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가 아니라 방법이 답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다. 음식은 좋아하는 맛으로 조절해서 만들면 되지만 문제는 영양제 챙겨주는 일이었다. 영양제를 꼭 먹여야 하는 건 아니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비타민 D나 아연, 유산균 정도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 영양제는 젤리나 츄잉 사탕, 가루 형태로 달달한 맛을 더해서 나온다. 첫맛이 달긴 하지만 아무래도 특유의 약 맛이 끝에 남는다. 젤리다, 사탕이다 하며 좋아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잘 먹으려 하지 않았다.
둘째는 한동안 먹는 척하며 식탁 옆 선반에 몰래 버리다 들킨 적이 있었다. 3년 전이었다. 어린이용 종합 비타민과 아연을 매일 아침마다 챙겨주었다. 약간의 오묘한 맛이 별로였는지 아이들은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툴툴거리던 아이들이 언젠가부터 조용히 잘 먹었다. 이젠 나아졌나 싶었다.
부엌 청소하던 중 선반 가장 아래 칸에서 곰팡이 핀 한 덩어리의 무언가가 발견됐다. 영양제였다. 범인은 둘째였다. 나는 크게 화를 냈다. 아직 다섯 살이던 아이를 몰아붙였던 기억이 지금도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한다.
최근에 첫째가 배 아프다는 말을 자주 하길래 유산균을 먹여보기로 했다. 검색해 보니 '키즈텐 유산균'이 유명한 것 같았다. 블루베리 맛이라 아이들이 잘 먹는다고 했다. 단점은 양이 정말 많다는 것이었다. 블루베리 향이 유산균 특유의 맛을 덜어줄 걸 기대했다. 받아보니 내가 생각한 양의 딱 두 배였다.
아이들에게 하나씩 까주었다. 반응은 좋지 않았다. 첫째는 호기롭게 가루를 입에 털어 넣었다가 싱크대 앞에서 캑캑거리며 뱉어냈다. 둘째는 손가락에 가루를 찍어 혀에 대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내 입에는 새콤하면서 먹을 만했는데 아이들은 도저히 삼킬 수 없다고 했다.
블루베리 요거트에 몰래 섞어줘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둘째가 시원한 걸 찾길래 요거트를 준비해 줬다. 아이는 아무 의심 없이 먹기 시작했고 금세 바닥까지 싹싹 긁어가며 다 먹었다. 깨끗한 그릇을 건네는 아이에게 말했다. 사실 어제 먹은 유산균 한 봉지 섞었노라고. 아이는 전혀 몰랐다며 너무 맛있었다 했다. 내일도 똑같이 먹고 싶단다.
누나한테는 비밀로 하자고 했다. 선입견 갖지 않도록.
첫째가 학원 마치고 저녁 늦게 집에 왔다. 요거트를 주겠다고 하자 옆에 있던 둘째가 참지 못하고 비밀을 폭로했다. 아이는 요거트 제조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다. 그릇에 블루베리 요거트를 반쯤 담고 가루 한 봉지를 털어 넣었다. 숟가락으로 열심히 저어 가루를 없앴다.
아이는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요거트를 받아 들더니 한 숟가락 입에 떠 넣었다. 고개를 15도 옆으로 돌린 채 맛을 탐색했다. 어떻게든 유산균 맛을 느껴보리라는 의지가 가득 담긴 얼굴이었다. 애매한 표정이긴 했지만 끝내 특유의 맛을 찾지 못했는지 다 먹었다.
"블루베리 요거트에 블루베리 맛 유산균을 넣었으니까 '쁠루베리 요거트'가 된 거야."
내가 이렇게 말하자 아이들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
하기 싫은 것도 더 좋은 무언가에 버무리면 의외로 쉽게 받아들여질 때가 있다. 나는 아침마다 헬스장에 간다. 운동을 좋아서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드라마 보면서 러닝머신 위에 서면 40분이 10분처럼 지나간다. 공부할 때 낯선 단어를 외우기 힘들면 일상 대화 속에 슬쩍 끼워 넣는다. 억지로 외우는 대신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중요한 건 억지가 아니라 방법이다. 조금만 맛있게, 조금만 재미있게 버무려 보면 삼키기 어려웠던 것도 어느새 삶 속으로 스며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