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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Nov 28. 2021

마지막 잎새

출근이 다가온다

"코로나가 있어서 좋은 한 해였어!"

작년 말 우리 아이들이 한 말이었다.


"왜?"

"엄마가 집에 있었잖아."


아이들 기억에 엄마는 새벽에 출근했다가 저녁 8시에야 집에 오는 사람이었는데 작년에 사상 유례없는 코로나 사태로 재택근무와 휴직을 번갈아 하는 바람에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코로나 여파로 어려움을 겪은 업종이 한두 곳이 아닐 테지만 우리 회사는 여행 관련 업종이라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았다. 인건비를 줄여야 했기 때문에 작년부터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순환 휴직을 하게 되었다. 회사가 어려우니 직원들은 적극적으로 동참하였고, 무엇보다도 몇 년 또는 10+@년 못 쉬며 일하던 사람들이 몇 달이라도 쉴 수 있게 되어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나 같은 애 엄마들은 코로나로 아이들 등교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아이들을 돌볼 수 있어 더 없이 감사한 순간이었다.  


부서에 따라 아예 못 쉬는 곳도 있고 1년 가까이 통으로 쉬는 곳도 있는데, 우리 부서는 직원들이 순서를 정해서 한두 달 씩 돌아가며 쉬었다. 나는 이번 달에 쉰 덕분에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브런치에 글도 많이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위드코로나가 되면서 재택근무도, 순환휴직도 없어지는 모양새다. 여행 수요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고 하니 회사 생각을 하면 반갑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정상 출근을 다시 할 생각을 하니 앞이 깜깜하다. 재택근무 체제에서도 1주일에 한두 번은 회사에 출근했었다. 그 땐 집에만 갇혀 있다가 한 번씩 외출하는 기분으로 출근하여 기분이 리프레쉬되는 면도 있었지만 매일 사무실 출근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게다가 각종 지저분하고 골치 아픈 일들이 날 기다리고 있다. 일에도 관성의 법칙이 있어서 일할 때는 그냥 어찌저찌 하였지만 일을 안 하다가 다시 하려면 괴로움이 가중된다. 밀린 메일과 파일 정리, 공백기 동안 업무 파악도 부담이다. 내 뜻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을 거고 내 계획과는 상관없는 방향으로 일은 확장될 것이다. 우울하고 무기력한 나날들이 지속되겠지.


12월이 다가온다. 12월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무겁다.

마치 내게 남은 날이 며칠 남지 않은 시한부 인생인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쉴 때 집안을 대폭 정리하고 작은 아이 방을 만들어 줬어야 했는데...

학교 다녀와서 "엄마! 엄마! 엄마!" 아기처럼 나를 부르는 큰 아이의 얼굴도 못 보겠네.

큰 아이 교정기는 중간중간 씻어주고서 잊지 말고 끼고 가라고 당부해야 하는데...

작은 아이 아침에 유치원 데려다 주면서 대화하던 것도 즐거웠는데.

아이들과 낮 시간에 조잘조잘 얘기하지도 못 하겠구나. (너희들은 엄마의 좋은 '글감'이란다.)

이제 한동안은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없겠지.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과 낮 동안의 짧은 산책이 내 글의 원동력이었건만.


남편한테 내가 시한부인 것 같다고 말했더니

"뭐 그렇게까지. 무슨 마지막 잎새야?라고...


마지막 잎새가 지고 나면 난 회사를 나가야겠지.

누가 날 위해 저 벽에 담쟁이 잎사귀 그림을 그려주실 분!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고 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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