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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Feb 05. 2022

방구석 글쓰기

나의 글쓰기를 아이들에게 알리지 말라

모두들 바쁜 가운데 글을 쓴다. 글을 쓰기 위해 잠을 줄여 새벽이나 밤 시간을 할애하는 분도 있고 지하철 출퇴근 시간을 활용하는 분도 있고 살림과 육아의 틈새 시간을 이용하는 분도 있다.


나는 일단 출근 시간에는 무조건 잔다. 새벽 시간엔 제정신이 아니고 한숨 자고 일어나야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하철 기점에서 타므로 앉아서 잠을 청할 수 있다.


회사에선 일에 잠식당해 글을 쓸 상태가 아니다. 워커홀릭도 아닌데 머릿속에 온전히 일 생각뿐이다. 그러나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은 몰래몰래 틈틈이 본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읽는 건 가능하다.


퇴근해서는 두 아들의 조잘대는 말을 듣느라 제정신이 아니다. 아이들의 저세상 텐션을 감당하기엔 내 에너지가 부족하다. 아이들은 어떻게 저렇게 쉬지 않고 말을 할까? 이미 많이 말하고 있는데 서로 말하겠단다. 서로 자기 말을 끊지 말란다. 엄마는 왜 대답을 안 하냔다. 얘들아, 엄마한테 말 걸지 말고 제발 TV를 봐다오!


그러다가 9시가 넘으면 급격히 화가 난다.

숙제하라고! 목욕하라고! 양치하라고! 이제 자라고!

10시 반까지 전쟁을 겪은 후 아이들을 재우면서 같이 잔다. 내가 먼저 잠드는지도 모른다.


잠이 부족하여 몸에 이상이 나타났던 경험이 몇 번 있었다. 밤 시간을 그대로 흘려버릴 수 없다며 스트레스를 풀고 자던 습관이 도리어 병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요새는 나 스스로에게 왜 잠을 줄이지 못 하냐고 다그치지 않는다. 잠을 줄일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없는 사람도 있겠지, 한다. 원래 나는 쉽게 잠들지 못 하던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잠드는지도 모르게 뻗어 자는 게 요샌 좋다.


어쨌든 이렇게 정리해보니 평일엔 분명히 글을 쓸 시간이 없네.



주말에는 아이들이 TV 보는 시간이면 안방 화장대에 짱박혀 노트북을 켠다. 언제 아이들이 들이닥칠지 몰라 마음이 급하다. 등받이가 없는 스툴은 나를 방해할 수 없다. 어차피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아이들이 오면 인터넷 뉴스를 보고 있던 척 황급히 창을 바꾼다.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지 않을 것 같으면 아예 핸드폰으로 쓴다. 애들한테 엄마는 핸드폰을 붙잡고 사는 사람이므로 그 오명을 굳이 벗으려고 하기보다는 최대한 활용한다. 그래, 얘들아, 엄마는 핸드폰 중독자야.


글을 쓰는 게 아이들에게 왜 비밀이냐고? 왜 비밀인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아이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

다른 아이들도 그렇겠지만 우리 아이들은 수집된 정보를 확성기처럼 동네방네 다 떠든다.

"나도 책 만드는데 우리 엄마도 글 쓴대!"라고 말할 게 뻔하다.

아, 상상만 해도 너무 싫다.


그리고 첫째 아이는 디테일 대장이다.

내가 재택근무를 할 때면 옆에 와서 사내 메신저에 뜬 사람들을 가리키며 이 사람은 직급이 뭔지 묻고, 이 사람은 못 보던 사람인데 딴 부서 사람인지 엄마네 부서에 새로 온 사람인지 묻는다.

나는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뭔가를 물어보면 최대한 성심껏 답변을 해줬다. "몰라도 돼."란 말을 하기가 싫었다. 그 결과, 원래도 디테일을 중시하던 아이가 디테일 +1을 획득했다. 후덜덜~


어쨌든 큰 아이에게 글 쓰는 걸 들키면(?) 브런치에 대한 정보부터 그간 써온 글이 탈탈 털릴 것이 자명하다.


"엄마, 뭐 해?"

"응, 아니야."

"왜 자꾸 아니라고 해? 뭐 하는데?"

"그냥 엄마 하는 게 있어."

"맘카페에 글 써?"

"어, 뭐 그런 거지."


아이가 질문을 바꿔서 묻는다.

"엄마, 요새 자주 들어가는 사이트 어디야?"

"뭐, 다음, 네이버, 브... (앗! 당할 뻔했다) 엄마가 들어가는 사이트를 네가 왜 알려고 해?"

"아 그래? 알았어."


"엄마, 핸드폰에 이 사진은 뭐야? 인사이드 아웃 그림 왜 다운받았어?"

"엄마가 쓸 데가 있어서."

"엄마, 으하하. 혀 내밀고 있는 애 사진은 뭐야?"

"그것도 엄마가 필요한 데가 있어서 다운받은 거야."


얘들아, 엄마에게 관심 좀 갖지 말아줄래? ㅠㅠ

아이들에게 글쓰기 커밍아웃을 할 때까지 은밀한 방구석 글쓰기는 계속될 예정이다.


+ 오늘은 남편이 애들을 데리고 나간 덕분에 식탁에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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