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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산 Jul 11. 2024

타협하지 않는 삶의 아름다움, 구사일생(九死一生)

굴원(屈原)의 시 이소(離騷)와 그에 대한 유량(劉良)의 주(注)에서

너희들에게 여덟 번째로 들려주고 싶은 고사성어는 구사일생이라는 말이야. 아홉 구(九), 죽을 사(死), 한 일(一), 살 생(生)으로 이루어진 말이지. 지금은 아홉 번 죽을 뻔하다 마지막에 한 번 살아난다는 뜻으로 해석해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고 겨우 살아남는다는 말로 쓰이고 있지. 하지만 원래 문장과 그 뜻은 지금 알고 있는 것과 달라. 굴원의 시에는 “비록 아홉 번 죽는다 해도 오히려 후회하지 않으리.”(雖九死其猶未悔)라고 되어있고, 그것을 설명한 유량의 주에 “비록 아홉 번 죽고 한 번을 살지 못한다 해도 족히 후회하고 한스러워하지 않는다.”(雖九死無一生未足悔恨)라고 되어 있던 문장이야. 왜 하필 아홉 번 죽는다고 했을까? 고대에는 십(十)이 완전수라고 보았어. 그러니 아홉이라고 하면 거의 끝에 다다른 수로 매우 많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지. 혹시 구우일모(九牛一毛)라는 말 들어봤어? 아홉 마리 소에 있는 하나의 터럭이라는 뜻으로, 아주 미미한 존재나 그러한 일을 말하는데, 여기서도 많은 소라는 뜻으로 아홉 마리 소가 쓰인 것을 볼 수 있지. 그러니 아홉 번 죽는다 해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표현은, 수없이 죽는다 해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새겨 읽어야 해. 

그러니까 구사일생은 원래 간신히 살아남는다는 뜻이 아니라 절대 살지 못하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담은 문장이었지. 이번 이야기에서는 이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살아간 굴원이라는 사람의 삶을 들려주려고 해.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이 거기 있어. 


초나라의 굴원


굴원은 전국 시대 초나라에서 태어났어. 굴원이 초나라 사람이라는 게 중요해. 초나라는 옛 중국의 중심지인 중원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었고, 중국이 형성되던 시기에는 남쪽 오랑캐로 불리던 변방 지역이었어. 물론 춘추전국 시대에 이르러 중원의 역사에 포함되었지만, 중국 중원과 북방의 문화와는 많이 다른 풍토와 문화를 가진 나라야. 호수, 강 등 물이 많고 훨씬 따뜻해서 물산이 풍부한 동네였지. 그래서 상대적으로 여유 있고 낭만적인 삶의 태도를 보이는 지역이었어. 낭만적인 태도라는 것은 이상(理想)을 중시하고 격정적인 정서를 가지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쉬워. 그래서 초나라에서는 혁명가들이 많이 나왔지. 진나라의 통일에 반대해 항쟁을 일으킨 유방과 항우가 다 초나라 출신들이고, 20세기 지금의 중국을 만든 혁명가 모택동(毛澤東, 마오쩌둥)도 이 지역 출신이야. 매우 선이 굵고 강렬한 삶을 산 사람들이 많은 동네이지. 그래서 이 지역의 문학 또한 독특한 감성을 가지고 있어. 여기서 나온 고대 시들을 따로 ‘초사(楚辭)’라고 불러. 그런데 이 초사의 핵심을 차지하는 사람이자, 이 지역의 강렬한 삶의 원조가 바로 굴원이야. 

굴원의 삶은 유복했어. 집안은 초나라 왕실과 친족 관계여서 유복하게 자라고 벼슬길에도 쉽게 오를 수 있었지. 초나라 희왕 때 좌도로 있으면서 왕실 문서를 작성하고 외교를 관장하는 일을 맡았어. 지식이 풍부하고 기억력이 뛰어난 데다 사리에 맞게 일을 잘 처리하면서 문장 솜씨까지 뛰어나 금방 일에서 두각을 나타냈지. 그런 굴원을 희왕은 매우 신임했어. 

그런데 어디나 남의 재능을 시기하는 사람은 있는 모양이야. 당시 상관 대부였던 근상은 굴원과 지위가 같았는데, 희왕이 굴원만 총애하니 그를 시기하기 시작했어. 그래서 굴원을 무너뜨릴 기회만 엿보고 있었지. 어느 날 희왕이 굴원에게 나라의 법령을 만들라고 시켰어. 근상은 이걸 기회로 삼았지. 굴원의 총명함이 널리 알려진 것을 역이용하기로 마음먹었어. 근상은 왕에게 가서 이렇게 굴원을 모함했어. 

