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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산 Mar 22. 2024

백성과 더불어 즐겨야 한다

문장2. 양혜왕 상梁惠王 上 1.2

문장 2


백성과 더불어 즐겨야 한다


# 1.2


양혜왕이 맹자를 자신의 화려한 정원에 데려갔다. 

아름다운 새가 날고 고라니와 사슴이 뛰노는 모습을 흐믓하게 바라보며 양혜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현명한 군자(君子)도 이런 것을 즐깁니까?”

너무 화려한 정원이라고 맹자가 비판할까 약간 두려웠던 모양이다. 

맹자가 대답했다. 

“현자(賢者)가 되고 나서야 이런 것을 즐길 수 있고, 현자가 아니고서는 이런 것을 즐길 수 없습니다.”

양혜왕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맹자가 이어 대답했다. 

“≪시경≫에 주나라 문왕(文王)에 관한 이런 시가 있습니다. 


영대(靈臺)를 짓기 시작하여, 계획을 세워 일을 해나가니 

백성들이 (함께) 애써 일하여, 하루가 안 되어 완성했네.

시작할 때 급하게 말라 했는데, 백성들의 자식까지 (일하러) 왔네.

왕께서 정원에 계시니, 암사슴이 거기에 편안히 있네. 

암사슴은 통통하고, 흰 새는 환하네.

왕께서 못가에 계시니, 물고기가 가득 차 뛰어오르네 


문왕은 백성들을 동원해 누대를 짓고 못을 팠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모두 자기 일인양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그 누대를 영대(靈臺)라 일컫고, 그 못을 영소(靈沼)라고 불렀습니다. 거기에 고라니와 사슴, 물고기와 자라가 뛰노는 모습을 함께 기뻐했습니다. 문왕을 비롯한 옛 현자들은 백성들과 더불어 자신의 것을 즐겼고, 그래서 진정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반면, <탕서(湯誓)>에 하나라 걸왕에 대해 이르길, 그 왕의 시대에 백성들이 ‘이 태양, 이 왕은 어찌해야 사라질까? 내가 차라리 너와 함께 죽으리라!’ 했다고 합니다. 걸왕이 폭압을 행하면서 백성들과 삶을 더불어 나누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걸왕 때처럼 백성이 왕과 더불어 죽기를 바란다면, 비록 화려한 누대와 못이 있고, 그 정원에 온갖 새와 짐승이 뛰논다 한들, 그것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겠습니까?”

정원을 자랑하려던 양혜왕은 좀 머쓱해졌다. 


본문


맹자가 양혜왕을 만나니, 왕은 못 가에서 서서

孟子見梁惠王, 王立於沼上, 맹자견양혜왕, 왕립어소상,

크고 작은 기러기와 고라니와 사슴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현자(賢者, 현명한 지도자)도 이런 것을 즐깁니까?”

顧鴻雁麋鹿, 曰: “賢者亦樂此乎?” 고홍안미록, 왈: “현자역락차호?”

맹자가 대답했다. “현자가 되고 나서야 이런 것을 즐길 수 있고, 현자가 아니고서는 이런 것을 즐길 수 없습니다.”

孟子對曰: “賢者而後樂此, 不賢者雖有此不樂也. 맹자대왈: “현자이후락차, 불현자수유차불락야.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영대(靈臺)를 짓기 시작하여, 계획을 세워 일을 해나가니 (經:계획을 세우다 營: 실행하다)

≪詩≫云 1: ‘經始靈臺 2, 經之營之. ≪시≫운: ‘경시영대, 경지영지. 

백성들이 (함께) 애써 일하여, 하루가 안 되어 완성했네.

庶民攻之, 不日成之. 서민공지, 불일성지. 

시작할 때 급하게 말라 했는데, 백성들의 자식까지 (일하러) 왔네.

經始勿亟, 庶民子來. 경시물극, 서민자래.

왕께서 정원에 계시니, 암사슴이 거기에 편안히 있네. 

王在靈囿, 麀鹿攸伏. 왕재영유, 우록유복. 

암사슴은 통통하고, 흰 새는 환하네.

麀鹿濯濯, 白鳥鶴鶴. 우록탁탁, 백조학학. 

왕께서 못가에 계시니, 오, 물고기가 가득 차 뛰어오르네’ 하였습니다. 

王在靈沼, 於牣魚躍.’ 왕재영소, 오인어약.’

문왕은 백성의 힘으로 누대를 짓고 못을 팠으나 

文王以民力爲臺爲沼, 문왕이민력위대위소, 

백성들은 그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그 누대를 영대(靈臺)라 일컫고

而民歡樂之, 謂其臺曰靈臺, 이민환락지, 위기대일영대, 

그 못을 영소(靈沼)라 일컬어 부르며, 거기에 고라니와 사슴과 물고기와 자라가 있음을 기뻐했습니다.  

謂其沼曰靈沼, 樂其有麋鹿魚鼈. 위기소왈영소, 낙기유미록어별.

