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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똠또미 May 08. 2024

그늘은 더 큰 그늘을 만든다

어둠의 그늘을 뚫고 나오기

실수는 한 번이면 충분해



생각을 하다 보면 끝없이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은 실제일 수도 혹은 거짓일 수도 있다.


그 생각들이 기분 좋은 상상이라면 상상후에 느끼는 즐거움에 단맛을 느끼기도 하지만 현재 내 삶과 다른 너무나 허상적인 공상이라면 현재를 더 씁쓸하게 만드는 기분이라 난 기분 좋은 상상을 잘하지 않는다.


반대로 가끔 심각하게 부정적인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기억하기 싫은 어린 시절, 수치스러울 정도로 부끄럽게 실수했던 과거의 행동을 되짚어가며 느끼지 않아도 될 부정적인 감정을 모조리 느껴버리려고 한다. 그럼 그 기억과 감정이 현재를 넘어 미래까지 영향을 주는 상상을 통해서 점차 조현병처럼 망상을 하며 타인의 행동을 의심하고 되짚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굳이 부정적인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이런 상상을 하는 건가 싶지만 부정은 부정하는 것을 부정한다는 것처럼, 내 생각은 안 하려고 할 때 더욱더 선명하고 명확하게 와닿는다.


그렇게 부정적인 생각의 그늘은 나를 그 안에 가둬놓고 더 큰 감정의 태풍을 만들며 빠져나갈 수 없는 그늘을 만든다.




종종 상담에 오는 아이들 중 손목에 상처를 만들어 오는 아이들이 있다.

그 흔적이 ‘나를 좀 봐줘.’의 신호로 존재를 토해내기도 하지만, 그중 유난히 아파 보이던 아이. 정말 삶의 마지막을 긋고자 깊게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시도를 했다고 느껴지던 아이가 있었다.


왜 그런 시도를 했는지 물어보는 것조차 실례가 될 것 같았다. 어쭙잖게 아이를 위로하고 공감하는 사람으로 비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쉽사리 상처에 대해서 질문을 하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아이의 손목에 남은 상처를 보지 않기 위해 더 부단히 애를 쓰던 초보 상담사였다.


그렇게 내가 부정하고자 했지만 만날 때마다 손목의 상처를 열심히 숨기고 오는 아이의 모습을 부정할수록 나는 더 괴로워졌다.

7번의 만남동안 난 아이의 손목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용기를 내어서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고 다짐하던날, 아이는 상담실에 오지 않았다.


그게 나의 첫 번째 실패였다.

그 후로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겁내했던 그날의 기억이 종종 나에게 돌아온다.

그리고는 현재 그 아이가 잘 지내는지에 대한 생각을 시작으로 정말 존재하고 있을까 하는 두려움을 만들어낸다.


작가가 그린 보호의 의미


조금만 더 잘할걸. 조금만 더 빠르게 말할걸.

그렇게 조금만 더 욕심을 내다보니 과거 경험에서 시작된 생각은 점점 살을 덧붙이고 큰 공상을 만들며 두려움이라는 그늘 아래에서 떨게 만든다.


그렇게 그늘 아래에서 큰 태풍이 멈출 때까지 서있다 보면 눈물이 비 짚고 나온다.

시야가 다 가려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미안함에 눈물을 다 흘려야 한다.

더 이상 나올 것조차 없을 정도로 다 울어버리면 조금씩 앞이 보이기 시작한다.


태풍이 그늘을 다 쓸고 갔으니 이제는 나와도 된다며 다시 희망이 앞을 비춰주려고 한다.

내가 감히 희망을 느껴도 될지는 모르겠으나 앞으로 다시는 과거에 묵인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희망의 빛을 밟으려 한다.

그렇게 어둠의 그늘을 조금씩 벗어나기 위하여 한 발씩 앞을 디디려고 노력한다.




어릴 땐 몰라서 헤맸지만, 지금은 모른 척하다가 헤매버릴 수. 있다.

모른 척, 묵인했던 겁쟁이의 실수는 그늘을 만들어 버린다.

계속 모른 척하다 보면 모르는 삶 안에서 계속 더 큰 그늘을 만들어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변하고 싶었다.


그늘을 거두고 조금은 더 밝은 빛 아래에서 환희에 찬 탱고를 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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