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하고 싶었던 불안이 이름을 가진 순간
아이는 평소 늘 밝고 활발한 편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고 장난도 잘 쳤다.
아주아주 가끔씩 이유 없이 우울해 보이거나 의욕이 떨어질 때가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아이 아빠가 예민하고 생각이 많은 성격이라 혹시 유전적인 기질일 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다. 일시적인 감정 기복일 거라고도 생각했다.
올해 들어 학교 문제로 힘들어하는 모습이 반복되자 마음 한구석이 조금씩 불안해졌다. 나는 불안을 애써 외면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담임 선생님에게서 아이에게 우울 증상이 보인다는 말을 들은 뒤 마음의 준비를 하고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했다.
'소아 우울증'
지속적인 슬픔이나 공허감, 쉽게 짜증을 내는 과민함이 2주 이상 이어지고 이전과 달리 즐겁던 일에 흥미를 잃으며 일상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 주요 특징이라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성인처럼 슬프다는 표현보다 '짜증'이나 '화'로 우울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런 문장들도 눈에 들어왔다.
"좋아하던 활동을 하지 않으려 한다."
"배가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며 등교를 거부한다."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 아이의 모습과 겹쳤다. 우울증은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스트레스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생기며 의지로만 극복하기 어려운 질환이라는 설명도 있었다.
신문 기사에서는 최근 5년 사이 소아 청소년 우울증 환자가 70% 넘게 늘었다는 통계가 실려 있었다. 10세 미만의 아이들마저 두 배 이상 증가했다는 문장을 보는 순간 손끝이 떨렸다.
사춘기가 오기엔 아직 어린 나이였다. 스마트폰도 하지 않고, 학원도 예체능 두세 곳뿐이었다. 공부 스트레스도 없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다음 날, 학교 상담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차분하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상담 시간 동안 아이가 했던 이야기들을 조심스럽게 전해주셨다.
"아이 생각이 또래보다 깊어요. 사용하는 단어도 그렇고요. 그런데 문장 만들기 과제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토할까 봐 무섭다 같은 문장을 썼어요. 3학년 아이들에게서 보통은 이런 표현이 잘 나오지 않거든요."
선생님은 단어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고르는 듯했다. 내가 먼저 물었다.
"아이에게 우울 증상이 보인다는 말씀이시죠? 안 그래도 어제오늘 찾아봤는데 제가 생각해도 아이 모습이랑 비슷한 것 같았어요. 필요하면 치료나 상담을 받고 싶은데 학교 통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아마 학부모에게 '우울증'이나 '심리치료' 같은 단어를 직접 꺼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짧은 침묵 뒤, 선생님이 천천히 답했다.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교육청에서 wee 같은 상담 프로그램이 있긴 한데 예약이 차서 한참 기다리셔야 해요. 상담도 도움이 되겠지만 더 정확한 평가를 위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아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 말이 이상하게 위로로 느껴졌다. 병명이 붙는다는 건 두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선생님은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다시 알아보겠다고 했고 나도 개인적으로 병원을 찾아보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때가 9월 초였다. 통화 마치자마자 집 근처 소아정신건강의학과를 검색해 전화를 걸었다. 예약이 가능한지 묻자 전화기 너머로 단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님, 9월 예약은 모두 마감됐어요. 다음 달 진료는 29일 월요일 오전 10시에 전화하시면 선착순으로 예약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