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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똠또미 May 09. 2024

표현해도 모자랄 판에 : 5

나는 사랑을 좋아한다

사랑에 미친 x



전쟁통에도 아기가 태어난다.

‘탄생’ 얼마나 위대하고 찬란한 순간인가.


나도 그런 위대하고 찬란한 순간의 결과로 태어났다.

나의 탄생을 반겼을 엄마와 아빠는 내가 태어나리라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겠지만 이런 딸을 낳은 것을 축하해주고 싶다.


왜냐?

나는 그런 위대하고 찬란한 탄생의 전 과정을 모두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토록 사랑이 넘치는 아이를 만난 부모님을 위해서 오늘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비밀번호


21살.

늦으면 늦고 빠르면 빠르다 할 수 있는 나이에 본격적인 사랑을 시작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해서 매일 보고 싶고, 손잡고 걷는 것마저 행복이라는 것을 처음 깨달았던 나이이다.


하지만 어릴 때 사랑은 마음으로 하기보다는 보이는 것이 더 커서 그런가 혹은 나의 미숙함 때문인가.

좋은 사람이라 생각해서 만났지만 상대는 나 말고도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는 넓은 그릇의 사람이었던 것 같다. 연락이 되지 않자 찾아간 그의 자취방에서 술에 만취해서 다른 여자와 자고 있던 그 사람이 어찌나 미운지.


그래도 미운 그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지 못했다. 같이 누워있던 여자의 모습을 보고 ‘내가 남자라도 저런 여자와의 하룻밤, 아니 연애를 하고 싶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당시의 나는 나 자신에 만족하지 못하는 열등감 덩어리, 관리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160cm에 90kg에 육박하는 거구였다.


내 모습을 잘 알기에 소리 한번 지르지 않고 상황을 인정하며 문을 조용히 닫았다. 그렇게 내 첫 번째 연애는 끝이 났다.




두 번째 연애는 꽤나 연상의 남자였다.


대기업에 다니고 스마트하면서도 순박하고 착한 그가 나의 영어공부를 도와주었다. 당시 대학에 편입하기 위하여 영어 공부를 하고, 스터디 모임에서 만났던 그는 외국기업에 가기 위하여 주말마다 서울로 올라와서 공부를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열정적이고 자기개발을 잘하는 사람이 멋지다 생각해서 그런지 나는 당돌하게 그 사람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먼저 해버렸다.


어린 내가 꽤나 당돌했는지 고백을 하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 그에게 꽤나 높은 점수를 얻은 것 같았다. 연애를 시작하면서 나는 끊임없이 공부하며 운동을 병행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강남으로 가는 광역버스를 타고, 영어학원이 끝나면 2시간 스터디 후 헬스장에서 단어를 외우며 2시간씩 러닝머신을 탔다. 영어듣기를 하며 웨이트 운동하기를 반복하자 90kg의 거구는 어느새 56kg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나의 가장 예쁘고 아름다운 시기에 연상인 그와 연애를 하면서 데이트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기업 월급에 비빌 수 없는 금액으로 데이트를 하기에는 버거웠고, 착한 그는 내가 누릴 수 없는 것들을 20대 초반에 누리게 해 주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만나다 보니 그의 나이는 국가에서 지정한 당시 청년의 나이를 훌쩍 넘겨버렸고, 번번히 입사지원을 했지만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없던 그는 공부를 위해서 산 노트북을 게임용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게임에 점차 몰두 하기 시작하자 나와의 데이트보다 게임 속 사람들과의 대화가 더 즐거웠고,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도 공성전을 해야 한다며 마이크와 이어폰을 끼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 관계는 게임 속 에너지가 바닥에 다 떨어지듯 끝나버렸다.


이게 나의 실패한 두 번째 사랑이다.




23살.

상담을 받고 마음이 점차 안정이 되어가자 상담사를 하고 싶은 마음에 사람이라는 존재에게 호기심이 가득했다.

당시에 난 스스로가 똑똑하고 발 빠르며, 살이 빠져서 그런지 자신감이 넘치고 스스로 섹시하다고 생각하며 세상 무서움이 없던 아이였다.


그런 나는 실패한 연애들을 메꾸고 과거를 묻고자 새롭게 태어나고 싶었다. ‘i love my self’를 외치며 자기 사랑에 미치자 나는 모든 사람을 다 꼬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당연히 옷을 입다 만 것 같은 차림새, 옷을 걸치고 다닌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야시꾸리하게 옷을 입으니 다 꼬실 수 있었겠지만 그 당시엔 그게 예쁘고 아름다운 것인지 알았다.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몰골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랑을 전제로 하기보다는 단순한 욕구 만족을 채우며, 연애도 썸도 아닌 상태를 지속했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했기 때문에 남에게 사랑을 주거나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지속하는 게 편했다.

상처받을 일도 없을뿐더러 나 자신을 꾸미고 쓰는 비용이 가장 나를 더 사랑하는 것이라고 오만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기만족에 미쳐있던 때라 그런지 내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지 모르고 미친 듯이 육체적인 사랑만을 갈구하며 그게 사랑인지 알고 있던 치료되지 않은 병든 나르시시즘에 빠져 주변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24살 끝자락.

그때부터 내 주변을 사랑하기로 했다.

