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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산 Jun 07. 2024

믿으려면 확실히 믿어 줘, 절영지회(絶纓之會)

- 유향(劉向), <설원(說苑)> ‘복은(復恩)’ 초장왕(楚莊王) 편에서

절영지회(絶纓之會)


이번에 들려주고 싶은 고사성어는 ‘절영지회’라는 말이야. 갓끈[纓]을 끊었던[絶] 그[之] 연회[會]라는 뜻이란다. 연회라는 것은 잔치라는 뜻이니까, 잔치에서 갓끈을 끊었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돼. 잔치를 하다 말고 왜 갓끈을 끊었을까? 그것은 믿음, 신의(信義)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이번 이야기를 통해 너희들에게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는 방법, 그것이 가지는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해. 


3년 만에 날아오르다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춘추 시대 초(楚)나라 장왕이야. 그는 즉위하자마자 이상한 행동을 했어. 무려 3년 동안 향락에 빠져 살면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어. 오히려 온 나라에 이렇게 선포했지. 

“감히 간(諫)하는 자는 용서치 않고 죽이겠다!”

왕이 이리 서슬 퍼렇게 이야기하니 누가 감히 왕을 말릴 수 있겠어. 나라꼴은 엉망이 되어 갔지. 보다 못해 오거(伍擧)라는 신하가 입궐하여 간했어. 그 상황에서도 장왕은 왼쪽으론 정나라 여자를 껴안고, 오른쪽으로는 월나라 여자를 껴안은 채 음악이 연주되는 잔치판 한 복판에 앉아 있었어. 오거가 말했어. 

“괜찮으시다면 수수께끼 하나를 내겠습니다. 새가 언덕에 앉아 있는데,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무슨 새입니까?”

날아야 할 새가 3년을 날지도 울지도 않는다는 말. 새가 새의 일을 하지 않는 거지. 결국 왕인 당신이 그 새이고 도대체 왜 왕으로서 할 일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이었던 거야. 이 질문에 장왕이 대답했어. 

“3년 동안 날지 않았으나 한 번 날면 하늘 높이 날 것이고, 3년을 울지 않았으니 한 번 울면 사람들이 다 놀랄 것이다. 물러가라, 내 그대의 말을 알겠다.”

장왕이 뜻 없이 향락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봐. 뭔가 기대하게 만드는 말이지? 하지만 행동이 바로 바뀌지는 않았어. 더 심하게 향락에 빠져들었어. 이번에는 대부(大夫) 소종(蘇從)이라는 사람이 입궐하여 간했어. 장왕이 따졌지.

“그대는 명령을 듣지 못했나?”

간언을 하면 죽일 것이라는 명령을 듣지 못했냐는 말이지. 이에 소종이 대답해. 

“제가 죽어 왕을 깨우치는 것이 신(臣)의 바람입니다.”

장왕은 소종의 간언에야 비로소 향락에 빠진 생활을 그만두고 정사(政事)를 시작했어. 

그가 처음으로 한 일은 간신(奸臣)들 수백 명을 처단하고 그 자리에 믿을 만한 사람 수백 명을 새로 등용하는 일이었지. 당연히 오거와 소종을 높이 들어 정치의 동반자로 삼았지. 그날부터 초나라는 부강한 나라로 발전해 가기 시작했어.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알겠어? 장왕은 일부러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간신과 충신을 가려내고 있었던 거야. 사실 장왕은 너무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올라서 기반이 많이 약했거든. 그런 문제를 해결하고 함께 일할 진정한 신하를 분별하기 위해 시간을 썼던 거지. 그가 스스로 말한 대로 3년 동안의 방탕한 생활을 끝내자, 하늘로 날아오르고 사람들을 놀라게 할 멋진 정치를 하기 시작했지. 장왕은 오거에게 했던 말을 이루어 내어 신의를 지킨 셈이지. 결국 장왕은 당시 최강자였던 진(晉)나라와의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춘추 시대의 패자(覇者)로 우뚝 서게 돼. 

이런 면모 때문에 한비자는 장왕을 ‘대기만성(大器晩成)’의 대표적인 사람으로 꼽기도 했어. 