“왕께서 굴원에게 법령을 만들도록 하신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그는 법령이 하나 만들어질 때마다 자기 공을 뽐내며 ‘자기가 아니면 법령을 제대로 만들 사람이 없다.’고 말하고 다닙니다.” 

희왕은 그리 신의 있는 사람이 아니었던 모양이야. 요새 말로 하면 귀가 얇은 사람이었다고 할까, 그런 모함을 몇 번 듣고는 화를 내며 이내 굴원을 멀리하기 시작했어. 결국 굴원은 관직에서 쫓겨나고 말았어. 굴원은 왕이 다른 사람들의 좋은 말을 듣는데 밝지 못하고 남을 헐뜯고 아첨하는 말에 휘둘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어. 흉악한 말로 상대를 공격하여 공정함을 해치고, 그 결과 옳고 곧은 사람이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마음 아파했지. 이때 지은 그의 시가 바로 「이소(離騷)」였어. 


합종과 연횡


굴원이 관직에서 쫓겨난 뒤, 초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에 놓이게 돼. 전국시대 후반으로 오면서 살아남은 7개의 나라들 중 서쪽의 진나라가 홀로 강대해져서 나머지 여섯 개 나라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었지.

<방약무인> 편을 참조하렴. 

이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여섯 나라가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게 되는데 그 흐름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보면 합종(合縱)과 연횡(連橫)이야. 서쪽의 진나라를 빼고 여섯 나라가 얼핏 보면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위로부터 아래로 죽 나열된 모양이었거든. 제일 위 지금의 요동지방에 연나라, 그 아래 제나라와 조나라, 그 아래 위나라, 그 아래 한나라, 제일 아래 초나라 식으로 말이야. 그중 조, 위, 한, 초는 진나라와 맞붙어 있었고 연, 제는 더 떨어져 있었지만 크게 한 줄로 늘어서 있다고 생각한 거지. 합종이란, 종(縱)으로, 그러니까 위로부터 아래로 여섯 나라가 세로로 합쳐서 힘을 모아 서쪽의 강자 진나라에 대항하자는 외교전술이었어. 이런 논리를 펴서 여섯 나라의 재상을 한꺼번에 역임할 수 있었던 사람이 바로 소진(蘇秦)이야. 반대로 횡으로, 그러니까 가로 방향으로 힘센 진나라와 손잡고 다른 나라를 함께 정벌함으로써 살아남으려고 했던 외교 전술이 연횡이야. 이런 논리로 소진의 합종책을 깨고 여러 나라의 재상이 되었던 사람이 장의(張儀)였지. 아마 힘이 약한 여섯 나라가 죽 합종의 정책을 쓰면서 진에 대항했으면 전국 시대는 상당히 더 지속됐을지도 몰라. 하지만 어디 권력의 욕심이 그런가. 남이 죽더라도 자기는 살고 싶은 생각에, 많은 나라가 합종보다는 연횡에 빠져들게 되지. 그러면서 진나라의 동진(東進)이 가속화되지. 

굴원이 쫓겨날 즈음, 진나라는 제나라를 치려고 했어. 하지만 당시만 해도 여러 나라들이 합종의 외교정책을 쓰고 있을 때라 제나라를 칠 때 바로 아래 초나라가 도와줄까 봐 진나라 혜왕이 걱정을 했지. 이 문제를 해결해 준 사람이 바로 장의야. 장의는 많은 예물을 들고 초나라 희왕에게 와서 말했어. 

“초나라가 제나라와 관계를 끊을 수 있다면 진나라는 상과 오의 땅 600리를 바치겠습니다.” 

초나라 희왕은 이 말에 솔깃해서 제나라와의 국교를 끊었어. 그리고 진나라에 사신을 보내 땅을 받아오도록 했지. 그런데 웬걸. 장의는 바로 오리발을 내밀었어. 

“나 장의는 초나라 왕에게 땅 6리를 준다고 약속했지 600리를 준다고 한 적이 없소.”

