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다
지하철로 환승 한 번. 50여 분이 걸렸다.
지도를 확인하며 출구 번호를 찾았다. 계단을 올라서자 회색빛 건물 벽면에 크고 작은 간판들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병원 이름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선을 천천히 옮기다 작게 적힌 간판을 발견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정신의학과라는 병원은 정신이 이상해서 가는 데가 아니라 마음을 치료하는 곳이야."
아이에게 그렇게 말해주며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동안 둘 다 말이 없었다.
바로 왼편에 입구가 보였다. 밝은 조명과 깨끗한 벽면, 중앙엔 동그랗고 커다란 소파가 놓여 있었다. 아이는 말없이 걸어가 소파에 눕다시피 하며 앉았다. 나는 데스크로 가서 예약자 이름을 확인했다. 약속 시간보다 15분 일찍 도착했는데 바로 진료실로 들어가라고 했다.
TV 속에서는 넓은 책상 너머로 부드러운 조명이 비치고 검은 소파에 앉은 환자와 의사가 느릿하게 대화를 나눴던 것 같은데, 눈앞의 모습은 달랐다. 긴 책상 위엔 컴퓨터와 키보드 환자 방향으로 놓인 모니터가 하나 더 있었다. 책상 뒤로는 두꺼운 의학 서적들이 꽂혀 있었다. 그리고 환자가 앉는 평범한 의자 두 개. 이외엔 아무런 가구도 없었다. 소파도, 은은한 조명도, 느긋한 분위기도 없었다.
의사는 생각보다 젊었다. 친구 남편의 동기라 해도 정신건강의학과라 하니 중후한 인상일 줄 알았는데, 동그란 눈에 약간은 짓궂은 표정이었다. 목소리 톤은 높았고 사투리에 익숙한 사람이 표준어를 쓰려 노력하는 억양이었다.
물론 외적인 모습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드라마 속 장면들만 떠올리던 내게 눈앞의 현실은 낯설었다.
선생님 맞은편에 아이와 나란히 앉았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요즘 기분에 대해, 학교생활에 대해, 배가 아픈 것에 대해, 친구 문제나 학업에 대해 물으셨다. 처음 보는 의사 선생님의 훅 들어오는 질문에 아이의 눈이 이따금 내 쪽으로 향했다. 낯선 공간에서 대답을 고르느라 잠깐씩 머뭇거렸다.
"언제부터 그랬니?"
"음… 1학기 끝날 때부터 좀 힘들었어요."
"학교 가면 배가 아픈 건 왜 그런 것 같아?"
"잘 모르겠어요."
의사는 15분 남짓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랑만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아이에게 잠시 나가달라 했다. 아이가 문을 닫고 나가자 조용한 정적이 흘렀다.
나는 2년 전인 1학년 가을, 아이가 갑자기 모든 걸 그만두고 싶어 했던 일부터 꺼냈다. 학교 상담 선생님의 말도 덧붙였다.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계속 그런 건 아니었고, 특정한 상황에서만 그렇네요. 에피소딕 해 보입니다만 우울 증상은 맞는 것 같습니다. 약을 먹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의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덧붙였다.
"주의력 결핍적인 모습도 조금 보여요. 아까 대화할 때 손발을 가만 두지 못하고 계속 움직였죠. 잠깐 나가 있으라고 했는데 방에 세 번이나 드나든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집에서 뭘 집중해서 가만히 잘하나요?"
"만들기나 그림 그리기는 집중하긴 해요. 그런데 뭘 해도 말을 많이 하고 시끄럽게 하는 편이에요."
"엄마 말도 잘 듣나요?"
"뭔가 몰두하고 있으면 제가 몇 번 얘기해도 못 들어요."
"이것 보세요. 두세 번 지시해도 아이가 움직이지 않잖아요. 책상 정리라던가 방도 정리가 잘 안 되죠?"
"음.. 네.."
진료실에서 나와 선생님과의 대화를 곱씹어 봤다.
'유도신문 아니야? 외향적이고 수다스러울 수도 있잖아. 엄마 말이 안 들릴 정도로 집중한 건데, 주의력 결핍이라고 하나? 엄마 말을 한 번에 듣는 아이들이 몇이나 될까? 책상 정리를 잘하는 게 오히려 특이한 일 아닌가?'
어쨌든 아이에게 우울과 불안감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지금은 검사를 해도 의미가 없을 거라 했다. 마음이 안정된 다음에 진행하면 될 것 같다고. 배가 아프고 불안한 마음을 줄이는 게 가장 급한 일이라고 했다.
'그래. 뭔가 필요하긴 해.'
우울증 약을 받아 들고 나왔다.
병원 문을 나서자 바람이 차가웠다. 아이는 피곤한 얼굴로 내 손을 잡았다. 편의점에 들러 초콜릿과 커피를 하나씩 골랐다. 지하철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아이는 책을 펼쳤고 나는 휴대폰을 켜 처방받은 약 이름을 검색창에 입력했다.
푸록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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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록틴 힘들어서 미칠꺼 같아요.
푸록틴 부작용으로는 두통, 구역질, 불면증이...
이상반응 : 소아, 청소년 및 젊은 성인(18~24세)에서의 자살 성향의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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