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냉이 된장국을 끓여 왔길래 나는 퇴근하고 맛있게 먹었어. 봄내음이 물씬 느껴지더라. 어릴 적엔 냉이며 달래며 대체 왜 먹나 싶었어. 나물 종류 전체 다. 근데 나이 드니까 입맛이 바뀌었는지 가끔씩 먹으면 참 맛있어.
엄마는 대체 어떻게 때가 되면 제철 식재료를 사다가 요리하는 걸까. 봄이 되면 봄동 무침이나 냉이된장국을, 여름에는 오이지와 오이소박이, 열무김치를, 가을에는 배추 된장국이랑 무생채를, 겨울에는 김장김치에서 뜯겨 나온 배춧잎 지짐을. 난 엄마가 되면 제철 식재료에 대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건 줄 알았는데 난 아직도 뭐가 언제 나오는지 몰라. 계절이 바뀌는 것도 잘 모르고 사는 거 같아.
이건 그런 걸까. 농경사회에선 계절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잖아. 땅 갈고 씨 뿌리고 물 주고 홍수나 태풍에 대비하다 보면 수확 때가 오고. 자연스럽게 계절의 변화를 알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살다가 산업사회가 되며 공장에서 일하다 보니 계절의 변화에 무뎌진 것처럼. 나는 회사와 집만 왔다갔다 하니 계절이나 제철음식 같은 거에 무뎌질 수밖에 없나 봐.
엄마나 어머님이 워낙 잘 챙겨주셔서 난 그저 먹기만 해도 돼서 참으로 감사해. 때로는 요즘 먹을 게 부족한 세상도 아닌데 음식에 힘을 쏟는 엄마 모습을 보면 답답할 때도 있었어. 힘들다면서도 애들 먹이라고 사골 푹 고아 곰국을 만들었을 때랑 매년 명절에 손님이라곤 우리 식구뿐인데 가짓수 넘쳐나고 상다리 휘어지도록 차렸을 때처럼 말이야. 그게 다 엄마의 사랑임을 알면서도 나는 좀 답답했어. 힘든데 그만 좀 하지, 하고.
<H마트에서 울다>의 저자 미셸 자우너는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신 후에 엄마가 해주던 한식을 떠올리며 엄마와의 추억을 상기해. 엄마와 다정한 말이 오가지 않았지만 결국 엄마와 딸을 이어주던 건 음식이었더라고. 참, 미셸 자우너는 한국인 엄마와 미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고 미국에서 사는 미국인이야. 엄마가 생전에 해주던 음식을 해보려고 한국 식재료를 파는 H마트에 가고, 한식을 만드는 유튜브를 찾아보며 엄마가 해주던 맛을 찾아가. 엄마가 살아 계셨다면 엄마에게 배웠겠지만 엄마가 안 계시니까.
나는 나중나중 아주 먼 미래에 엄마가 해준 어떤 음식들이 떠오를까 생각해봤어. 엄마는 된장국을 자주 끓여서 된장국 생각이 날 거 같아. 그리고 엄마표 명품 더덕구이. 오이볶음이나 감자채볶음 같은 반찬도 많이 생각나겠지. 우리 애들은 명절마다 먹는 소갈비찜을 떠올리겠구나.
기회가 될 때마다 하나씩 배워 볼게. 참고로 엄마 여행 가서 안 계실 때 엄마가 자주 해주던 반찬인 오이볶음을 해봤는데 모습부터 맛까지 총체적으로 망했어. 얇게 썰어서 물을 짜야 하는 거 같은데 오이가 너무 두툼했고 물도 안 짜졌어. 볶으면서 양념도 뭐 넣어야 할지 몰라서 간장이랑 참치액젓 넣었는데 빛깔부터 아니더라고. 내가 만든 음식 중에 제일 맛없었던 거 같아. 감자채볶음은 얼추 비슷하게 된 거 같은데 애들이 잘 안 먹더라.
난 엄마 음식이 아직 고프니 엄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어.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할게. 엄마,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