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엽(范曄), [후한서(後漢書)] 양수전(楊脩傳)에 나오는 문장
‘계륵’이라는 말은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무제기(武帝紀)」의 배송지(裵松之) 주(注)에 먼저 나오지만,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는 [후한서]를 출전으로 적은 거야. 그 후 소설 [삼국지연의]에 재미있는 이야기로 실려 있어서 이 계륵이라는 말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 어느 것을 출전으로 알고 있어도 상관없어.
너희들에게 이번에 들려주고 싶은 옛 문장은 계륵이라는 말이야. 닭[鷄]의 갈비[肋], 즉 닭갈비라는 뜻이야. 닭갈비라면 너희들도 아주 좋아하는 요리지? 뭐 이런 말이 고사성어로 전해져 오나 싶겠지만, 이 말에는 만만치 않은 비극의 이야기가 숨어 있단다. 후한(後漢) 시대 한 지식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거든. 아무리 뛰어난 재주라도 그것이 알맞게, 적절하게 활용되지 못하면 오히려 그 재주를 가진 사람에게 독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전해주고 있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양수(楊脩)라는 사람이야. 후한(後漢) 시대, 즉 삼국시대 사람이었어. 당시 조조는 한나라 황제를 모시고 최고 지위의 신하인 승상의 자리에 있었고, 손권은 강동을 차지하고 있었고, 유비는 촉땅에 자기 기반을 두고 있었지. 그중 조조가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중국의 노른자 땅을 차지하고 있었어. 조조가 이렇게 강자로 부상하게 된 것은 물론 한나라를 지킨다는 명분 덕분이기도 했지만, 그가 훌륭한 인재를 알아보고 등용했기 때문이기도 해. 때가 난세였던지라 조조는 신분의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고,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따지지 않고 실력과 재주만 있으면 뽑아서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했어. 양수는 이런 조조의 신하였지. 그는 재주가 아주 뛰어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재를 높이 치는 조조에게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양수의 집안은 대대로 정승을 낳은 명문가(名文家)였어. 양수의 아버지 양표도 황제를 보필하는 태위 벼슬을 맡고 있었지. 집안으로 보면 당시 최고 지위에 있던 조조가 한참 아래 급이었어. 조조의 할아버지가 환관이었기 때문이야. 정확히 말하면 조조의 아버지가 환관의 양자였지. 환관들은 왕의 옆에서 큰 권력을 휘둘렀지만 보통 다른 관료들이나 선비들은 그들을 매우 무시했어. 너희들도 내시라고 하면 좀 우습게 생각되지 않아? 후한 시대 가장 먼저 실력자로 부상했던 원소의 경우에도, 조조와 젊은 시절 같이 공부하고 일도 함께 했지만 언제나 조조를 깔봤어. 물론 너무 깔본 탓에 조조에게 오히려 몰락당하고 말지만. 앞에서 ‘수어지교’를 얘기할 때도 잠깐 언급했지? 그런 분위기였으니, 양수도 자신의 상관이긴 해도 조조를 높이 치지는 않았으리라 봐. 게다가 양수의 어머니는 바로 조조를 멸시하던 원소의 누이였으니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았을 거야.
여러 문헌에는 양수가 얼마나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는지 잘 나타나 있는데, 사실 그것들을 들여다보면 다 조조의 지적인 능력을 양수가 지나치게 압도했다는 생각이 들어. 조조 입장에서는 양수의 능력이 그리 반갑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지.
[세설신어(世說新語)]라는 책에 양수의 재주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어.
양수가 조조의 밑에서 주부(主簿)로 일하고 있을 때 이야기야. 그때 나라에서 문을 하나 세우고 있었는데 이제 서까래를 얹으려고 할 때 조조가 와서 보고는 문에다 ‘활(活)’자를 쓰라고 시키고는 돌아가 버렸어.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했지. 그때 양수가 사람들을 시켜 그 문을 헐고 다시 짓도록 했어. 사람들은 양수가 또 왜 그런 명령을 내리는지 궁금해했지. 그러자 양수가 답했어.
“문(門) 자 안에 활(活) 자가 들어가면 넓을 활(闊) 자가 된다. 승상께서는 문이 넓다고 여기신 것이다.”
과연 그의 말대로였지. 아마 조조는 문에다 활(闊) 자를 써놓고는 어리둥절하고 좌충우돌하는 부하들을 보고 싶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마지막에 자신이 나서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리더십을 보이고 싶지 않았을까? 비슷한 일은 또 있었나 봐.
어느 날 조조가 선물 받은 유락(乳酪, 우유로 만든 단 술)을 맛보고 있었어. 그러다 먹던 유락을 내려놓고 그 뚜껑에다 합(合) 자를 써놓고 회중들에게 보여주었어. 사람들은 모두 그 뜻이 무엇인지 몰랐어. 양수의 차례가 되자, 양수는 그것을 냉큼 먹으며 말했어.
