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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산 May 30. 2024

너는 너대로 훌륭해, 계명구도(鷄鳴狗盜)

- 사마천, <사기열전(史記列傳)>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에서

계명구도(鷄鳴狗盜)


너희들에게 여섯 번째로 들려주고 싶은 고사성어는 계명구도라는 말이야. 닭 계(鷄), 울 명(鳴), 개 구(狗), 도둑 도(盜)로 이루어진 말로 닭울음소리와 개도둑이라는 소리야. 듣고 보니 별로 좋은 말이 없지? 말 그대로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야. 아니 사실 세상엔 하찮은 사람이란 없고 그렇게 보이는 사람들조차 존재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 고사성어를 꺼내 들었어.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사람은 대우해주는 만큼 그 가치를 발휘한다는 사실을 함께 생각해보기 위해서야. 너희들은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대접하고 있니? 겉모습만 보고 대우를 달리하거나, 신분이나 명예를 먼저 보고 대하지는 않니? 우리 딸들은 그러지 않으리라 믿어. 이번 이야기를 통해 사람을 만나고 대우하고 함께 일한다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길 바라. 

이번 이야기는 맹상군(孟嘗君)이라는 제나라의 대부를 중심으로 진행될 거야. 맹상군이 사람들을 대접하고 인재를 거둔 이야기이니까. 

우리나라도 왕자들이나 왕족들을 군(君) 자를 붙여 부르지? 고종 황제의 아버지 대원군처럼 말이야. 맹상군도 제나라 왕가 사람이라 군 자를 붙여 부른 거지. 
대부는 제후 밑에서 작은 영토를 분봉 받아 다스리는 사람을 말해. 주나라 왕이 작은 나라를 제후들에게 분봉하고, 제후는 자기 나라를 또 나누어 대부에게 분봉하는 식으로, 주나라의 지배체계가 구축되어 있었지. 


버려진 아들


맹상군의 이름은 전문(田文)이야. 아버지 전영이 제나라의 재상을 지낸 사람이야. 집안이 아주 좋았던 거지. 하지만 문(文)의 출생은 행복하지 못했어. 전영에겐 첩이 많았고, 아들만도 사십여 명이나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천한 첩에게서 문이 태어났기 때문이지. 게다가 그는 5월 5일에 태어났어. 당시 제나라에서는 그날 태어난 남자아이는 아비를 해치고, 여자아이는 어미를 해친다는 속설이 있었어. 미천한 첩의 자식이 불길한 날 태어나자 아버지 영은 아이를 버리라고 명했지. 하지만 어디 어머니의 마음이 그렇겠어. 아이를 몰래 숨겨두고 키웠어. 아마 그 아버지는 아들이 하도 많으니 어느 구석에서 문이 자라는지도 몰랐을 거야. 그런데 그렇게 버려진 아이가 어떻게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부가 될 수 있었을까? 

문이 장성하자 어머니는 형들을 통해 아버지 앞에 문을 데리고 갔어. 아버지 영은 황당하고 화가 났지. 버리라고 한 자식을 왜 맘대로 키우느냐고 소리를 질렀어. 그때 문이 침착하게 머리를 조아리며 아버지에게 물었어. 

“군(君)께서 5월에 태어난 아들을 키우지 못하게 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아직 아들로 인정받지 못해서 문은 아버지를 군이라고 불렀어. 아버지가 대답했지. 

“5월에 태어난 아들은 키가 문 높이와 같아지면 부모에게 해롭게 하기 때문이다.”

문이 말했어. 

“사람이 태어날 때 운명을 하늘로부터 받습니까? 아니면 문으로부터 받습니까?”

전영은 조용히 있었어. 그러자 문이 이어서 말했지. 

“필히 운명을 하늘에서 받는다면 군께서는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그렇지 않고 필히 운명을 문에게서 받는다면 문을 계속 높이면 됩니다. 누가 문만큼 클 수 있겠습니까?” 

