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코스프레'하는 사람을 멀리하세요.
'희생자 코스프레'는
자신의 책임과 잘못 등을
다른 사람에게 덮어 씌우고,
자신은 오히려 '희생자' 인척
동정심을 유발하여
사람들에게 동정과 인정을 구하며,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분위기를 조종함으로써
주변에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는
행동을 의미한다.
이 '희생자 코스프레'를 작정하고 악의적으로 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도 모르게 오래된 습관에 젖어서 전혀 계산 없이 쓰면서도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럼 우리 주변에서 누가 이 '희생자 코스프레'를 제일 많이 하는 사람들일까?
여러 가지 상황이 많겠지만, 주로 자신과 가까운 사이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부모, 자식, 배우자, 절친한 친구, 가까운 직장동료...
왜냐하면 자주 만나고 오랜 시간을 같이 생활하면서 아주 조금씩 조금씩 젖어들다 보니, 그저 그 사람의 성격이 그렇다고 생각하거나, 너무 착해서 마음이 약해서 그렇다고 착각 속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정말 그 사람의 성격이 그렇다거나, 너무 착해서 마음이 약해서 그렇다며 이해하고 살아야 한다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이 '희생자 코스프레'에 휘둘리며 자신의 몸과 마음이 피폐해질 때까지 고통을 받는 것일까?
주변의 '희생자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에게 오랜 시간을 참고 버티다가, 결국에는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서 상담을 신청하는 사람들의 경우를 살펴보기로 하자.
첫 번째, 부모님이 자식에게 '희생자 코스프레'를 무기로 쓰는 경우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제일 많은 경우로, 계산적으로 '희생자 코스프레'를 쓰거나 아니면 본인도 모르게 '희생자 코스프레'에 빠져있는 경우이다.
우리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이전에 동물적인 감각이 우선적으로 작동되기 때문에, 뭔가 부자연스럽고 불편한 감정이 강하게 올라온다면, 그 상대방이 계산적으로 '희생자 코스프레'를 이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중년을 살아가고 있는 세대의 부모님들은 70대 이상으로 전쟁의 폐허 속에서 자라고 살아오신 분들이기에 대부분이 힘든 경험과 상처를 마음에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책으로 쓰면 몇 권을 써도 모자랄 자신의 '희로애락'을 그냥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처음에는 그런 마음에 가장 가까운 자식들에게 한번, 두 번,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고, 그 이야기를 듣는 자식은 그 상처와 불행, 아픔을 고스란히 전해받으면서 공감하게 된다.
더 챙겨드리지 못하고 더 기쁘게 해 드리지 못한 자신에게 죄책감을 가지면서, 자식은 더 잘해드려야겠다고 그 한을 풀어드려야 한다고 결심하게 된다.
그러나 그쯤에서 아름답게 서로 마무리가 되면 좋겠지만, 그 적당함을 균형 잡지 못해서 이제는 점점 무거워지며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서로 반갑게 얼굴도 보고 싶고
좋은 곳도 가고 싶고
기쁘게 웃고 싶지만,
얼굴만 마주치면 곧이어 오랜 습관처럼
굳어버린 '하소연'들이 자동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별생각 없이 처음에 한두 번 이야기하다 보니, 자식들이 공감하며 관심을 가져주고 더 챙겨준다는 느낌을 받은 부모는 다음번에도 다시 그 방법을 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본인의 뜻대로 자식을 움직이고 싶을 때에도 이제는 이 '하소연'을 쓰면서 자식을 조종하고 통제하려고 하다 보니, 자식은 이제 부모가 불편하고 피하고 싶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자신들을 위해 희생한 부모님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피하는 자신을, '불효자'라 여기면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고 자신을 비난하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두 번째는, 배우자 간에 '희생자 코스프레'를 무기로 쓰는 경우이다.
흔히 보는 장면이지만, 제일 많은 경우는 부인이 남편에게 '하소연'을 하면서 남편의 관심과 인정을 구하려는 상황이다.