“공께서는 여러분이 한 사람씩 먹어보라고 하신 겁니다. 뭘 망설이고 있습니까?”
합(合) 자를 자세히 보면 사람 인(人), 한 일(一), 입 구(口) 자로 되어 있지? 그러니 한 사람씩 먹어보라는 말이 되는 거야. 그걸 양수가 금방 알아채고 유락을 맛본 것이지.
이때 정말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고 양수만 알았을까? 아니면 아는데도 조용히 있었을까? 양수는 조조가 회중에게 답을 말해줄 기회를 빼앗은 게 아닐까? 이 정도는 약과였지. 진짜 양수의 재주가 넘쳐 문제가 되는 사건이 있었어. 그게 바로 ‘계륵’ 이야기이지.
조조가 한중(漢中) 땅을 평정하러 갔을 때 일이야. 한중을 사이에 두고 유비와 맞붙어 있었지. 그런데 전투에 진전이 없어 공격도 수비도 어려웠고 공을 얻기가 어려웠어. 군사들도 나가야 할지, 물러서야 할지 알 수 없었어. 그때 조조가 명령을 내렸는데 계륵이라고 말할 뿐이었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조조 말고는 아무도 알 수 없었지. 그런데 양수만이 홀로 말했어.
“계륵이라는 것은 먹으려 해도 먹을 것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것이다. 공께서는 철수하시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한 뒤 얼마 안 있어 조조는 군사를 돌렸어. 조조는 이때 자신의 마음을 들킨 것 같아 기분이 언짢았어. 보통 다른 신하들은 조조보다 더 뛰어난 모사라고 해도 자신의 의견을 이렇게 직접 누설하거나, 조조의 마음을 거스르면서 얘기하는 법은 없었어. 곽가, 순욱 등 조조가 아끼던 사람들은 모두 조조를 앞세우는 방식으로 자기의 의견을 얘기하곤 했지. 그러니 양수의 모습은 더욱 조조의 눈에 거슬렸을 거라고 봐. 더군다나 군사의 일이란 나라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일이었으니 더 그랬지.
그러다 정말로 조조가 양수를 마음속 깊이 거부하게 되는 일이 있었어.
한 번은 양수가 일하다 말고 밖에 나갈 일이 있었나 봐. 그런데 상관인 조조가 일을 시킬 수도 있잖아? 양수는 조조가 무슨 일을 물어볼 지 미리 예측하고 그에 대한 대답을 적어놓은 후, 심부름하는 아이에게 가지고 있다가 조조가 물어보거든 매겨 놓은 순서대로 답하라고 시키고는 나가버렸어. 그런데 과연 조조가 그대로 질문을 하고 아이는 그대로 대답할 수 있었어. 이런 일이 세 번 반복되자, 조조도 답변이 너무 빨리 오는 것이 이상해서 사람을 시켜 알아보게 했지. 그래서 결국 일이 들통이 나고 말았어. 이 일은 재주를 믿고 조조를 우습게 여기는 양수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일이었지.
그 뒤로도 양수는 조조의 후계 문제에서 반대편에 서는 등 조조의 눈 밖에 나는 행동을 하다가 결국 죽임을 당하게 돼. 역사의 기록에는 조조의 라이벌인 원소의 집안이어서 더 그랬다고 덧붙이고 있어. 조조는 능력을 중시하는 사람이었어. 그렇지만 집안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던 사람이지. 그런 조조 앞에서 양수는 자신의 재능을 지나치게 드러냈고, 윗사람인 조조의 심경을 건드렸어. 기록되어 있는 양수의 재능은 그 기재(奇才)가 참으로 번뜩였지. 하지만 양수가 뭔가 생산적인 능력을 발휘했다는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아. 전쟁의 전략을 마련했다거나, 제도를 개혁했다는 등의 이야기 말이야. 그러니 양수의 경우를 재주가 너무 승해서 몸을 망친 대표적인 경우로 얘기할 수 있어. 결국 ‘계륵’이라는 말은 양수 그 자신에게 적용되어야 할 말이 아닌가 싶어. 재주는 뛰어난데 별로 쓰고 싶지 않은 사람, 마지막에 끝내 버려지는 사람.
양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유는 너희들의 재능이 값지게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야. 하늘이 우리에게 특별한 재능을 주신 이유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이지 자기 과시를 하라고 준 것은 아니지. 아빠는 너희들이 재주 많은 사람, 재능이 출중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 동시에 너희들의 재주와 재능이 자기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사회를 위해, 겨레를 위해 쓰이길 바라. 그러니 양수의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가치 있는 방향으로 재능을 활용하기를 기대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