운명이 하늘에서 온다면 어차피 살고 죽고가 하늘에 달렸으니 아들 탓은 아닐 것이요, 운명이 문 높이에 달렸다면 문 높이를 높여 자식이 문 높이에 다다르지 못하게 하면 그만이라는 말이지. 미신 같은 이야기에 속아 살아갈 이유가 무엇이냐는, 아주 논리에 들어맞아 아버지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질문과 대답이었어. 이에 전영이 답하지. 

“아들아, 그만 하거라.” 

아들이라고 불렀지? 전영이 문의 총명함을 보고 아들로 인정한 순간이었어. 

아들로 인정은 받았지만 아직 후계자는 아니었지. 사십여 명에 달하는 아들 사이에서 후계자가 된다는 것이 쉬운 일이겠어? 이제 막 자기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준 정도이니 말이야. 

어느날 아버지가 쉬고 있는 틈을 타서 문이 다가가 물었어. 

“아들의 아들을 뭐라고 하는지요?”

전영이 대답했어.

“손자라고 한다.”

“손자의 손자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현손이라고 한다.”

“현손의 현손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알 수 없다.”

문이 느닷없이 후손에 대해 질문을 해댄 이유가 뭘까? 우리도 궁금한데 질문을 받은 전영은 더 궁금했겠지. 그렇게 아버지를 궁금하게 하고는 다시 문이 말했지.

“아버님께서는 정권을 잡고 제나라 재상이 되어 지금까지 세 왕을 섬기셨습니다. 그 동안 제나라 땅은 넓어지지 않았는데 아버님 자신은 천만 금이나 되는 부를 쌓았으며, 그러고도 문하에는 어진 사람 한 명 볼 수 없습니다. 제가 듣건대 장수의 집안에는 반드시 장수가 있고, 재상의 가문에는 반드시 재상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 아버님의 후궁들은 아름다운 비단옷을 입고 다니지만 선비들은 갈옷 하나 없습니다. 아버님의 하인들과 첩들은 쌀밥과 고기를 실컷 먹고도 남아돌지만 선비들은 쌀겨나 술지게미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아버님께서는 쌓아둔 것이 남아돌지만 더욱 많이 쌓아두려고만 할 뿐 나라의 일은 날마다 손해인 것은 잊고 계십니다. 저는 그걸 속으로 이상하게 여깁니다.”

문이 한 말의 의미가 뭘까? 후손이 이어질 때까지 우리 집안이 재상의 집안으로 남으려면, 부를 쌓는데만 힘 쓰지 말고 나라와 집안을 위해 투자 해야 한다는 것이지. 의미 없이 후궁들과 첩에게 돈을 쓰지 말고, 집안을 일으키고 나라를 부강하게 할 인재들을 모으고 대접해야 한다는 거야. 

아버지인 전영은 이 말을 듣고 문을 다시 보게 되었어. 집안과 나라의 미래를 보는 눈이 남달랐으니까. 전영은 문에게 집안의 주인으로서 집안일을 도맡고 빈객(賓客)을 돌보는 일을 맡겼어. 

춘추전국 시대에는 나라 사이 경쟁이 심해서 인재를 많이 등용하는 게 중요했어. 그래서 큰 집안이나 나라에서 좋은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집에 오는 선비들을 먹여 살리는 경우가 많았지. 그때 찾아온 손님인 선비들을 빈객이라고 해.


후계자가 되다


문은 빈객들을 잘 돌보았어. 그러니 빈객이 날로 늘어나고 문의 이름이 여러 나라의 제후들에게 널리 알려졌지. 그 제후들이 저마다 사람을 시켜 전영에게 문을 태자로 삼으라고 하니 전영이 이를 받아들였지. 전영이 죽자 문이 아버지를 뒤이어 설 땅의 대부가 되니, 그 이름이 맹상군이지. 태어나자마자 버려질 뻔한 천한 여인의 아들이 대부의 귀한 자리에 오르게 된 거야. 