옛날 사람은 백성과 더불어 함께 즐겼고, 그래서 능히 즐거울 수 있었습니다.

古之人與民偕樂, 故能樂也. 고지인여민해락, 고능락야. 

(반면) <탕서(湯誓)>에 이르길 ‘이 태양[王]은 어찌해야 사라질까? 내가 너와 함께 죽으리라!’ 했습니다.  

<湯誓>曰: ‘時日害喪? 予及女偕亡!’ 3 <탕서>왈: ‘시일갈상? 여급여해망!’

백성이 그와 더불어 죽기를 바란다면, 비록 누대와 못이 있고 새와 짐승이 있다고 한들, 어찌 홀로 즐길 수 있겠습니까?”

民欲與之偕亡, 雖有臺池鳥獸, 豈能獨樂哉?” 민속여지해망, 수유대지조수, 기능독락재?”



1. ≪시경(詩經)≫과 문왕(文王), 그리고 여민락(與民樂)


  여기서 인용한 시(詩)는 ≪시경(詩經)≫ 대아(大雅) 편의 영대(靈臺)이다. 고대에 시경은 그냥 ≪시(詩)≫라고 불리곤 했다. 흔히 공자가 주나라의 시들을 모아 엮었다고 전해지나 역사적 사실로 보지는 않는다. 오랜 세월 여러 사람에 의해 주나라의 시 중 중요한 시 3백여 수가 모여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역경(易經)≫, ≪서경(書經)≫과 더불어 삼경(三經)으로 불린다. ≪역경≫은 괘점을 치고 그것을 해석하는 주역(周易)을 말하고, ≪서경≫은 주나라와 그 이전의 국가 공식 문건을 담은 기록물을 말한다. 물론 역경과 서경도 그냥 한 글자로 역(易), 서(書)라고 일컬을 때가 많다. 여기에 사서(四書 - ≪대학(大學)≫, ≪논어≫, ≪맹자≫, ≪중용(中庸)≫)를 더해 사서삼경(四書三經)으로 불리며 선비들의 중요한 교과서로 인정되었다. 

  이 ≪시경≫이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동아시아 지식인들이 특정한 상황을 설명할 때나 외교를 할 때 ≪시경≫의 시를 인용하여 설명하곤 했기 때문이다. 공자는 그래서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다 不學詩, 無以言”고 했다. 위의 문장에서도 맹자가 자기 주장을 위해 ≪시경≫을 인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영대(靈臺) 시의 주인공은 주(周)나라를 건국한 문왕(文王)이다. 주나라가 중국 문명의 모범으로 추앙받는 것처럼, 주 문왕 또한 어진 임금, 어진 인물의 모범으로 칭송받아 왔다. 여기서 맹자는 문왕의 사례를 통해 백성과 함께, 더불어 즐기는 것[與民樂]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를 설파하고 있다. 백성과 함께 즐기는 현자, 군주의 사치는 사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왕이 백성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던 고대에 이런 관점을 가지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맹자로 인해 백성과 더불어 즐긴다는 개념이 정치의 중요한 덕목이 되었다. 그래서 여민락(與民樂)은 유교를 숭상하는 동아시아의 공통 가치였다. 세종 대에 만들어진 궁중음악의 이름이 ‘여민락’인 데서도 그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의 궁중음악 ‘여민락’은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 들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국립국악원의 공연을 들 수 있다. https://youtu.be/XrM3enMLd1w) 


2. 영대(靈臺)


  왕이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보던 대(臺). 왕이 사용하는 것이라 영(靈)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뒤에 나오는 왕의 정원인 영유(靈囿), 왕의 못인 영소(靈沼) 등도 같은 표현이다. 


3. <탕서(湯誓)>, 탕왕(湯王), 걸왕(桀王)


  <탕서(湯誓)>는 탕왕(湯王)의 맹서라는 뜻이다. ≪서경(書經)≫ 중 <상서(商書, 상나라의 문서)> 편에 나온다. 탕왕은 하나라 폭군(暴君) 걸왕(桀王)을 치고 상(商) 나라를 세운 사람이다. 걸왕은 왕이 되고 나서 자신이 천하를 얻은 것은 하늘에 해가 있는 것과 같으니 해가 없어져야 자신이 망할 것이라고 큰 소리를 쳤다. 이런 폭군에 대한 백성의 대답이 “이 태양[王]은 어찌해야 사라질까? 내가 너와 함께 죽으리라!”였다. 탕왕은 이런 민심을 업고 하나라를 쳤다. 아무리 권세가 하늘의 태양 같고, 그 재산이 넘친다고 해도, 민심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주장하기 위해 맹자가 탕왕의 맹서를 끌어온 것이다. 무엇보다 백성의 마음을 중시하는 맹자의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문왕(현자)과 걸왕(폭군)을 비교하며 왕 앞에서 거리낌 없이 여민락의 주장을 펴는 맹자의 용기가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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