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이 어려우니깐
스스로 평범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평범한 건 어렵다고 생각한다.
각자 다 다른 성격, 외모, 개성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평범할 수 있겠는 가.
평범함, 가장 중간의 상태로 더도 덜도 없이 그저 그런 보통의 상태.
하지만 이 보통이 난 가장 어렵다.
기분이 하루에도 수십 번 날뛰는 나는 가장 보통이 어려웠다.
실패한다는 기분이 들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내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쓰다가 조금만 오버해도 행복이 넘쳐버려서 작은 실패에 금방 우울해진다.
발란스라고 해야 할까.
내가 7살 때만 해도 우리 할머니댁은 오랜 집을 개조하지 않은 상태라 푸세식 변소가 있었다.
종종 똥차가 와서 똥을 푸는 모습을 넋 놓고 보자 아저씨는 더러운 게 뭐가 그리 재밌냐며 피하지 않는 나를 보고 신기한 듯 웃으며 이야기를 해주셨다.
과거에는 똥 푸는 사람이 양동이에 한가득 똥을 두어 번 푸면 어깨에 긴 막대기를 지지대로 두 양동이를 걸친 후 중심을 잡으며 걸어갔다고 했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마치 내 인생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똥같이 더럽고 잘 풀리지 않는 내 인생이 남들에게 오물처럼 튀어버릴까 똥이라는 짐을 짊어지고 위태롭게 조심조심 걸어가는 기분이었다.
왜 나는 이런 집에서 태어난 걸까?
뭐 하나 잘난 것 없어도 괜찮았다. 내가 잘나게 살면 되니깐.
하지만 잘난 인생을 살고자 할 때 가족이 내 짐이 되지는 말아야지.
12살 처음으로 전학을 가면서 든 생각이었다.
남들 앞에서 괜찮은 아이로 보이고 싶었던 나는 우리 가족의 모습을 들킬까 조마조마했다.
언니보다 예쁘지 않은 내 외모에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으며 언니와의 비교에서 이미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던 이제 갓 10살이 조금 넘은 나. 알코올중독의 아빠와 그런 아빠를 케어하면서 가정을 지키고자 밤낮으로 일했던 엄마.
엄마가 일을 하는 동안 난 늘 술에 취한 아빠 옆에서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까 조마조마 하며 애교를 피워대기도 했다.
그런 열등감 덩어리에겐 세상은 도전의 벽이자 평범한 척 연기를 해야 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친구들 사이에 어울리기 위해서 나는 수없이 괜찮은 척했다. 밝고 명랑한 보통의 아이로 보이기 위해서 씩씩한 척하며 하루를 보내야만 나는 보통의 아이들 사이에 티 없이 자란 아이로 비추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각자의 개성을 담고 자라는 아이들처럼 나 또한 나의 강점이라면 강점인 개성을 만들고자 부단히 애를 썼다.
한 해, 두 해, 그리고 수많은 해가 지나면서 나는 보통의 가면을 썼지만 내 안에서 들끓는 욕심을 숨기지 못하고 비범해지고 싶었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했던 나는 연예인이 되고 싶었다. 그게 실수라면 실수일까, 예쁘지 않은 아이가 연예인이 되고자 공부는 안 하고 춤추며 노래하고 연기하며 더 화려한 삶을 꿈꾼 게 잘못인가.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의 평범한 모습의 기준을 넘어선 나는 또 보통의 아이가 되지 못했다.
예고 입시 탈락은 물론이요. 성적은 중간도 미치지 못하는 상태에 애매한 재능으로 연예인은 물론 이도 저도 아닌 그냥 동네에 있을 법한 웃긴 광대.
그게 나인 것 같다.
나를 생각하면 왜 이렇게 예쁜 말들이 나오지 못하는지. 나 조차도 내가 혐오스러웠던 적도 있다.
그런 나에게 평범함은 가질 수 없는 삶들이었고, 보통은 꿈같은 목표였다.
나를 사랑하는 과정에 있는 20살 끝자락의 지금.
나를 사랑해 주는 고마운 사람들을 보면 스스로 평범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평범함이 난 너무나 부럽다.
나중에 내가 가정을 꾸릴 수 있다면 내 아이는 너와 같이 평범했으면 좋겠다.
가장 사랑받을 때 남들처럼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받으며 자라면 좋겠다.
아등바등 살기보다는 존재 자체로 사랑을 받는 아이였으면 좋겠다.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