맹상군은 자신이 어렵게 자라서 그런지 빈객들을 대접하는데 소홀함이 없었어. 집안의 부를 정성껏 사용하여 대우하자, 천하의 인물이 몰려들어 식객이 수천 명에 이르렀어. 그리고 빈객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자신과 똑같이 대접했다니 참 대단한 정성이고 겸손한 자세가 아닐 수 없어. 어느 정도였느냐. 손님과 앉아 이야기할 때 병풍 뒤에 기록 비서를 몰래 두었대. 그 비서가 손님의 친척이 있는 곳을 묻고 그것을 적어두었다가 손님이 가고 나면 심부름꾼을 보내 그의 친척에게 예를 갖추고 선물을 주었다고 해. 대단하지. 이런 일도 있었어. 맹상군이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야식을 대접하고 있었어. 그런데 누군가 불빛을 가렸지. 그러니 방안이 어두웠을 거 아냐? 그 손님은 자신의 음식이 맹상군의 것과 같지 않게 부실하니까 어둡게 한 줄 알고 화를 내며 야식을 거부하고 가버리려고 했어. 맹상군이 일어서서 자신의 밥그릇을 들어 그의 것과 비교해 보여주었지. 당연히 똑같은 음식이었지. 손님은 그 사실을 알고 부끄러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이 일로 더 많은 선비들이 맹상군에게 귀의한 건 당연한 일이겠지? 

그렇게 맹상군이 명성을 쌓아가던 어느 날, 이미 강국으로 부상한 진(秦)나라에서 맹상군을 볼모로 삼아 불러들였어. 예전에는 강대국끼리 서로의 화친을 위해 공자들을 그 나라의 볼모로 보내는 일이 많았어. 진나라 소왕은 맹상군의 사람됨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재상으로 삼으려고 했어. 그러자 진나라 대신들이 아뢰었어. 

“맹상군은 지혜로운 사람이나 제나라의 일족입니다. 지금 그를 진나라 재상으로 삼으면 반드시 제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진나라의 일을 뒤로 미룰 것입니다. 그러면 진나라는 위태로워집니다.”

그 말을 그럴듯하게 들은 진나라 소왕은 재상 삼으려던 생각을 바꾸어서 그를 가두고 모략을 짜내 죽이려고 했어. 쓰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도 못 쓰게 해야 한다는 것이지. 이런 사정을 알게 된 맹상군은 사람을 시켜 소왕이 총애하는 희빈에게 풀어주기를 구하게 했지. 자고로 왕들은 사랑하는 여자의 말에 약한 법이니까. 

희빈은 이렇게 말했어. 

“소첩은 군께서 가지고 계신 호백구(狐白裘, 여우 겨드랑이의 흰털이 있는 부분의 가죽으로 만든 옷)를 갖고 싶습니다.” 

맹상군이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호백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야. 그런데 이를 어쩌나. 그건 이미 진나라에 와서 소왕에게 바쳤고 다른 옷은 없었어. 맹상군은 고민에 빠졌지. 같이 온 빈객들에게 대책을 물었지만 속 시원히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어. 그런데 빈객들 중 제일 아래 구석자리에 개 흉내를 내어 도둑질하던 자가 있었는데 그가 나서서 말했어. 

“제가 호백구를 구해올 수 있습니다.” 

죽게 생겼는데 누구 말인들 거절할까? 맹상군은 그를 믿어 보기로 했어. 밤이 되자 그는 개 흉내를 내어 진나라 궁궐 창고에 진입하여 소왕에게 바쳤던 호백구를 훔쳐 가지고 왔어. 얼마나 개 흉내를 잘 내었으면 구중궁궐의 보물을 훔쳐올 수 있었을까? 그 또한 대단한 능력이 아닐 수 없어. 맹상군은 이를 얼른 희빈에게 바쳤지. 기분이 좋아진 희빈이 맹상군을 풀어주라고 감언이설을 하자 소왕은 맹상군을 풀어주었어. 

