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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Aug 05. 2023

양말 뒤집기

A가 말했다.

"남편이 양말을 자꾸 뒤집어 벗어놔서 짜증 나."


B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내 남편은 양말을 뒤집지 않네?"


C가 말했다.

"아니, 그걸 매번 일일이 뒤집어 준단 말이야? 그냥 그대로 빨아. 뒤집어진 채로 빨고 그대로 개어서 서랍에 넣어놓으면 내 남편은 뒤집어진지도 모르고 그냥 신어. 그리고 또 뒤집어 벗어놔. 그럼 다음번엔 똑바로 신고 갈 수 있지."


A와 B는 C의 말을 듣고 감탄했다.

"아~! 그런 방법이!!! 너 진짜 대단하다."


삼인행필유사(三人行必有師)라더니, 셋이 모이니 배움이 있다. 배우자와 사소하고 하찮은 걸로 아웅다웅하지 않고, 상대가 무디게 살면 나도 함께 무디게 삶으로써 평화를 추구하는 C는 우리의 스승이다.   




얼마 전 맘카페에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양말 뒤집다 속 뒤집어진 엄마들 모임 없나요?


'그대로 세탁해서 그대로 서랍에 넣는다'는 댓글이 상당히 많아서 (C와 같은 현자가 이리 많을 줄이야) 질문자는 한 수 배우게 되었고, 나 역시도 깊은 감명을 받았다.


여러 댓글 중에 단연코 눈에 띄는 댓글은 이거였다.

제 친구는 다른 집은 엄마가 뒤집어서 빨아 주셔? 라며 놀라더라고요. 자기네는 어릴 적부터 바지며 티셔츠며 뒤집어진 채로 빨아서 개어 주셨다고.


아아, 이토록 선구적인 현자 선배가 계시다니! 게다가 큰 웃음까지 선사해 주시고.


아이들에게 "옷 벗어놨으면 빨래통에 갖다 놔."라는 잔소리만으로도 지쳐서 양말 똑바로 벗어놓으라는 잔소리까지는 안 하고 있었는데, 하루에 양말 두세 켤레씩 갈아 신고 어김없이 뒤집어서 벗어놓는 우리 둘째 양말 더미를 보니 이젠 나도 노선을 정해야 하나 싶다. 똑바로 벗으라는 잔소리를 할 것인가, 뒤집은 채로 개어주기를 택할 것인가.


(남편은 양말을 똑바로 벗어놓고 첫째는 뒤집어 벗어놓지만 여름이라 양말을 안 신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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