600리를 6리라고 하니, 제나라와의 의리도 끊고 결행한 외교에 대해 완전히 무시를 당한 셈이지. 희왕은 화가 나서 앞뒤 재지 않고 진나라로 쳐들어갔어. 하지만 달리 진나라가 강자였을까. 초나라 군대는 크게 패해 8만 명의 군대가 희생되고 장수 굴개가 사로잡힌 데다 초나라 노른자 땅 한중까지 빼앗기고 말았지. 그 뒤 패배한 것에 화가 나 더 많은 군대를 모아 진나라 깊숙이 쳐들어갔으나, 오히려 더 큰 패배를 맞게 되었고. 스스로 합종책을 깨버렸으니 이렇게 당하는 동안 도와줄 주변국들도 없었지. 희왕은 간신히 살아 돌아올 수 있었어. 

이듬해 진나라는 초나라의 검중 땅을 얻으려고 그전에 얘기했던 상과 오 땅과 맞바꾸자고 제안했어. 이에 희왕이 말했지. 

“땅은 필요 없소. 장의를 보내주시오. 그러면 검중 땅을 주겠소. 나는 마음을 편하게 하고 싶소.”

자기에게 모욕을 주고 큰 패배를 만든 장의를 사로잡아 복수하고 싶었던 게지. 

진나라 왕으로서는 승리에 큰 역할을 한 장의를 죽는 자리로 보내기가 어려웠지. 그러자 장의 스스로 초나라로 가겠다고 나섰어. 나름대로 죽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지. 초나라에 사신으로 온 장의는 앞서 언급한 근상이라는 신하에게 예물을 잔뜩 바쳤어. 근상은 초나라 희왕의 부인 정수의 신임을 듬뿍 받는 신하였지. 희왕은 장의가 오자마자 옥에 가두어 죽이려고 했어. 이에 근상이 왕비 정수에게 가서 이야기했지. 

“부인께서는 왕의 총애가 식어서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정수가 깜짝 놀라 무슨 말인지 되물었지. 이에 근상이 답했어. 

“장의는 진나라 왕이 몹시 아끼는 사람이니 반드시 감옥에서 구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진나라에서는 여러 도읍도 초나라에 주고 진나라의 노래 잘하는 미녀들을 진상할 것입니다. 진나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희왕은 땅을 감사히 받을 것이고 진나라 미녀들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부인께서는 버림받게 됩니다. 그러니 왕께 말씀드려 장의가 풀려나도록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자기 남자에게 딴 여자가 생긴다는데 놀라지 않을 여인이 어디 있겠니? 왕비는 밤낮으로 희왕에게 간청했지. 

“진나라가 장의를 선뜻 보내준 것은 진나라가 전하를 진심으로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장의를 죽여 버린다면 진왕이 노하여 다시 초나라를 칠 것입니다. 그리되면 우리 모자는 강남의 고기밥밖에 더 되겠습니까?” 

이렇게 부인이 부탁을 해대니 거기에 또 솔깃한 희왕이 자기 원수도 잊고 장의를 사신으로 잘 대접하다 보내버렸어. 귀가 얇디얇은 왕이 아닐 수 없지?

제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돌아오는 길에 그 사실을 들은 굴원은 벼슬자리에 있지 않았지만 왕에게 장의를 죽이라고 진언했어. 장의의 연횡책이야말로 초나라를 멸망의 길로 이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희왕은 그제야 후회하고 장의를 죽이려 뒤를 쫓게 했으나 잡을 수 없었어. 희왕은 땅 잃고, 명예 잃고 종이호랑이 신세가 된 셈이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진나라와 연횡 했던 제나라, 한나라, 위나라가 초나라를 쳐들어왔어. 이 싸움에서 초나라는 계속 지기만 했지. 이때 진나라의 왕은 소왕이었는데, 초나라와는 혼인관계를 맺은 왕이었어. 그가 짐짓 화해를 하자면 제안했지. 

“과인은 초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고, 예로부터 혼인 관계를 맺어 서로 친하게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초나라와 진나라 사이에 우호관계를 만들지 못해 천하가 어지럽습니다. 과인은 군왕과 무관에서 회동하여 서로 얼굴을 보고 맹약을 맺어 화해하고자 합니다.”

자기 땅으로 들어와서 화친을 맺자는 이야기였지. 희왕은 근심이 되었어. 가자니 함정일 것 같고, 안 가자니 진왕이 노여워 쳐들어올 것 같았지. 겁이 많은 초나라 희왕은 결국 진나라로 들어가려고 해. 이때 굴원은 이를 결사반대하지.