맹상군은 그 즉시 말을 몰아 달아났지. 국경 통행증을 변조하고 성명을 바꾸어 국경을 빠져나오려고 했어. 당시 진나라는 법가의 사상을 받아들여 강력한 법치주의 국가를 만들었어. 국경을 넘나들 때 반드시 법에 의한 신분자격과 나라의 허락이 있어야 했지. 맹상군은 그걸 위조해서 국경을 빠져나가려고 했다는 거야. 그는 한밤중에야 함곡관에 다다를 수 있었지. 

함곡관은 진나라를 들고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야. 중국 역사에 자주 등장하는 중요한 장소이기도 하니 기억해 두면 좋을 거야. 


진나라 소왕은 맹상군을 풀어준 것을 늦게야 후회하고 사람을 시켜 바삐 말을 달려 맹상군을 쫓으라고 했지. 맹상군은 얼른 관문을 통과해야 했지. 하지만 당시 진나라 국경의 법은 첫 닭이 울어야만 객을 문 밖으로 내보내게 되어 있었어. 맹상군의 발이 묶여 버린 것이지. 맹상군은 추격자들이 들이닥칠까봐 공포에 떨고 있었어. 그 때 또 빈객 중 가장 아랫자리에 있던 자 중에 닭울음소리를 똑같이 내는 사람이 있었어. 그가 닭울음소리를 흉내 내자 근방의 닭들이 모두 울기 시작했어. 그 바람에 문이 열리고 맹상군은 위조한 통행증을 보이고 함곡관을 빠져나갈 수 있었어. 간발의 차이로 진나라 사람들이 국경에 도착했지. 그러나 맹상군이 이미 국경을 빠져나간 뒤여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어. 

처음 맹상군이 좀도둑과 닭울음소리 내는 사람을 빈객으로 삼았을 때, 다른 빈객들은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을 창피해했어. 하지만 맹상군이 위기에 빠졌을 때 그를 구한 것은 그들이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었지. 사람의 능력을 지위나 겉모습만 보고 따지지 않았던 맹상군의 태도가 그를 살린 셈이야. 그 뒤로 빈객들은 마음 깊이 맹상군을 존경하게 되었어. 인재를 제대로 볼 줄 아는 그의 능력은 정말 대단했어. 
맹상군이 진나라에서 죽음의 위기를 벗어나는 이 이야기에서 계명구도(鷄鳴狗盜)라는 말이 나온 거야. 개도둑과 닭울음 소리 내는 빈객이 그를 구했다는 이야기. 사람의 능력은 때에 따라 다 의미 있게 쓰일 수 있다는 사실, 사람을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여기서 배울 수 있지. 


풍환


맹상군이 편견 없이 사람을 보고 그 인간관계를 통해 결국 자신이 큰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은 풍환이라는 사람 이야기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어. 계명구도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니 잘 들어봐. 

맹상군이 빈객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풍환이라는 사람이 맹상군을 찾았어. 그의 모습은 매우 초라했지. 맹상군은 그래도 그를 말없이 빈객으로 맞아 주었어. 맹상군이 말했지. 

“선생께서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주시겠소?”

풍환이 말했어. 

“군께서 선비를 좋아한다기에 가난한 이 몸을 군에게 귀의하고자 합니다.”

별다른 가르침을 주지 못했지만, 맹상군은 풍환을 전사(傳舍, 하급 선비들이 묵는 숙소)에 머무르게 했어. 최소한의 숙식을 제공하기로 한 거야. 열흘이 지나고서 맹상군은 그 숙소 책임자에게 풍환이 무얼 하고 있는지 물었어. 

“풍환 선생은 매우 가난한데 어울리지 않게 칼 한 자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풀로 손잡이를 감은 누추한 것입니다. 그 칼을 두드리면서 ‘긴 칼아 돌아가자. 식사에 생선을 주지 않는구나.’ 노래 부르고 있습니다.”