목숨을 바치는 신하


장왕이 신의를 지키는 태도는, 진나라와의 전투에서도 큰 도움이 되었어. 

진과의 전쟁이 일어나기 3년 전의 일이야. 장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술을 내려 잔치를 벌이고 있었어. 날이 저물어 다들 술이 거나하게 올랐을 때 갑자기 등불이 꺼졌어. 연회장이 온통 깜깜해졌지. 이때 어떤 사람이 같이 자리하고 있던 장왕의 후궁의 옷을 함부로 잡아당겼어. 술이 취했는데 깜깜해지니 엉뚱한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지. 그때 후궁이 얼른 그 사내의 갓끈을 끊어 가지고서는 왕에게 고했어. 

“지금 불이 꺼진 사이에 제 옷을 잡아당긴 자가 있습니다. 소첩이 그 갓끈을 끊어 가지고 있으니 불을 밝히시거든 갓끈 끊어진 자를 찾아주십시오!”

왕으로서도 난감한 상황이었을 거야. 왕의 여인을 희롱하다니, 고대 사회에서 이는 마땅히 죽어야 할 죄였으니까. 그 신하를 잡아 죽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거야. 

“내가 술을 마시라고 해서 좀 예의를 잃을 수는 있겠지만, 누가 그대를 욕보이려고 했겠소?”

그렇게 말하곤 장왕이 명령을 내렸어. 

“오늘 나와 함께 술을 마시면서 갓끈을 끊지 않는 사람은 이 자리가 즐겁지 않다는 뜻으로 알겠다!”

그러자 백 명도 넘는 신하들이 모두 갓끈을 끊은 후에야 불을 켰어. 그러니 불을 켠 후에도 누가 후궁의 옷을 잡아당기며 희롱했는지 알 길이 없게 되었지. 그래서 잔치는 끝까지 즐거운 분위기에서 마무리될 수 있었어. 술기운에 왕의 후궁에게 몹쓸 짓을 했던 그 신하는 죽다 살아난 셈이었지. 장왕은 자기의 체모를 희생해서 자기를 믿고 따르는 사람을 구해낸 셈이야. 여기서도 장왕이 신의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가를 알 수 있지. 

그 후 진나라와의 전쟁이 벌어졌을 때. 한 신하가 있어 최전방에 서서, 다섯 번의 싸움에서 모두 분연히 싸우면서 선두에서 적을 물리쳤어. 결국 승리를 얻는 데 큰 공을 세우게 되었지. 장왕이 그를 불러 보니 그리 익숙한 얼굴이 아니어서 이상하다 싶어 물었어. 

“과인이 덕이 부족한지 그대를 잘 기억하지 못하겠다. 그러니 특별히 그대를 잘 대해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대는 무슨 까닭으로 그리 목숨을 걸고 싸웠는가?”

그 신하가 대답했어. 

“저는 이미 죽은 몸입니다. 언젠가 술에 취해 신하로서 예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때 왕께서 이를 감추시고 저를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끝까지 그 덕을 드러내지 않고 왕께 보답하지 않는 짓을 감히 할 수 없었습니다. 온몸이 찢기고 피를 흘리더라도 그 은혜를 갚기를 원해온 지 오래입니다. 신이 바로 그 밤에 갓끈이 끊겼던 자입니다.”

신하를 향한 장왕의 신의가 전쟁의 승리로 돌아오는 순간이었어. 장왕의 그릇을 보여주는 이 일화에서 바로 ‘절영지회’라는 고사성어가 나오게 된 거야. 


너희가 기억했으면 하는 건 바로 장왕의 큰 그릇이야. 자기 여인을 희롱한 신하를 벌주지 않고 숨겨주었던 여유 말이야. 그 여유는 자신을 위해 일하는 신하들을 믿지 못하면 가질 수 없는 것이었지. 그가 3년이라는 긴 시간을 도약을 위한 준비기간을 삼았던 것도 언젠가는 오거나 소종 같은 진정한 충신이 나타나리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어. 우리 딸들도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길 바란다. 사람들에게 베푼 믿음만큼 그 사람들이 너희에게도 믿음을 주고 좋은 행동으로 보답하리라 믿는다. 부디 신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나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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