠알라룸푸르 도심에서만 생활하다 이런 환경을 보니 매우 낯설었다.


바투 동굴의 상징인 황금빛 무루간(Murugan)상이 보인다. 후다닥 사진을 찍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무루간상에서 바투 동굴 사원까지는 272개의 계단이 있는데, 큰아이가 올라가며 세어 보니 282개였다고 한다. 잘못 센 건지, 계단이 10개 더 있는 건지 모를 노릇이다. 계단은 매우 가팔라서 뒤로 떨어질까 봐 아찔했다. (그런 무서운 와중에 남편은 나와 아이들 사진을 찍어주었다.) 게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중간에 쉴 수도 없었다. 관광객뿐 아니라 인도계 신도들도 정말 많았다. 먼저 가본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계단을 오르다가 힘들면 중간중간 쉬었다고 했는데, 우리는 앞뒤로 사람이 빽빽하게 많아서 쉴 수가 없었다. 왼쪽 계단은 과거의 죄, 가운데 계단은 현재의 죄, 오른쪽 계단은 미래의 죄를 상징하므로 가운데 계단으로 올라가서 오른쪽 계단으로 내려오는 게 좋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다. 왼쪽 계단은 한산했는데, 괜히 그 글을 따르려다 미어터지는 가운데 계단을 선택했던 게 실수였던 것 같다.


인파와 함께 맨 위까지 올라가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바투 동굴 올라가는 계단에 원숭이가 많다고 들었는데 빽빽한 인파에 놀라 원숭이도 나오지 않은 듯했다. 원숭이를 못 보나 아쉬워할 무렵, 동굴 안에 원숭이 몇 마리가 모여 있는 곳을 발견했다. 원숭이들은 관광객이 준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걸 다 먹으니 쓰레기통으로 내려와서 능숙하게 쓰레기를 뒤졌다. 비닐봉지를 뜯고, 음식물이 묻어 있는 포장지를 핥았다. 원숭이가 모여 있는 곳 옆에는 닭이 몇 마리 있었다.

“엄마, 나 닭 처음 봐!”

작은아이는 닭에게 먹이를 주는 관광객들을 보며 부러워했다. 아이들의 눈빛을 읽었는지 인도 아주머니가 아이들에게 식빵 한 장씩을 주었다. 아이들은 식빵을 뜯어 닭에게 던져주었다.

원숭이와 닭


사원에 들어가려면 맨발로 들어가야 해서 들어가지 않았다. 동굴 바닥이 더러워서 신발을 벗고 싶지 않았다. 사실 동굴이고 사원이고 냄새나는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단 생각뿐이었다. 힌두교에서는 청소하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는 건가. 사람과 동물과 먹거리와 배설물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세상? 아니면 설 연휴 기간 너무 많은 관광객이 와서 감당이 안 됐던 거였나. (연휴 아닌 기간에 갔던 사람들도 바투 동굴이 냄새나고 더러웠다고 말한 걸 보면 연휴의 문제는 아니었던 듯하다.)


272개의 계단을 단숨에 내려가서 바투 동굴 역으로 갔다. 쿠알라룸푸르로 돌아가는 열차 시간까지 아직 많이 남았지만 근처에 달리 있을 만한 곳이 없었다. 역사에 몇 개 안 되는 의자는 다 차 있었다. 관광객들은 바닥에 널브러져 앉아 있었다. 우리도 기둥이 있는 곳 바닥에 철포덕 앉았다. 기둥에 기대앉고 보니 기둥 주변에 개미가 있었다. 이런! 바닥에도 개미가 많네. 심지어 나와 아이 다리로 개미가 기어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개미를 털어내고 일어서서 열차를 기다렸다. 아이들은 가지고 온 플라스틱 빙고 게임을 하다가 칩을 자꾸 바닥에 떨어뜨려서 그만하기로 했다.

기차역 바닥에 앉아 빙고 게임


드디어 열차 시간이 되었다. 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니 잘못하면 열차에서 앉지 못할 것 같았다. 다리가 몹시 아픈데 40분을 서서 갈 수는 없었다. 노란 대기선 앞에 바짝 섰다. 열차가 들어오자마자 총알처럼 빨리 들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서양 관광객보다는 인도계, 중국계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차례차례 줄을 설 것 같지도 않았다. (편견이지만 사실이었음) 열차가 들어오고 사람들이 내리자마자 나는 양손에 아이들을 붙잡고 열차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크랙이 간 창문 자리라 꺼림칙했지만 이미 다른 자리는 다 찼으므로 그 자리에 앉았다. 남편은 사람들에 밀려 (본인 말로는 아이들을 보호하느라) 좀 늦게 탔지만 우리 아이가 “아빠, 이리 와!”라며 옆자리에 손을 올려놓은 덕에 옆에 앉을 수 있었다. 남편은 규칙을 중시하는 사람이라 이런 척박한 환경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그렇지만 이런 환경에선 억척스럽게 행동해야 살아남는다고, 이 선비 같은 사람아.



깨끗하고 깔끔한 말레이시아 생활을 하다 맞닥뜨린 바투 동굴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후각이 다른 감각보다 강렬한지, 아직도 냄새가 남아 있는 듯하다. 바투 동굴이 유명하고 의미 있는 장소이니만큼 관리를 깨끗하게 잘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다. 한 번 가봤으니 됐다. 바투 동굴이여, 안녕.




* 바투 동굴은 1878년 미국의 박물학자가 발견한 이후, 힌두교 신자가 이곳에 절을 세우면서 힌두교 최대의 성지가 되었다. 2006년 1월, 인도의 장인들이 3년간 제작한 42.7m 높이의 무루간상이 완성되면서 전 세계적인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 무루간상 옆으로 바투 동굴 사원까지는 272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272는 인간이 태어나 저지를 수 있는 죄의 수라고 한다. 계단은 3개로 나누어지는데 좌측은 과거의 죄, 중앙은 현재의 죄, 우측은 미래의 죄로 계단을 오르내리며 과거, 현재의 죄는 물론 미래의 죄까지 미리 참회한다는 의미가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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