아무 도움도 주지 않는 주제에 생선 반찬을 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다니. 보통 사람 같으면 뭐 저런 인간이 있나, 화를 냈겠지만 맹상군은 그러지 않았어. 그는 풍환을 행사(幸舍, 중급 선비들이 묵는 숙소)로 옮겨 주었어. 물론 식사에 생선 반찬이 나갔지. 닷새가 지나고 맹상군은 다시 그곳 책임자에게 풍환에 대해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해. 

“저 손님이 또 칼을 두드리며 ‘긴 칼아, 돌아가자. 나갈 때 수레를 주지 않는구나.’ 노래 부르고 있습니다.” 

갈수록 태산이었지. 하지만 맹상군은 역시 달랐어. 아무 대가 없이 그를 대사(代舍, 상급 선비들이 묵는 숙소)로 옮겨 주었어. 드나들 때 수레를 탈 수 있는 등급이었지. 또 닷새가 지난 뒤 맹상군은 숙소 책임자에게 풍환에 대해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어. 

“선생은 여전히 노상 칼을 두드리면서 ‘긴 칼아, 돌아가자. 집이 없구나’ 노래를 부릅니다.”

좋은 반찬 먹이고 재워주고 수레를 태워주는데, 아무 것도 안 하는 주제에 이제 집까지 달라는 거였지. 이 말을 듣고는 천하의 맹상군이라도 기분이 좋을 수 없었어. 그래도 맹상군은 맹상군이었지. 놀고먹는 풍환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어. 

그로부터 한참 뒤의 일이야. 인재를 가까이 두는 맹상군의 명성이 높아지자, 주변 나라들은 그의 능력이 제나라의 국력으로 연결되는 것을 두려워했나 봐. 다른 강대국이었던 진(秦)나라(맹상군을 불러 죽이려던 바로 그 나라)와 초(楚)나라는 계속 맹상군이 군주를 우습게 여기고 나라를 제 멋대로 휘두른다고 비방했어. 자꾸 그렇게 얘기하니 제나라 왕은 마침내 맹상군을 벼슬에서 물러나게 했어. 권력을 잡은 자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권력을 잃는 것이거든. 맹상군이 벼슬을 잃었으니, 그에게 주어지던 여러 혜택도 사라지고 벌 수 있는 돈도 적어졌지. 그런 신세가 되니 빈객들이 맹상군의 곁을 떠나갔어. 참 의리 없는 사람들이지. 그렇게 맹상군에게 대접을 받았으면서 말이야. 그래도 그 곁에는 풍환이 남아 있었어. 

풍환이 말했어. 

“신에게 진나라에 들어갈 만한 수레 한 대만 빌려주십시오. 반드시 나라에서 군을 더 중용하게 하고 봉읍도 늘어나도록 하겠습니다. 어떠십니까?” 

맹상군이 싫어할 이유가 없었지. 수레와 예물을 갖추어 풍환을 진나라로 떠나게 했어. 풍환이 진나라가 있는 서쪽(제나라는 중국 제일 동쪽, 지금의 산동성 쪽이었고, 진나라는 중국의 중서부, 즉 지금의 섬서성 지역이었으니 많이 서쪽으로 간 거야)에 이르러 진나라 왕에게 말했어. 

“천하에 유세하는 선비로 수레와 말을 달려 서쪽 진나라에 들어오는 사람은 당연히 진나라를 강하게 하고 제나라를 약하게 하려 합니다. 반대로 수레와 말을 달려 동쪽 제나라로 들어가는 사람은 당연히 제나라를 강하게 하고 진나라를 약하게 할 것입니다. 이 두 나라는 자웅을 겨루는 나라이므로 형세가 양립하여 둘 다 승리할 수는 없습니다. 이기는 나라가 천하를 얻게됩니다.”

진나라 왕이 솔깃해서 무릎을 다 꿇고 앉아 풍환에게 물었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지지 않겠소?”

풍환이 넌지시 물었지. 

“왕께서는 제나라가 맹상군을 벼슬에서 내친 것을 아십니까?”

