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사기열전(史記列傳)> ‘상군열전(商君列傳)’에서
이번에 들려주고 싶은 옛 문장은 ‘이목지신’이라는 말이야. 나무[木]를 옮기는[移] 것의[之] 믿음[信]이라는 뜻이란다. 아니 나무를 옮기는 데도 믿음이 필요하단 말인가? 이번 이야기는 법치의 근본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어. 나라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나?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약속한 것이라면 반드시 지키는 신의(信義)가 있어야 한다는 거지. 요즘 우리 사회에서 약속이 잘 지켜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우리 딸들은 약속을 아주 잘 지키는 것 같은데, 사회의 어른들은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것 같아. 그래서 약속을 지키는 것의 가치, 법이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
춘추시대 위(衛)나라 귀족 중에 공손앙(公孫鞅)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후에 이 사람은 진(秦)나라에서 재상이 되어 상군(商君)에 봉해지기 때문에 주로 상앙(商鞅)이라고 불려. 헷갈리니 우리 앞으로는 상앙이라고 부르자. 상앙은 일찍이 젊은 시절부터 능력을 인정받았어. 그래서 이웃나라 위(魏)나라 재상인 공숙좌를 도와 일을 하고 있었지. 일을 시켜보니 상앙이 마음에 쏙 들었던 모양이야. 늘 그를 추천하고 싶어 했지. 그러던 차에 공숙좌가 병에 걸려 앓아눕자 위나라 혜왕이 직접 병문안차 찾아와서 물었지.
“만약 공숙좌께서 낫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 나라를 어찌 하면 좋겠소?”
공숙좌가 답했지.
“제 밑에 있는 상앙이 나이는 비록 어리지만 재능이 뛰어납니다. 왕께서 그에게 나라를 맡기시고 그의 말에 귀 기울이시기를 바랍니다.”
왕은 말이 없었어. 그 젊은이에게 국사(國事)를 맡길 엄두가 나지 않았겠지. 왕은 문병을 마치고 돌아가려고 했어. 그러자 공숙좌가 정색을 하고 사람들을 물린 다음 이야기했어.
“왕께서 상앙을 등용하지 않으시려거든 반드시 그를 죽여 다른 나라로 가지 못하게 하십시오.”
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어. 왕이 돌아간 후 공숙좌는 상앙을 불러 사과하며 말했어.
“오늘 왕께서 후임을 묻기에 내가 그대를 추천했지만 그 표정을 보니 들을 것 같지가 않소. 임금을 먼저 생각하고 신하를 나중에 생각해야 한다고 믿기에, 상앙을 쓰지 않으시려거든 죽여야만 한다고 했소. 왕께서 나에게 허락했소. 그리되었으니 잡히지 않으려면 어서 떠나시게.”
상앙이 대답했지.
“왕께서 어르신의 말을 듣고도 저를 임용하지 않았는데, 또 어찌 저를 죽이라는 말만 듣겠습니까?”
그렇게 말하고 상앙은 달아나지 않았어.
아니나 다를까 혜왕은 궁으로 돌아와 주위 신하들에게 말했어.
“공숙좌의 병이 깊어 슬프오. 과인더러 상앙에게 나라를 맡기고 의논하라고 하니, 판단력을 잃은 게 아니겠소?”
상앙이 아직 어려 공숙좌의 말을 믿지 못했던 혜왕은 과연 상앙을 쓰지도 않았지만 죽이지도 않았어.
마침 그때 서쪽 진(秦)나라 효공이 나라를 위해 일할 인재를 찾는다는 포고령을 내렸어. 상앙은 자기 나라에서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에 진나라 효공을 만나러 갔지. 효공이 아끼는 신하 경감을 통해서 만날 수 있었지.
처음 상앙은 효공에게 전설 속 다섯 명의 황제[五帝]가 나라를 다스리던 이치를 알려주었어. 효공은 상앙이 물러난 후 경감을 불러다 화를 냈어. 무슨 그런 허황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소개했느냐고 말이야. 효공은 전설에 나올 만큼 아름다운 나라를 만드는 일에 관심이 없었던 거지.
그 이야기를 들은 상앙은 다시 효공을 만났어. 이번에는 왕도(王道)를 설명했어. 인의(仁義), 사랑과 정의로 훌륭한 나라를 만드는 법을 설명한 거야. 그러나 이번에도 효공은 만족하지 못하고 경감을 꾸짖었어.
상앙은 대충 짐작이 간다는 표정으로 다시 효공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어. 이번에는 패자(覇者)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법에 대해 설명해주었어. 관중이 제환공을 도와 나라들 사이의 질서를 잡은 것 같은 다스림에 대한 이야기였지. 그제야 효공은 관심을 보이며 이야기를 들었지만 여전히 상앙을 등용하려고 하진 않았어.
