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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Jul 12. 2023

남편이 왜 이럴까

맨스플레인(Mansplain) 단상

* 남편을 글의 소재로 쓰려니 흉 아닌 흉을 보는 것 같아서 자제하려고 노력 중이다. 나도 완벽한 인간이 아닌데 남편을 글의 소재로 쓰는 건 좀 비겁한 것 같아서. 그러나 암만 생각해도 남편을 글의 소재로 써야 재미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가끔은 남편을 써먹기로 한다.

남편, 잠시 눈 감고 있어!




나의 남편은 마초가 아니다. 성인지 감수성도 높은 편이고 말도 이쁘게(=다정다감하게) 하는 편이다. 그래서 남편과 대화할 때 어떤 코드가 심하게 맞지 않는다거나 거슬리는 말이 있다거나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문제는 시댁에서 나타난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며느리라면 시댁에서 한껏 민감해진다. 시부모님이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그곳이 그런 공간이다. 신혼 초엔 시댁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 남편과 많이 싸웠다.

"어머님은 왜 그런 말씀을 하신 거야? 자기는 그때 왜 그런 말을 한 거고?"


결혼하고 3년 즈음 지났을 때, 시댁 주차장에서 차를 타자마자 남편이 물어봤다.

"나 오늘은 뭐 잘못한 거 없어?"

남편도 그동안 편치만은 않았겠다 싶어서 이제는 일일이 남편에게 따지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시부모님의 말과 남편의 말을 안테나를 곤두세우고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각자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넘어갔다. 그 후로 우리 부부는 실제로 많이 편해졌다.



그런데 아주 가끔씩 남편이 왜 저러나 싶을 때가 있다. 시댁에서 환기에 대해 얘기할 때였다. 아버님은 알레르기 때문에 창문을 열어놓으면 재채기를 많이 하시므로 집에선 창문을 못 열게 하신다. 그래서 아버님이 나가시면 어머님은 무조건 창문을 활짝 다 열어 환기를 하신다는 얘기가 이어졌다. 그런데 남편이 한 마디 덧붙였다.

"어머니, 청소하실 때 물걸레질을 꼭 하셔야 해요. 그래야 미세먼지가 집에 안 남는대."

얼마 전 뉴스 기사에 그러한 내용이 나왔기 때문에 그 말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건 알겠다만 (사실 모르겠다), 정리며 청소며 살림 전문가인 어머님에게, 경력 45년 이상 베테랑임을 스스로 자부하시는 어머님에게 남편은 왜 저런 조언 아닌 조언을 건네는가? 나는 많이 당황했다.

어머님은 놀랍다는 듯이 답했다.

"아니, 청소할 때 물걸레질을 안 하는 사람이 있어?"


아아... 이 대화는 어디로 이어질까. 남편, 그만하면 됐어. 이제 잠자코 웃음으로 마무리해, 라는 내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남편은 쐐기를 박았다.

"아, 우리는 물걸레질 안 해서. 하하하."

하하하가 아니야, 이 사람아! 그런 말을 왜 해? 그리고 물걸레질을 안 하는 건 아니야. 내가 매번 하진 않지만 강한 퓔이 올라올 때 아주 가끔 물걸레질 한다고.


그 대화는 거기서 싱겁게 끝났다. 어머님도 딱히 별다른 말을 하시지 않았고 남편도 본인이 무슨 말을 한지도 모른 채 지나갔다. 나도 시댁에서의 대화를 일일이 따지지 않기로 했으므로 남편에게 뭐라고 하진 않았다. 그러나 이 대화는 내 맘속에 깊이 남아 청소를 할 적마다 한 번씩 울컥 올라왔다. 자기가 청소 전문가도 아니면서 어머님한테 대체 그런 말은 왜 한 거야?

  

얼마 전 체리 사건도 마찬가지다. 나는 체리를 좋아하여 초여름이 되면 미국 체리를 박스째 주문하곤 한다. 아버님도 체리를 좋아하셔서 매년 우리가 구매한 체리를 덜어서 시댁에 갖다 드린다. 그러니까 올해 처음 갖다 드린 것도 아니고 어머님이 체리라는 문물을 처음 접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남편은 어머님에게 또 조언을 건넸다.

"어머니, 체리는 식초 물에 담갔다가 깨끗이 씻어 드셔야 돼요."

어머님은 지지 않고 얘기하셨다.

"나는 과일 야채 전용 세척제로 씻지. 그거 식초로 안 돼."

다행히 남편은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고 거기서 대화가 끝났다. 나는 남편에게 표현하지 않았지만 의문이 남았다. 남편이 대체 왜 이럴까.



김혼비 작가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읽다가 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여자 취미 축구팀에는 국가 대표였다가 은퇴한 선수들이 있는데, 선출(선수 출신)은 취미로 축구회 활동을 하는 남자들에 비해 기량이나 실력이 당연히 뛰어나다. 그럼에도 남자들은 축구에 있어서는 '내가 한수 가르쳐주지'라는 강한 설명 욕구를 참지 못해 이런저런 조언을 하곤 한다. "이 언니 국가 대표 출신이에요."라고 해도 물러서지 않고 여자 국가 대표 축구 선수들은 한 번에 가면 될 걸 왜 꼬아서 가냐 어쩌고 저쩌고, 기초 체력이 부족하면 헬스 PT로 체력을 끌어올려라, 트레이너를 소개해줄까 어쩌고 저쩌고 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이다. 그렇게 '맨스플레인'을 시전 하던 남자들은 결국 경기에서 여자 선출의 우아한 플레이에 맥없이 당하고 만다. ('맨스플레인'이란 man과 explain의 합성어로, 주로 남자가 여자에게 자신이 더 해박하다는 생각으로 지식을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축구회 아저씨들과 나의 남편을 동급으로 갖다 붙이는 건 참으로 미안한 일이지만, 그래, 남편이 어머님한테 살갑게 건넸던 조언도 맨스플레인의 일종이다. 다행인 건 축구회 아저씨들이 적당한 끝을 몰랐다면, 남편은 적당한 끝을 알았다는 점이다. 적절한 시작은 아니었을지언정 치고 빠져야 하는 끝의 타이밍만은 확실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남편이 나에게 뭔가를 열심히 설명했던 것도 맨스플레인의 일종이었을까. 정치든 경제든 스포츠든 대체로 모든 영역에서 나보다 아는 게 많고 관심이 많은 남편이 나에게 조곤조곤 설명해주면 사실 나는 좋았다. 자신이 잘 안다고 거들먹거리지도 않으면서 나는 배경 지식을 몰라도 현안에 대해 간략하게 들을 수 있으니까.


결국, 설명하는 상대가 중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뭔가에 관심은 갖고 있지만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하면 좋은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상대가 더 고수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러니까 남편은 상대를 잘못 고른 셈이다. 남편, 당신이 청소와 과일 세척에 대해 조언하려던 상대는 국가 대표에 버금가는 47년 경력의 베테랑 살림꾼 주부라고!


# 맨스플레인 뜻 출처: 네이버 영어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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