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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Jul 06. 2023

그림책 규격 통일시켜

초등학교 도서관 자원봉사 날. 반납 도서들을 도서분류 번호에 맞게 책장에 끼우는 작업은 즐겁다. 정해진 규칙에 맞게 잘 배열하고 나면 희열이 느껴진다. (그렇게 정리가 좋으면 집에서도 정리하며 살지 그러냐, 라는 말은 사양한다. 우리 집은 규칙 없는 정글이다 ㅋㅋ)


초등학교 도서관엔 두 구역이 있다. 신발을 신는 구역과 신발을 벗는 구역. 신발을 신는 구역에는 초등 중고학년 도서와 성인 도서가 있다. 신발을 벗는 구역에는 초등 저학년이 읽을 만한 그림책이 있다. 예상 가능하겠지만 이 그림책 구역이 아주 정글이다. 일단 협소한 책장에 많은 그림책이 끼워져 있다 보니 책장이 뻑뻑하다. 그리고 분류 번호대로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은 곳이 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책을 빼서 읽고 제자리에 다시 꽂기란 어려울 것이다. 매일 오전 봉사자 엄마들이 와서 정리하지만, 매 수업 시간 아이들이 오기 때문에 역부족이다. 이쪽 책장만 보면 대체로 잘 배열되어 있나 싶다가도 옆 책장으로 넘어가면 '가만? 아까 813.8 ㅊ이 저쪽에 있지 않았어? 여기 왜 또 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눈에 걸리는 책들을 꺼내 재배열을 한다. 그러나 봉사 시간 내에 해야 하기 때문에 반납 도서들을 꽂으면서 기존 책장은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정리한다. 마음 같아선 처음부터 끝까지 싹 다 정리하고 싶지만 시간 면에서나 체력 면에서나 무리다.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여 현기증이 나고 땀까지 한 바가지 났다.  


책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나고 '아 정리 다했다!'라는 희열을 느끼려는 찰나, 뭔가 걸린다. 왜 이리 안 깔끔하지? 책이란 모름지기 가지런해야 하는데 울퉁불퉁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에 새삼 가슴이 답답하다. 아니, 그림책 규격 무슨 일이야?  

크기가 저마다 다른 그림책


판형은 인쇄물 크기의 규격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서적이나 잡지의 판형은 인쇄지의 A전지, B전지를 재단하여 16절이나 32절 등의 치수, 즉 A5판, B5판, B6판, A4판 등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그림책은 판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림책은 판형 자체가 이야기와 내용의 연장선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출처: https://twojstory.com/5)


그림책 크기가 대체 그림책 내용이랑 무슨 상관이람? 난 다 모르겠고 앞으론 그림책 규격 통일시켜!


그렇게 세상의 그림책 규격이 다 통일되었다. 모든 책은 책장에 똑바로 가지런히 꽂히게 된다. 책장 높이에 맞지 않을 정도로 높아서 가로로 눕혀 꽂아야 하는 책도 이제 없다. 그림책의 높이가 같기 때문에 책장의 높이도 동일하다. 여길 봐도 저길 봐도 반듯반듯하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그런데 한 규격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사이즈 제작을 허용해 달라는 세력이 있다. 뭐, 어린이들의 창의성을 위해 다른 규격도 허용해 달라나? 한 규격 안에 그림이며 색감이며 다양하게 담아내면 되지, 굳이 크기를 다르게 하려고 하나? 그럼 이렇게 하자. 1번 규격, 2번 규격, 3번 규격을 정해놓고 자유로이 선택하도록!


규격은 맞게 하겠는데, 가로를 세로보다 길게 하겠다고? 아니, 그럼 안 되지. 책장에 꽂으면 높이가 안 맞잖아. 규격을 3종류로만 정한 것은 가혹하다고? 그럼 5종이면 충분해? 뭐라고? 10종? 자동차 책이니 자동차 모양으로 만들겠다고? 아기들이 보기 편하게 손잡이가 있는 책을 만들겠다고? 그림책의 규격을 아예 자유롭게 해달라고? 그럼 책장에 꽂았을 때 통일성이 없잖아, 통일성이!!!   

손잡이가 있는 책(출처: 네이버 블로그 러블리쏭)과 자동차 그림책(출처: 당근마켓)




그렇게 혼자 실없는 상상을 한다. 자유가 중요한가, 규칙이 중요한가. 난 무분별한 자유보다는 제한이 있는 쪽이 더 편한 것 같은데.


아아, 이 그림책 구역에선 보람을 느낄 수 없겠어. 빨리 성인 도서 코너로 이동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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