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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똠또미 May 22. 2024

취약함을 빌미로 사과하지 마

약점을 둘러싼 이중성

아빠 없는 애?



초등학교 5학년 이사와 함께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갔다.

새로 지어진 학교라 모든 아이들이 전학을 왔었다.

작은 학교이기도 하지만 인원이 많이 없기 때문에 그 안에서 대장 노릇을 하는 것은 쉬워다.

친구관계에 목숨을 걸 때라 무리를 지어서 다니며 학교 분위기를 주름잡았던 내 인생에서 가장 전성기인 시기였던 것 같다.


나의 나약함을 들키지 않고자 강한 척을 하고 다녔으며, 나쁜 짓을 하더라도 친구가 많으면 장땡인 시기인지라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를 왕따 시키며 남에게 상처 주는 행동을 일삼았던 것 같다.

그게 죄인 것을 모르는 채로 내 맘대로 초등학교 생활을 마무리한 후 중학교에 입학했다.




동네에 모든 초등학교에서 오는 중학교는 초등학교 때와는 다른 세상이었고, 강자만이 살 수 있기 때문에 약육강식이 강한 곳이었다.

칠공주라며 설치고 다니던 초등학교 때와는 다르게 선배를 백으로 알고 지내면 학교 생활이 편한 곳. 선배를 많이 아는 친구와 친하게 지내야 했지만 난 내 힘만을 믿고 잘 살 거라는 생각에 친구에게 나를 맞추기보다는 나에게 친구가 맞춰주기를 바라며 여전히 끝나지 않은 왕놀이를 했다.


하지만 남들 눈치를 너무 안 봐서 그런지 난 이미 폐위된 왕이 되었고. 새롭게 친구를 사귄 초등학생 때 친구들은 나에게 받은 상처를 되갚고자 하는 마음에 친구 사이를 끊자며 절교를 선언하였다. 그 말이 믿기지 않자 충격을 받은 나머지 그러지 말라며 내가 잘못했다는 구질구질한 멘트와 함께 친구 사이를 잃기 싫은 마음을 간절하게 표현했지만 이미 초등학교 친구들과의 우정은 끝이 나버렸다.



친구 없는 애는 소리소문 없이 숨어 지내도 이미 전교에 왕따라는 소문이 퍼져버려서 그런지 아무도 나와 짝을 해주려 하지 않았다. 반에 숨어 지내듯 복도에 나가는 것조차 겁이 나기도 했다. 화장실에 가기만 해도 복도에서 들려오는 욕과 사늘한 시선, 수군거리는 행동들이 모두 거슬리고 나와 관련된 말을 할 것 같다는 의심이 나를 더 위축시키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너무 힘든 시기를 보내는 와중에 집에도 문제가 생겼었다.


매일 술을 드시던 아빠는 내가 5살 때부터 건강에 문제가 있으셨지만 그래도 끊지 못하는 술 때문에 결국은 중환자실에 입원을 하시게 되었다.

아빠의 병간호를 해야 하는 엄마는 나에게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으며, 그런 엄마에게 왕따를 당한다는 말은 절대 할 수 업었다. 심지어 엄마는 병원에 사시듯 하셔서 집에 오지 않는 날이 더 많으셨다. 나와 언니는 가장 중요하고 예민한 시기에 알아서 학교에 다녀야 했다. 지금도 엄마가 미안해하는 것 중에 하나이기도 하지만, 내가 엄마여도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한다.


간을 쓸 수 없게 된 아빠는 결국 간이식 수술을 받으셔야 했다. 간이식 대상 1순위였던 아빠는 운 좋겠도 일주일 만에 이식받을 수 있는 기회가 오게 되었다.

하지만 일이 너무 순탄하게 잘 풀린다면 우리의 인생은 아름다울 것이다. 야속하게도 내 인생은 아름다움과는 멀어서 그런가 이식받은 간이 잘 맞지 않자 일반병실로 돌아온 아빠는 일주일도 되지 않아 다시 또 중환자실로 입원하시게 되었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3일로 넘어가던 날 밤. 의사는 우리 첫째 이모에게 나직이 마지막을 준비하라는 언질을 해주셨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3일째가 된 날 새벽 아빠의 사망선고를 들었다.

삐-하는 기계음. 중환자실을 울면서 걸어 나오는 큰아버지. 소리를 지르며 아빠 이름을 부르는 엄마.

그때 내 나이는 14살이었다.

죽음이 뭔지도 모르는 나이에 아빠의 죽음은 혼란스러웠고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뜨거운 여름이었음에도 장례식장은 서늘했다.

장례식장에서 마저도 엄마는 오열을 하셨고, 큰아버지는 조용히 어깨를 들썩이시며 눈물을 훔치셨다.

