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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Feb 11. 2022

대게는 죄가 없다

가끔 진지한 글인데 맞춤법이 틀린 단어가 섞여 있을 경우 읽다가 확 몰입이 깨진다. 내가 요즘 많이 거슬리는 단어는 '대게'다. '대체적으로, 일반적으로'란 뜻을 뜻하는 '대개(槪)'가 '대게'로 쓰여 있으면, 진지한 글을 읽다 말고 나는 대게를 떠올린다. '영덕 대게가 먹기는 번거로워도 참 맛있지. 내가 어릴 적엔 대게를 안 먹었는데 나이가 드니 비릿한 대게가 좋네.'라며 엉뚱한 생각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결국 한 편의 글을 다 읽었는데 기억나는 건 '대게' 뿐이다.


시간이 흐르며 언어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국어 표기법도 말의 변화를 반영하여 맞춤법이 바뀐다. 현세대는 말할 때 'ㅐ'와 'ㅔ'의 발음에 구분이 없기 때문에 언젠가 'ㅐ'와 'ㅔ'의 표기가 하나로 통일되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나 역시 'ㅐ'와 'ㅔ'의 발음이 동일하니 쓸 때 헷갈리는 단어들이 있다. 예를 들어 '배낭을 메다'는 아무 생각 없이 '베낭을 매다'로 썼다가 뭔가 이상해서 지운 적이 있다. 등에 매는 보따리인 배낭(背囊)을 떠올리면 'ㅐ'와 'ㅔ'가 헷갈리지 않는다. '매다'와 '메다'는 부끄럽지만 난 진짜 자주 헷갈린다.


그러나 '대개'를 틀리는 건 이해가 잘 안 간다. '대개'의 한자를 모르더라도 '대략' '대체로'라는 뜻을 떠올린다면 '대게'로 쓰는 일은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에 아주 거슬리던 단어는 출근길에 지나가는 가게 앞 간판에 쓰인 '갈치속젖'이었다. 이건 뭐, 거대 갈치 우유 그런 느낌인가? 아무리 신경쓰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리며 걸어도 '갈치속젓'으로 고쳐주고픈 마음이 간절했다. 


또 일하면서 알게 된 어떤 과장님은 매번 '젓가락'을 '젖가락'이라고 썼다. 친한 사람이면 슬쩍 알려줄 텐데 잘 알지도 못하는 분이 매번 '젖가락'으로 쓰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맞춤법에 관해 생각하다 보니 내가 난생처음 받아본 러브레터가 생각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 앞 속셈학원 아들내미였던 같은 반 남자애가 난데없이 나한테 편지를 들이밀었다. 대화해 본 적도 없는 애였는데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더 당황스러운 것은 삐뚤빼뚤한 글씨에 맞춤법이 잔뜩 틀린 편지였다. 멋들어진 편지를 받았던들 기뻐할 나이는 아니었지만, 그런 엉망진창 편지를 받으니 정말 너무 싫었다. 나는 울며불며 엄마에게 편지를 보여주었고 육아가 처음이었던 엄마도 (나는 첫째 딸이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서 선생님한테 그 편지를 보여줬다. 결국 선생님은 그 남자애를 불러서 혼을 냈고, 나에게 앙심을 품은 남자애는 속셈학원 옥상에서 하교하는 나에게 돌을 던졌다. (다행히 맞지는 않았다.)


상훈아(가명), 용기를 내서 편지를 썼을 텐데 그렇게 대처해서 미안해. 그렇지만 그런 편지라면 지금 다시 받아도 단박에 거절할 거 같아. 맞춤법만은 제발 지켜서 써줘.  


대학 와서 연락하게 된 남자 사람도 혹여나 문자 보낼 때 상습적으로 맞춤법을 잘 틀리면 내 마음 한편에서 '미안하다. 너와는 발전 가능성이 없구나. 우린 여기까지인가 보다. 빠이, 사요나라, 짜이찌엔.'을 외치게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맞춤법에 굉장히 능하거나, 맞춤법에 집착하는 인간은 아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말과 괴리가 있는 표기법에는 답답함을 느낀다. 


내가 가장 답답했던 것은 짜장면을 짜장면이라 하지 못했던 거였는데, '짜장면'도 '자장면'과 함께 맞는 표기로 인정해 주면서 속시원함을 느꼈다. 그다음에 꼭 좀 바뀌었으면 하는 단어는 '바라다'이다. 통상 "바랬어."라고 말하는데 "바랐어."라고 억지로 말하거나 쓰려면 몸이 뒤틀린다. 국어학자님들, 기본형 '바라다'는 그대로 놔두되 활용형은 '바랬다'도 인정해 주시면 안 될까요?  



반면에 재미있는 오타는 또 엄청 좋아한다. 가끔 나오는 오타가 삶의 소소한 기쁨을 준다.

오늘 아침에 회사에서 메일을 받았다.


자료를 취합하여 **본부로 넘겨야 하니, 각 팀에서는 빠른 회식 부탁드리겠습니다.


발신자가 분명히 몰라서 '회신'을 '회식'이라고 쓴 건 아닐 테고 바쁜 가운데 쓰느라 오타를 냈을 게 자명하다. 알면서도 이 사람이 요새 회식을 못해서 회식이 고팠나 싶고, '빠른 회식'은 뭐 아침부터 하는 회식인가, 아니면 1차만 하고 끝내는 회식인가 상상하다가 혼자 실실 웃어댔다.



돌아 돌아 많은 얘길 했지만 결론은 진지한 얘기를 전달하고자 한다면 맞춤법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처럼 산만한 독자한테는 글의 메시지는 남지 않은 채 '대게'만 남을 것이다. 

영덕 대게는 죄가 없다.



이미지 출처: 국립국어원,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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