얼마나 알뜰살뜰하게 살림을 잘하는지, 가족들의 온갖 스케줄 관리를 해주면서 배려를 잘하는지, 시댁에는 얼마나 희생을 하는지를 구구절절 얘기하면서 자신을 대우해주기를 요구한다.
남편은 처음 몇 번은 그런 아내의 헌신과 배려에 고마움을 느끼면서 잘 대해주지만,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다"라는 옛 말처럼 반복되는 그 '하소연'에 부담감을 느끼면서 거리를 두려 한다.
남편을 자신의 영역 안에
잡아두려는 집착으로
아내는 '하소연'을 계속 쓰게 되고,
답답한 '집착'에서 벗어나려는 남편은
멀리 거리를 두고
회피하기 시작한다.
반대로, 남편이 아내에게 '하소연'을 하면서 관심과 인정을 구하기도 한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일을 하며 돈을 벌어오는지, 가족을 위해 얼마나 많은 배려를 하는지, 처가에는 얼마나 많이 베풀었는지를 구구절절 얘기하며, 자신을 대우해주기를 요구한다.
그 외에도 오래된 친구, 늘 가까이서 생활하는 직장 동료들...
이러한 관계에서도 끊임없이 이러한 상황들은 계속된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이러한 불합리한 관계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지켜야 하는 것일까?
'희생자 코스프레'가 무서운 건,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리고 가족의 인생도 망가뜨리게 된다는 것이다.
'희생자 코스프레'의 밑바닥에는
'너는 나에게 보상을 해 줘야 한다.'는
강요가 숨어있다.
주고받음이 균형을 이루어야 하지만, 이 관계에서는 이제 일방적으로 한쪽에서 끝없이 요구하는 관계로 변질되면서 '안 주면 뺏어야 한다'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마치
처음에는 '고마움'을 표하지만,
그것이 지속되면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게 되고,
나중에는 왜 더 주지 않느냐고
'비난'을 퍼붓게 되는
어이없는 상황과 같은 것이다.
에너지 차원에서 해석하자면, 자신의 부족한 에너지를 상대방에게 '하소연'하면서 계속 동정과 관심을 끌어내어 채우는 것이다.
자신의 뜻대로 상대가 움직여주지 않으면, 온 주변에 희생만 하고 베풀었던 자신이 '나쁜 상대'로 인해 이용당하고 버려졌다면서 불행한 감정을 온몸으로 내뿜는다.
이렇게 그 상대에게서 못 빼앗은 에너지를, 다른 주변 사람들의 동정과 관심을 대신 받아서 채워가는 것이다.
이 끝없이 이어지는 '희생자 코스프레'에 올가미에 빠지듯이 엮이고 나면, 이제 자신도 모르게 시간, 돈, 에너지를 그 '희생자'를 위해서 쓰기 시작한다.
이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자신에게 시간, 돈, 에너지를 쓰는 것을
'이기적'이라고 착각하게 되면서
'죄책감'에 빠져드는
어이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그러다 보니 늘 허덕이면서 더 애쓰고 더 애써 보지만, 상대의 요구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수십 년 동안 끝없이 계속되고, 나중에는 늘 애쓰고 살아가지만 나 자신의 발전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나의 인생'을 성장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
'어제의 나'보다 좀 더 나아진 '오늘의 나', 좀 더 나아진 '내일의 나'로 점점 성장하는 것이, 우리의 기본 욕구이자 권리인 것이다.
그 누구도
나 자신의 '기본 권리'를
침범하도록 방치하고 살아서는
안된다.
무조건 끝없이 부모와 가족을 우선으로 챙겨야 한다는 왜곡된 고정관념에서 빠져나와서, 할 수 있는 만큼만 배려하고 나머지는 의존에서 벗어나 '그들의 몫'으로 살 수 있도록 더 깊은 배려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우리에게 박혀있는 왜곡된 관념들을 계속 점검하면서, 불필요한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자.
나 자신을 위해서
우선으로 에너지를 쓰며
'나의 성장'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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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강] -'희생자 코스프레', 그 사람에게 휘둘리고 계시나요? // 죄책감 없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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