상앙은 한 번만 더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어. 이제 효공의 마음을 확실히 알았노라고 말이야.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는 효공이 어찌나 귀를 기울이는지 스스로 상앙 앞으로 점점 다가가는 것도 모르고, 며칠을 이야기해도 싫증내지 않았어.
중간에서 여러 번 약속을 잡았던 경감은 그 변화가 신기해서 상앙에게 물었어.
“아니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해서 우리 왕의 마음을 사로잡은 게요?”
상앙이 답했지.
“오제의 정치나 왕도, 패자의 정치를 말씀드렸을 때 왕께서는 그 결과가 나오는 길이 너무 멀어서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당장 힘 있는 나라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드렸더니 그렇게 기뻐하신 것뿐입니다. 하지만 옛 사람들의 아름다운 나라를 만드는 일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효공이 시간이 오래 걸려도 아름다운 나라를 만드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당장 강한 나라를 만드는데 관심이 있었다는 것이지. 그래서 상앙도 아쉽기 하지만 부국강병(富國强兵)의 비법을 알려준 것이었어.
그 비법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변법(變法)이었어. 법(法)을 바꾸다(變). 법을 바꾸어 나라를 강하게 만들 수 있을까? 당시 춘추전국 시대의 통치 방식을 간단히 말하면 ‘예(禮)는 서인(庶人)들에게까지 내려가지 않고, 형(刑)은 대부에게까지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이었어. 공경대부 같은 귀족들은 형벌을 주지 않고 예의로써 잘못을 뉘우치게 하고, 서인들, 즉 백성들은 형벌로 다스리는 제도였지. 귀족들은 잘못을 해도 형벌을 받지 않았으니, 왕이 그들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았어. 그러니 왕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다른 나라와 경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어. 그뿐 아니라 백성들도 자신들만 혹독한 형벌의 굴레에 놓여 있다고 생각했고 불평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라에 충성을 다하지 않았지. 그래서 상앙은 진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법을 만들어 옛 제도를 변화시키려 한 거야. 물론 귀족과 백성이 완전히 평등한 대접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나라에 충성하고 백성으로서의 임무를 다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상하(上下)의 구분이 없었어.
이렇게 법을 바꾼다니 저항도 만만치 않았지. 귀족들은 옛 질서의 가치를 이야기하며 상앙의 변법(變法)을 막으려 했어. 두지라는 신하가 말했지.
“백 배의 이로움이 없으면 변법을 해선 안 되고, 열 배의 효과가 없으면 그릇을 바꾸면 안 됩니다. 옛것을 본받으면 허물이 없고 예법을 따르면 사악함이 없습니다.”
그러자 상앙이 말했어.
“세상을 다스리는 데는 하나의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니, 나라에 편하면 옛 법을 따르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은나라 탕왕와 주나라 무왕은 옛 법을 따르지 않고 왕이 되었고, 하나라와 은나라는 예법을 그대로 지켰으나 망했습니다. 옛 법을 반대한다고 비난할 수 없고, 옛 법을 따른다고 족하다 할 수도 없습니다.”
오로지 옛 법을 따르고 말고는 현재의 상황을 보면서, 시대에 맞게 하면 된다는 말이지. 상앙이 보기에는 지금은 법을 바꿀 때라는 거였어. 효공은 마침내 상앙의 손을 들어 변법을 실시하도록 했지.
상앙은 모든 사람들이 힘써 일하고, 전쟁에서 공을 세우면 반드시 상을 주고, 게으르고 사사로이 싸움을 일삼고 개인의 이익만 앞세우는 자들은 반드시 벌을 주게끔 법을 만들었어. 그렇지만 이 법이 반드시 지켜지리라는 믿음을 온 백성들에게 심어줄 필요가 있었어. 그래서 도성의 남쪽 문에다가 커다란 나무를 세워 놓고는 백성들을 모아 놓고 말했어.
“이 나무를 북쪽 문까지 옮겨 놓는 자에게 십 금(金)을 주겠다.”
사람들은 이를 이상하게 여겼어. 그럴 수밖에 없었지. 나무가 좀 크고 남문에서 북문까지 거리가 꽤 되었겠지만 그걸 옮겼다고 금 열 덩이를 주겠다니 믿을 수가 있었겠어? 그러니 아무도 그 명령에 따르지 않았지. 그러자 상앙은 다시 영을 내렸어.
“이것을 옮기는 자에게 오십 금을 주겠다.”
십 금이 아니라 오십 금을 준다니 어떤 사람 하나가 그 영을 따라 나무를 옮겼어. 이에 상앙은 바로 오십 금을 주어 자신이 백성을 속이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했지.