진나라 왕이야 당연히 알고 있겠지. 자기들이 비방하여 쫓겨났으니까. 

풍환이 다시 말했어. 

“제나라를 천하의 중요한 나라로 만든 이가 맹상군입니다. 지금 제나라 왕은 그런 맹상군을 다른 사람의 헐뜯는 말을 듣고 내쳤습니다. 맹상군이 원망하며 제나라를 배반할 것입니다. 제나라를 등지고 진나라로 들어오면 제나라의 사정, 인사상황 등을 진나라에 털어놓을 테니 제나라 땅을 쉽게 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승리하지 못하겠습니까? 왕께서는 급히 사람을 시켜 예물을 실어 보내 아무도 모르게 맹상군을 맞아들이십시오. 때를 놓치지 마십시오. 만일 제나라가 잘못을 깨닫고 다시 맹상군을 기용하면 승부는 다시 예측할 수 없습니다.”

진나라 왕은 매우 기뻐하면서 열 대의 수레와 금 백 일(鎰, 한 일은 20 냥. 즉 백 일은 이천 냥)을 보내서 맹상군을 맞이하게 했어. 풍환의 말에 푹 빠져버린 거지. 

풍환은 진나라 왕과 헤어져서는 한 발 앞서 제나라에 도착해서 제나라 왕에게 말했어. 

“천하에 유세하는 선비로 수레와 말을 달려 서쪽 진나라에 들어오는 사람은 당연히 진나라를 강하게 하고 제나라를 약하게 하려 합니다. 반대로 수레와 말을 달려 동쪽 제나라로 들어가는 사람은 당연히 제나라를 강하게 하고 진나라를 약하게 할 것입니다. 이 두 나라는 자웅을 겨루는 나라이므로 형세가 양립하여 둘 다 승리할 수는 없습니다.”

어때, 앞서 진나라에서 한 얘기를 나라만 바꾸어 똑같이 하고 있지? 진나라와 제나라의 대결 국면을 이용하려는 거였지. 풍환은 이어서 말했어. 

“지금 신이 가만히 들어보니 진나라에서 사자를 보내 수레 열 대와 황금 백 일을 가지고 맹상군을 맞이하려 한답니다. 맹상군이 서쪽으로 안 가면 다행이지만 서쪽 진나라로 들어가 재상이 되면 세상 사람들이 마음으로 따르게 되어 진나라가 승리하고 제나라가 질 것입니다. 지게 되면 임치와 즉묵이 위험해집니다.(임치는 당시 제나라의 수도였고, 즉묵은 그에 못지 않은 제나라의 큰 땅이야) 왕께서는 어째서 진나라 사자가 오기 전에 먼저 맹상군을 재상으로 다시 삼고 봉읍을 넓혀 주면서 사과하지 않으십니까? 맹상군은 필히 기뻐하며 좋아할 것입니다. 그러면 진나라가 아무리 강한 나라라 할지라도 어찌 그 나라의 재상이 되어 가겠습니까? 이것이 진나라의 음모를 꺾어 그들이 승리할 길을 막아버리는 길입니다.”

제나라 왕 또한 풍환의 말에 솔깃했어. 왕은 곧장 사람을 국경으로 보내 진짜 진나라 사자가 오고 있는지 확인했어. 그런데 정말로 진나라 사자가 수레와 보물을 가지고 국경으로 들어오고 있었어. 이 사실을 안 제나라 왕은 다급한 마음에 맹상군을 불러 다시 재상 자리에 앉히고 옛 봉읍을 회복시켜 주었을 뿐 아니라 천 호나 더 늘려 주었어. 

풍환은 한 차례 유세를 통해 맹상군의 지위와 부를 회복시켜주었을 뿐 아니라 더해 주었어. 대단한 능력이 아닐 수 없지? 앞서 칼이나 두드리며 무위도식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풍환의 능력이 이 정도일 줄 짐작 했었어? 이 정도 활약이면 일 년 동안 맹상군에게 얻어 먹은 것을 충분히 갚고도 남았다고 봐야겠지. 


