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겪으며 지나가는 중입니다
찾으면 찾을수록 무서운 글만 눈에 들어왔다. 이런 부작용이 있는 약을 대체 아이에게 어떻게 먹이라는 건지. 책을 보며 킥킥거리는 아이 옆에서 나는 손톱을 연신 뜯어댔다. 남편에게 톡을 보내고 병원은 잘 다녀왔냐 묻는 친구에게도 하소연했다. 답이 있을 리 없지만 같이 걱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다.
어느 카페 글에 달린 댓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세상에 약은 다 부작용이 있어요. 타이레놀도 알고 보면 부작용 엄청 무서워요. 그냥 안 생기길 바라고 먹이는 수밖에 없어요.
맞다. 약은 다 부작용이 있다. 먹이면서 아이에게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살펴보면 되는 거였다. 의사도 이 약은 보편적으로 많이 처방된다고 했고. 그러니 믿어보기로 했다. 부작용은 ‘배가 아플 수 있다’는 정도뿐이었다. 의사 선생님과 진료실에서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약 때문에 배가 아픈 건지, 긴장해서 아픈 건지 어떻게 구분하죠?”
“사흘 뒤부터 연휴가 시작되잖아요. 학교에 안 가니까, 그때 약을 먹어도 배가 아프지 않으면 부작용이 아닌 거겠죠. 혹시 힘들어하면 그냥 끊으세요.”
그래. 부작용이 있으면 끊으면 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검색을 멈췄다. 어느새 우리가 내릴 역에 도착해 있었다.
가루약만 먹었던 아이는 첫 알약을 먹게 되었다. 20mg 한 알을 반씩 잘라서 먹이라 했다. 못 삼킬 것 같아 다시 한번 반으로 잘랐다.
“물을 먼저 한 모금 정도 입안에 넣고 고개를 살짝 들고 약을 넣은 다음에 꿀꺽 삼켜.”
배 아픈 걸 줄여주는 약이라고 이야기하며 약을 내밀었다. 아이는 알약을 먹는다는 자체를 더 재미있어했다. 무섭다면서도 신기하고 들뜬 표정이었다. 처음엔 약이 잘 넘어가지 않아 입안에 쓴맛이 남기도 했고, 고개를 덜 젖혀 물과 약이 함께 흘러내리기도 했다. 며칠을 반복하니 조금씩 능숙해졌다.
추석 연휴 동안 매일 아침 약을 챙겨 먹었는데 다행히 배가 아프다는 말은 없었다. 하지만 연휴가 끝나자 다시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다. 효과가 없는 걸까 싶어 이번엔 챗GPT에 물었다. 약을 먹은 지 2~4주가 지나야 효과가 나타나니 초반엔 인내심이 필요하단다.
4주째 되는 날, 아이는 유난히 힘들어하며 꾸역꾸역 집을 나섰다. 출발부터 이미 늦었다. 교문에 도착하니 차단기가 내려와 있었다. 아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자꾸 나를 쳐다봤다. 또다시 반복이었다. 달래고 응원하고 화내고 협박하고. 결국 교문을 들어섰지만 열 걸음도 못 가 다시 내려왔다.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못 가겠어.”
의사 선생님이 보건실에 있더라도 조퇴는 시키지 말라 했는데. 아예 등교 자체를 거부했다. 약으로도 안 되는 건가.
결국 그날은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머리로는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표정과 말은 따라주지 않았다. 눈물을 닦으며 내 눈치를 보는 아이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 눈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앞만 보고 걸었다.
다음날은 학교에서 가을운동회가 있었다. 전날의 눈물은 언제였냐는 듯 아이는 아침부터 신이 났다. 2학기 들어 처음으로 스스로 옷을 꺼내 입고 집을 나섰다. 운동장에서 나를 보며 밝게 웃고 손을 흔들었다. 음악이 흐르자 자리에서 일어나 춤까지 췄다. 그 해맑은 얼굴을 보며 나는 왠지 씁쓸했다. 저렇게 잘 지낼 거면서 왜 아침마다 우리 둘은 그렇게 힘들까.
아이는 남편보다 내 앞에서 더 힘든 내색을 보였다. 나에게는 좀 더 어리광을 부리고 좀 더 의지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 역시 그걸 알면서도 매몰차게 밀어내지 못했다. 룰을 바꿨다. 둘째는 내가 등교시키고 첫째는 아빠가 함께 가기로. 둘째를 보내고 운동 가는 길에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학교 가기 싫다고. 그래도 준비하라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잠시 뒤 문자 알람이 계속 울렸다. 폰으로 연락할 줄은 몰랐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아이는 점점 나아졌다. 학교 가기 싫다는 말도 줄었고, 학교에서도 1, 2교시엔 배가 조금 아픈데 그다음은 괜찮다고 했다. 선생님도 아이가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하셨다. 의사는 약이 학교 가는 걸 좋아하게 만든다기보다는 저항의 정도를 낮춰주는 약이라고 했다. 확실히 그 말이 맞았다.
아이는 여전히 아침마다 약을 반 알씩 먹고 있다. 아빠와 함께 집을 나선다. 가는 길에 친구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걸어간다. 둘째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건너편에서 첫째가 친구들과 장난치며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웃음소리가 들린다.
아이의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엔 약에 의지했고, 결과를 재촉했지만 결국은 기다림이었다. 아이의 마음도 나의 마음도 조급함으로는 낫지 않았다. 어떤 문제는 바로잡는 게 아니라 함께 겪으며 지나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