언니는 엄마의 슬픔을 공감해 주며 엄마를 껴안고 첫째 노릇을 했다.

하지만 나는 이 상황이 장난 같았다. 어안이 벙벙했으며 사람이 어떻게 죽지? 존재가 사라지는 것을 믿지 못하였다.

그렇게 아빠의 장례식이 지나갔다.




학교에 가자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여행에 다녀온 척 아무렇지 않게 학교에 등교했지만 반 아이들은 아빠가 돌아가신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시 담임선생님이 우리 집 사정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셨고, 수업 시간마다 출석을 부르면 반장은 선생님들께 이유를 반복해서 말해야 했다고 했다. 내가 등교를 하자 괜찮냐고 물어보던 아이의 말을 통해서 상황을 전달받자 눈물이 났다.


지금까지 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창피하고 지켜오던 것들이 무너진 기분이었다.


강한 척 애쓰고 밝은 척, 명랑한 척, 괜찮은 사람이고자 노력했던 그간의 내 모습이 무너지고 가장 숨기고 싶던 가족의 모습이 들통나 버린 것 같다는 생각에 헛구역질이 났다.




아빠의 장례식을 치르고 오자 왕따 생활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냥 모든 것을 잃은 듯 한 공허한 느낌만이 가득 맴돌았다.


집에 가면 아무 말 없이 슬픔을 감추는 엄마. 집에서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농담을 하면 짜증을 내는 언니.

여전히 문제가 많은 집이지만 아무도 뭐라 할 수 없었다. 지금의 평화가 깨지면 다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생활에서 내 표정은 늘 좋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학교에서도 우중충한 내 얼굴 표정은 나아질 리 만무했고, 우울한 한 학기가 끝나기를 바라며 매일을 지옥같이 보냈다.


아니 못 지내


방학이 오기 전, 갑자기 왕따를 시킨 애들에게 연락이 왔다.

‘잠깐 나올 수 있어? 할 말이 있어.’


톡방에 여러 명의 아이들과 내가 있자 불안감이 급습했다.

또 무슨 일이 생길까?

엄마에게 잠깐 다녀오겠다고 이야기를 한 후 집 앞으로 나가자 나를 기다린 아이들이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자고 하며 나를 이끌었다.


불안해했던 것과는 다른 미묘한 분위기.

왜인지 모르게 따뜻한 분위기와 따뜻한 눈빛. 달라졌다.


아니나 다를까 나에게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는 아이들.

그리고는 아빠가 돌아가신 일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나를 위로하는 듯 걱정했다.




정말 나를 왕따 시킨 일이 미안해서였을까?

그것보단 아빠가 돌아가신 애를 구제해 주려는 동정이었다.


아빠가 아프신 것도 몰랐다며 미안하다는 아이들의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아빠의 죽음과 나의 왕따 사건은 별개이다.

하지만 나의 취약함을 빌미로 사과를 하며 자신들의 잘못을 이해받기를 발라는 것은 나를 더 우습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과를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나에게 사과를 하는 것이 아니리라 생각한다.

나에게 사과하기 이전에 그들 사이에도 균열이 있기 시작했고, 내가 학교에서 보인 모습들을 보았다면 죽기 전 사람의 얼굴과 같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나의 모습에서 정말 죽을까 걱정이 되기 때문에. 나의 죽음에 절대 그들이 관련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 한 행동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아빠의 죽음 이후 나는 왕따를 당한 아이보다는 고아처럼 부모가 없는 불쌍한 아이가 되었다.

그런 나를 왕따 시킨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나쁜 아이들이라는 부정적인 말들을 듣게 되었고, 그들도 자신의 이미지를 회복하고자 나를 위로해 주는 척, 미안한 척을 하고 다니던 것을 듣고-보게 되었다.


그런 아이들이 나에게 사과를 한다고?


내가 너무 불신하는 게 의심이 많은 피해망상자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나와 같은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다.


나를 불쌍하고 안타깝게 여기지만 뒤에서는 부모가 없다며 수군거리며 조롱하던 그 웃음들을 잊을 수 없다.

정말 미안했다면 그 순간에 사과를 하러 왔어야 했다.


너무 화가 났지만 쉽사리 죽을 수 없었다.

지금 내가 죽는다면 저 아이들은 사과를 했다는 이유로 잘못을 더 회피할 것이다.

지금 내가 죽는다면 지금까지 지켜온 내 삶들이 더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해 버리는 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을 많이 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나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상처를 주고자 하는 이유가 존재해도 그 이유가 너의 상처를 빌미로 아픔을 공감해 주는 척 상처 주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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