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아이 때문이 아니었다
피식.
"아빠 왜 웃어?"
"너네 엄마가 너무 행복해 보여서."
그렇다.
행복했다.
9년 만에, 한샘 매트리스 한가운데에 혼자 누워 혼자 이불 덮고 자는 밤이었다. 이걸 행복이라 부르지 않으면 뭐라 해야 할까.
첫째 낳기 전, 침대를 고르며 꽤 오래 고민했다. 높이가 있는 아기 침대가 좋아 보였지만 오래 쓰지 못할 것 같았다. 결국 선택한 건 대형 범퍼침대였다.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작은 방의 3분의 1을 차지한 침대는 방을 단번에 아기방으로 만들어 주었다.
문제는 내 자리였다. 밤 수유를 위해 아기 옆에서 자야 했는데 범퍼 안에 들어가기엔 길이가 짧았다. 긴 면의 범퍼 하나를 내리고, 그 위에 이불을 깔았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잠자리는 3년 동안 이어졌다. 아이의 안전을 위해 단단하게 만들어진 범퍼는 아무리 이불을 겹쳐 깔아도 푹신해지지 않았다. 만삭의 몸으로도 나는 그 위에서 잤다. 아침마다 허리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둘째를 낳고서는 원목 아기침대를 샀다. 범퍼침대를 종횡무진하며 자는 첫째와 함께 재우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허리 높이의 침대는 아이를 눕힐 때도, 기저귀를 갈 때도 훨씬 편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처음부터 이걸 샀어야 했다는 걸.
둘째도 어느새 자유롭게 자는 몸이 되었다. 범퍼침대와 원목침대를 정리하고 저상 패밀리 침대를 들였다. 슈퍼싱글 매트리스 두 개를 붙인 구조였다. 아이 둘에게 매트리스를 내어주고 나니 내 자리는 자연스럽게 두 매트리스 사이가 되었다. 평평하지도 푹신하지도 않은 경계선 위. 이불을 아무리 깔아도 허리는 그대로 느꼈다.
아이들 명작동화 중에 『완두콩 공주』라는 이야기가 있다. 왕비가 진짜 공주를 찾기 위해 침대 바닥에 완두콩 한 알을 놓고, 그 위에 두툼한 솜이불 스무 장을 깔았다. 그리고 각지에서 모인 공주들을 재웠다. 잘 잤다고 하는 공주는 진짜 공주가 아니었다. 진짜 공주라면 완두콩 때문에 잠을 못 잤을 테니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옆에서는 아이들이 자면서 팔을 휘두르고 다리를 차 올렸다. VR 안경을 쓴 것처럼 사방에서 움직임이 날아들었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2층 침대로 바꿨다. 아이들은 둘이서만 자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을 믿고 안방에 퀸 사이즈 침대까지 새로 들였다. 이제 정말 내 자리로 돌아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번만 같이 자자”는 말에, “무서워”라는 부름에, 나는 다시 아이들 방으로 옮겨갔다. 내 자리는 있었지만 내 자리는 없었다.
평수를 줄여 이사하며 결국 퀸 침대를 버렸다. 남편 혼자 잘 싱글 침대를 샀다. 형식적으로나마 있던 내 자리는 완.전.히. 사라졌다.
새해 첫 주말, 대청소를 하며 첫째 아이 방을 만들어 주었다. ‘아빠방’에 있던 남편의 책상을 빼고 ‘공부방’에 있던 첫째의 책상을 넣었다. 아빠가 쓰던 침대는 아이가 쓰기로 했다. 남편은 버리려던 책상을 공부방 빈자리에 꾸역꾸역 집어넣어 둘째 아이의 책상과 공존하는 반쪽짜리 아빠방을 사수했다. 접이식 침대를 펴 그 방에서 자기로 했다.
그렇다.
2층 침대 중 하나가 내 것이 되었다.
아홉 해 만에 나는 제대로 된 매트리스 위 한가운데서 혼!자! 잠을 자게 된 것이다. 그러니 누울 때마다 행복할 수밖에.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진짜 행복한 표정은 아이의 천사 같은 잠자는 얼굴 때문도, 꼬물거리는 손가락 때문도, 옅은 숨소리 때문도 아니었다.
내 몸뚱이 하나 편히 누워, 편히 잘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