관계에 미쳐서 보지 못하고 간과했던 주변사람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열심히 모임을 만들고, 만나며 지나온 세월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족에게도 미안하고 사랑한다며 가족의 날을 만들어 보내기도 하였고, 할머니댁에 모여서 매달마다 삼겹살파티는 기본이며 그랜드마덜파티, 아르바이트 모임, 일자리 회식 등 다양한 파티를 하면 모임에 꼭 참석하기를 자청했다.


그렇게 일 년의 시간이 지나자 예전처럼 열정적인 사랑을 하기가 어려워졌다.

주변을 사랑하느라 새롭게 만나던 남자들과의 관계가 재미가 없다고 느꼈다.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베알이 꼴려서 듣기 싫거나 고백도 하지 않는 답답함에 속이 터져 죽을 것 같기도 했으며, 몸을 원하면서도 사랑을 가정해서 낭만 있는 척 떠들어 대는 것도 시간낭비처럼 느껴졌다.


나를 과하게 사랑했던 시기에 생긴 잘못된 가치관과 자기 평가, 사랑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자 새로운 사람과 사랑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아까운 사랑 낭비가 싫어서 나름 경제적으로 살자는 생각으로 가성비 넘치는 사랑을 추구하고자 했다는 게 맞는 표현 같다.




25살.

연애를 쉬자 내 안에 사랑이 더 충만하다는 오만과 함께 이제는 사랑을 나누어 주고자 상담사가 되려는 굳은 결심으로 대학원에 진학을 했다.

사람을 좋아하는지라 사람에 대한 흥미와 동기들이 어떨지 궁금했지만 망할 놈의 코로나 팬데믹이 터져버리자 모든 수업은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온라인 수업에서 만나도 진지하게 발표를 하거나 깊이 있는 공부를 하는 사람들과 말을 섞기 어려워지자 난 또 다른 사람을 찾았다.


여유로웠던 여행


심심해서 뒤적거리던 휴대폰 안에서 지금의 남자친구의 번호를 발견했다. 당시 대학원과 가까운 곳에 살던 남자친구는 생활패턴이 나와 잘 맞았을뿐더러 학부에서 비슷한 전공을 했던지라 말이 잘 통했다. 갑자기 한 연락이지만 어색할 틈 없이 자연스럽게 말이 길어지고, 결국 통화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당시의 고민, 미래의 꿈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연락은 했지만 각자의 생활이 중요하기 때문에 선뜻 얼굴을 보자는 말보다는 그냥 카톡이나 전화만 주고받을 뿐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흐르고 매일 연락만 하는 것도 웃기겠다 싶어 약속을 잡고 얼굴을 보게 되었다.


그렇게 한번 물꼬를 트자 두 번은 어렵지 않았다. 한 번의 만남 이후 왜인지 모르게 별 일이 없다면 주말에 만나는 것이 암묵적인 약속이 되었고, 사귀지도 그렇다고 방탕한 관계도 아닌 애매한 썸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익숙해져 갔다.


이대로는 놔둘 수 없는 애매한 관계에 의문이 생겼고, 내가 이 사람과의 관계를 고민하는 것에서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는 내 마음 상태를 깨닫자 먼저 연락을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고백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그와 술자리를 갖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갔다.


다짐을 하고 나가서 그런가 평소와 다른 온기, 느낌, 시끄러운 술집 안에서도 더 그에게 집중을 할 수 있었다. 소맥을 시원하게 한잔 원샷을 하고 고백을 해야겠다고 다짐한 순간 "우리 만나볼래?"라는 말을 들었다.


내 맘 속 이야기가 들린 건가 싶어 순간 놀랐지만 그 말은 내가 아닌 맞은편에 앉아있는 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이었다.


참 운 좋게도 나와 같은 날, 타이밍을 재고 있던 그의 고백에 우리는 따뜻한 봄에 커플이 되었다.


짝을 맞춰요


사랑은 받을수록 더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그 사랑받기를 당연하게 여긴다면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도 그저 나를 예쁜 인형처럼 대해주는 잠깐의 주인일 뿐이다. 사랑을 주던 주인이 떠나면 버려지기를 반복하고, 버려지는 게 싫기 때문에 더 매달리려 애쓰는 인형은 망가질 뿐이다.


여태껏 사랑을 받아왔지만 정작 나 자신만이 나를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에 잘못된 사랑으로 나를 사랑했던 것 같다. 또한 사랑을 받고 싶지만 사랑받는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내 안에 존재하던 사랑을 남발하고 다니기 바빴다. 하지만 이제는 나를 사랑하고, 안정된 사랑을 받다 보니 사랑의 모양과 형태, 질량은 다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사랑을 주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다.


감히 사랑의 양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금 당장 나를 사랑하는 만큼 표현해 줘."라고 한다면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온몸을 흔들며 자울리춤으로 사랑을 확인시켜 줄 의향도 있다. 이게 내가 사랑하는 방식이고,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의 방법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건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덕분에 가능한 것이며, 사랑을 받아보지 않았다면 사랑을 받는 것조차 어색해하며 사랑을 거절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른이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사랑이 내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으며, 이런 깨달음을 준 알려준 사람들에게 고마움과 사랑으로 화답을 하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더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남자친구는 내 과거 연애사를 모른다. 하지만 이 글을 본다면 할 수 있는 변명은? 오빠도 아직 지갑 안 돌려줬으니깐! 오빠에게 과거 있는 것처럼 나한테도 과거가 있었으니깐. 그 과거과 어쨌든 난 지금의 너를 더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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