그러고 나서 상앙은 자신이 새로 만든 법을 백성들에게 선포했어. 당연히 법의 권위가 높이 설 수밖에 없었지. 바로 여기서 나무를 옮기는 믿음, 이목지신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오게 된 거야.
처음 변법을 하고 나서는 백성들이 많이 불편해 했어. 그러자 상앙은 법이 잘 시행되지 않는 것은 위에서부터 이를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마침 태자가 법을 어기자 상앙은 지체 없이 태자를 벌하려 했어. 하지만 태자는 왕위를 이을 사람이라 직접 벌을 줄 수는 없었고, 태자를 돕는 공자 건과 신하 공손고를 크게 벌주었지. 왕위를 이을 태자도 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하는데 법이 안 지켜질 리가 없었지. 그 후로 진나라 백성은 모두 상앙의 법을 따르게 되었어.
그렇게 십 년이 지나자 결국 진나라 백성이 모두 만족했어. 길에 물건이 떨어져도 함부로 줍는 사람이 없었고, 산에는 도적이 없고, 집들은 풍족하고 사람들은 만족했어. 백성들은 나라의 전쟁에는 용감했고 사사로운 싸움은 두려워했어. 시골이나 읍이나 모두 아주 잘 다스려졌어. 그는 힘을 받아 나라의 통치를 더 치밀하게 하고 농지를 정리하고 도량형을 통일하는 등 나라를 더욱 부강하게 했어. 그러자 주변 나라에 적수가 없어지고 명실상부한 제후국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어. 이에 효공은 상앙에게 상(商) 땅 등을 주고 그를 상군(商君), 즉 상나라의 대부로 삼았어.
십 년 사이 진나라는 부강해졌지만, 종실이나 귀족들은 불만이 많았어. 특히 공자 건은 태자의 죄 때문에 두 번이나 큰 벌을 받아 특히 원한을 가지고 있었지. 두 번째 벌은 코를 베이는 형이었으니 오죽하겠어.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복수할 마음만 키우고 있었지.
아니나 다를까, 든든한 후원자였던 효공이 죽자, 상앙이 죄를 주려던 태자가 왕이 되었어. 그러자 분위기를 읽은 태자 건과 그를 따른 사람들이 상군이 모반을 일으킬 마음을 품고 있다고 고했지. 미움을 가진 사람들이 권력을 잡자 상앙은 바로 위기에 빠졌어. 새로 진의 혜왕이 된 태자는 곧바로 관리를 보내 상앙을 잡아들이라고 했어. 상앙은 급히 변경으로 달아났어. 밤이 깊어 그곳 객사(客舍)에 묵으려 했으나, 관리자가 상앙임을 몰라보고 말했어.
“상앙의 법에 따르면 여행증명서가 없는 손님을 묵게 하면 그 손님과 엮여 저도 처벌 받습니다.”
상앙은 제가 만든 법에 걸려 낭패를 보게 되었어. 결국 달아날 수 없게 된 상앙은 자기 지역의 군사를 이끌고 주변 정나라를 쳐 살아남으려 했지만 뒤따라온 진나라의 군사에 패배해 결국 죽음에 이르게 돼. 진나라 혜왕은 상군을 잔인하게 죽이고 집안까지 말살해 버렸어.
진나라를 부강케 한 사람의 마지막이 무척 허무하고 안타깝게 되었지? 그렇긴 해도 진나라에서 상앙이 추구한 법치의 방법론이 폐기된 것은 아니야. 법치를 통해 계속 진나라는 강한 나라로 발전해나갔고, 결국 몇 대 후에 진의 영정이 왕이 되어 전국시대를 끝내고 천하를 통일하게 되지. 비록 지나치게 인정 없는 법 적용으로 미움을 받아 자기를 망치게 되었지만, 차별 없는 법을 통해 나라를 강하게 한 상앙의 정신은 살아남았다는 거야.
너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상앙의 법이 지닌 불편부당(不偏不黨)함이야.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에서도 법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을 때가 많아. ‘무전유죄, 유전무죄’, 돈이 없으면 죄고 돈이 있으면 무죄라는 말이 떠돌듯이, 힘과 돈이 있는 사람에게는 관대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가혹한 법 적용이 종종 벌어지곤 하잖아. 나무를 옮긴 사람에게 약속을 지키고, 태자라고 해도 법을 지키지 않으면 반드시 벌했던 불편부당함이 오늘에도 지켜지길 바라. 물론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한도 내에서 말이야. 너희도 원칙을 하나 세우면, 사람을 가리지 않고 원칙을 적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사람들로 자라나길 기대해 본다. 사람의 따뜻함은 잃지 않으면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