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아이 방 만들기 프로젝트

행동하면 의지는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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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첫째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기념해 할머니가 책상을 사주셨다. 서랍과 의자를 포함하니 백만 원 가까이 되었다.


자기 책상이 생기자 아이는 책상 의자에서 좀처럼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간식도 책상에서 먹고, 책도 책상에서 읽고, 공부도 놀이도 모두 책상 앞에서 했다. 사놓고 한 번도 펼치지 않던 국어 문제집까지 스스로 꺼내 들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책상 위에는 인형과 작품, 노트와 책이 하나둘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깨진 유리창 법칙처럼 어느새 손바닥 하나 올릴 공간 없이 가득 찼다. 책상은 기능을 잃었고, 아이는 거실이나 아빠 책상에 앉아 지냈다.




몇 주 전에 남편이 첫째 아이와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모니터에 책상 광고가 나왔다고 한다. 아이는 자기도 저 책상을 사달라고 했단다. 남편이 “네가 가지고 있는 게 저 책상이야”라고 했다고.

빵 터졌다.


민망했던 건지 아이는 곧이어 자기 방을 갖고 싶다 했단다. 4학년이 되니 남편도 이제 아이 방을 만들어 주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그러면 당신 책상 버릴 생각까지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래도 괜찮다고 한다.


마음이 복잡해졌다. 일단 이 작은 집에서 과연 방을 만들 수 있을까. 책장 하나와 남편 책상을 비우면 가능할 것 같기도 했다.

밤에 정말 나를 찾지 않을까도 걱정이었다. 늘 한밤중이나 새벽에 한 번씩 깨서 꼭 나한테 “엄마 나 화장실 가고 싶어” 말하고 가는 아이다. (그냥 갔다 오면 되지 도대체 왜 말하고 가는 거니.)


가끔 악몽을 꾸면 덩치 큰 아이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꿈 얘기를 끝까지 다 들려주며 옆에 누워달라고 하기도 했다. (옆에 동생이 자고 있는데 꼭 왜 그때 그걸 다 말하는 거니.)

혼자 잘 수 있다는 말이 정말 진심일까.


아이는 악몽을 꿔도 엄마를 부르지 않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두 부녀의 의지를 확인하고 천천히 정리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이 헛헛했던 걸 보니, 이제 정말 독립을 시키는구나 하는 생각이 가장 아쉬웠던 모양이다.




새해 첫날, 오후 늦게 집에 돌아와 재활용을 버리면서 겸사겸사 물건 정리를 시작했다. 눈에 띄는 것부터 하나씩 버렸다. 그러자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진으로 남기면 흑역사로 남을 만큼 아이들 책상 위는 정말정말정말 지저분했다. A4 종이로 만든 것들은 하나도 버리지 못한 채 쌓여 있었고, 다이어리는 쓰지도 않으면서 1년 내내 책상 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버릴 엄두를 못 내던 아이들이 하나둘 손을 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속도가 붙었다. 결국 대부분이 쓰레기봉투로 들어갔다. 오히려 내가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골라야 할 정도였다.


모니터 속에 나오던 그 책상 모습이 나타났다. 버리니까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아이의 말에 웃음이 났다. 그렇게 놓지 못하던 것들이 사실은 없어도 아무 문제없는 것들이었다. 아니, 버리고 나니 훨씬 후련했던 것이다.


공부방 정리는 마쳤고, 이제 거실 차례다. 거실에는 결단해야 할 물건들이 더 많다. 책장 하나를 비우는 걸 목표로, 이제 보지 않는 책들을 꺼내오라고 했다. 아이들은 책을 마구마구 꺼내오기 시작했다.

거실 한구석에 앉아 정리하는 내 주위로 책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수준이 맞지 않아 안 읽을 거라는 뜻인지, 이제 책은 그만 읽겠다는 선언인 건지 잠시 의심이 들었다.


아무튼 덕분에 책장 하나를 비우는 데 성공했다. 내친김에 남편은 아이 방을 만들자고 했다. 원래 우리 집 작은 방 중 하나는 남편이 쓰고 (침대와 책상이 있음) 다른 하나는 아이들 공부방(책상 두 개와 책장 하나가 있음)이었다. 남편 책상을 빼고 첫째 아이 책상을 옮겼다. 남편 책상은 버리고 작은 테이블로 바꾸려 했는데, 남편은 책장 위치를 바꾸더니 결국 자기 책상을 빈자리에 넣고야 말았다.


아이 방을 만들겠다고 크게 결심한 것도 아니고, 집을 확 바꾸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아니었다. 하나를 비우고, 하나를 옮기고, 조금 움직였을 뿐인데 그다음 선택이 따라왔다. 부녀는 각자의 공간을 만들었다. 이 작은 집에서 불가능해 보이던 일이 가능해졌다.


의지는 그렇게 행동 뒤에서 자랐다.

딸을 독립(?)시키는 엄마의 의지도 함께.




첫째는 처음 자기 책상을 샀던 때처럼 간식도 자기 방에서 먹고, 책도 방에서 읽고, 공부도 놀이도 모두 자기 방에서 한다.


그리고 책상 위에는 노트와 장난감이 다시 슬금슬금 자리를 차지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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