사람의 속성


맹상군이 지위와 부를 회복하자, 풍환은 그 전에 맹상군을 떠나갔던 빈객들을 불러오는 일부터 시작했어. 빈객들이 돌아오기 전에 맹상군은 크게 탄식하며 말했어. 

“내가 항상 빈객을 좋아하여 그들을 대접하는 데 실수가 없도록 애썼소. 빈객이 삼천 명이 넘었다는 건 선생도 아는 바요. 그러나 내가 재상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자 그들은 하루아침에 나를 버리고 떠나버리고 날 지켜주는 사람은 없었소. 이번에 선생에 의지해 다시 재상 자리에 오를 수 있었지만 다시 이 빈객들을 대접할 자신이 없소. 만약 다시 나를 만나려고 하는 자가 있다면 면전에 침을 뱉어 크게 욕을 보이겠소.” 

맹상군은 분노에 떨었어. 그럴 만하지. 어려울 때는 모두 도망가 버린 인간들이 이제 지위와 부가 회복되니 다시 기어들어온다고 하니 말이야. 

맹상군의 분노를 보고 풍환은 타고 있던 수레에서 내려와 맹상군에게 절을 했어. 놀란 맹상군도 수레에서 내려와 마주 절하며 물었어. 

“선생께서 빈객들 대신 사과하는 것이오?”

풍환이 대답했지. 

“빈객들 대신 사과하는 것이 아닙니다. 군의 말씀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충고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만물에는 모두 그렇게 되는 결과가 있고, 일에는 당연히 바뀌지 않는 도리가 있습니다. 군께서는 이것을 아십니까?” 

맹상군이 말했어. 

“어리석어 그 말하는 바를 모르겠소.”

풍환이 이어 말했지. 

“부유하고 귀하면 많은 선비가 따르고, 가난하고 천해지면 벗이 적어지는 것은 당연한 섭리입니다. 군께서는 혹시 새벽 일찍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보신 적이 없습니까? 새벽에는 어깨를 맞대면서 앞 다투어 문으로 들어가지만 날이 저물면 서둘러 돌아가면서 시장은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이는 그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저녁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날이 저물면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물건이 시장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군께서 벼슬을 잃자 빈객이 모두 떠났다고 해서 그들을 원망하여 그들이 다시 오는 걸 막을 필요가 없습니다. 원컨대 군께서는 예전과 같이 빈객들을 대우하십시오.” 


이 말에 맹상군이 두 번 절하고 말했어. 

“삼가 그 명을 따르리다. 선생의 말을 들었으니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있겠소.”

풍환의 말은 맹상군이 선비를 대하던 첫 마음을 잊지 말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어. 맹상군은 아버지에게 엉뚱한 데 돈을 쓰지 말고 인재를 기르는데 돈을 쓰라고 충고했었지. 인재가 곁에 있다면 천금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던 건 바로 맹상군이었어. 그런데 지위를 잃고 배신을 당하게 되자, 인재를 갈망하는 그 마음을 잃게 되었던 거야. 맹상군이 대가를 바라고 선비를 대했다면 그가 진나라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을까? 그가 선비들을 능력에 따라 차별했다면 도둑과 소리 흉내꾼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까? 그가 진심으로 풍환을 대접하지 않았다면 풍환이 그의 지위를 회복시키며 그 부를 더해줄 수 있었을까? 나아가 풍환에게 인생의 큰 교훈을 배울 수 있었을까? 그렇지 못했겠지. 


내게 해주는 것을 전제로 사람을 사귀지 않고 진심으로 인재를 대할 때 그 인재가 진정한 나의 편이 되어주고 나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맹상군을 통해 알 수 있어. 모든 사람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가 봐. 얘들아, 아빠는 너희들도 이렇게 진심으로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대접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 너희들이 진심을 다해 사람들을 대할 때 그들도 감동하고 너희들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도움을 주리라 믿는다. 사람을 사귈 때 계명구도의 교훈을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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