“진나라는 호랑이나 이리 같은 나라입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가시지 마시옵소서.”

그러나 희왕의 어린 둘째 아들 자란은 자기 아버지인 왕에게 진나라로 가라고 권해. 진나라의 호의를 거절하면 더 큰 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말하지. 희왕은 이때도 충신의 말을 듣지 않고 아직 경험이 부족한 자기 아들의 말을 듣고 진나라로 향해. 희왕이 진나라 무관으로 들어가자, 진나라는 미리 숨겨 두었던 병사들에게 그 뒤를 끊게 하여 희왕을 사로잡고 초나라 땅 검중을 달라고 요구하지. 그러면서 희왕을 동등한 왕으로 대접하지 않고 마치 신하를 대하듯 했어. 아마 춘추시대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야. 싸우더라도 제후국들 사이에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면서 싸웠지. 그러나 나라 사이에 약육강식의 싸움이 거듭되다 보니 전국시대 후반에는 이렇게 상대를 모욕하고 거짓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일들이 벌어지게 되지. 진나라가 그런 모략에 앞장섰던 것이고 초나라 희왕은 안일한 생각만 하다가 큰 모욕을 당하고 만 것이야. 희왕은 그 상황을 빠져나오기 위해 진의 옆에 있는 조나라로 간신히 도망했어. 하지만 진나라를 두려워하던 조나라는 망명하겠다는 희왕을 받아주지 않았어. 그래서 희왕은 고달프게 그 아래 위나라로 도망하려다 도로 진나라에 붙잡혀 오고 말지. 그리곤 끝내 망명객으로 진나라에서 죽고 말아. 시체가 되어서야 겨우 고국에 돌아올 수 있었어.  


초나라의 몰락


그가 죽자 맏아들이 경양왕으로 왕위에 오르고, 아비를 진나라에 보내 죽게 만든 자란은 재상이 되었어. 초나라 사람들이 보기에 자란이 재상이 된 것이 이해가 될까? 제 아비를 죽음으로 몰고 간 자식이 재상이 되었으니 많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겠지. 굴원은 희왕이 진나라로 가는 것을 말렸던 사람으로 더욱 분통을 터뜨렸어. 

“희왕은 지혜롭지 못했다. 그는 충신을 알아보지 못했고, 줏대 없이 아내인 정수에게 미혹되고, 장의에게 속았으며, 나를 멀리하고 오히려 상관 대부와 자란을 믿었으니까. 그 결과로 초나라는 몰락의 길을 가게 되었고, 자신은 참혹하게 객사하고 말았다. 왕이 현명하면 모든 사람이 그 복을 받는다고 했는데, 왕이 현명하지 않은데 어찌 복이 있겠는가?”

재상이 된 자란에게 굴원의 이 말이 들어가게 되었어. 당연히 화를 낼 수밖에 없었지. 마침내 상관 대부를 시켜 자기 형인 경양왕 앞에서 굴원을 모함하게 하자, 경양왕은 그 말을 믿고 화를 내며 굴원을 멀리 유배 보내.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할까.  


굴원의 결단


그 당시로는 오랑캐 땅이었던 장강(長江) 이남 습지로 유배당한 굴원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강가에서 폐인처럼 시나 읊조리면서 살아갔어. 당연히 모습은 초라하고 젓가락처럼 야위었겠지. 지나가던 어부가 그를 보고 물었어?

“당신은 삼려대부가 아닙니까? 어찌 이런 신세가 되었습니까?”

굴원이 답했어. 

“온 세상이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어서 쫓겨났소.” 

대단한 자신감이 아닐 수 없어. 세상이 더러워도 홀로 깨끗한 삶을 산다는 자존심. 눈 온 뒤에 홀로 푸른 소나무를 떠올릴 수 있지. 독야청청(獨也靑靑)한 소나무. 

그런데 질문을 한 어부도 보통 어부는 아니었던 모양이야. 굴원의 말에 반론을 제기하지. 

“무릇 성인(聖人)이란 세속의 변화에 구애받지 않고 물질에도 좌우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세상이 온통 혼탁하다면 그 물결을 타도 그만 아니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취해있다면 함께 취하는 것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스스로 깨끗하면 그만이지 왜 스스로 내쫓기는 일을 하십니까?”

시대가 탁한 것을 이기지 못할 바에야 시류에 흘러가면서 스스로를 지키는 것도 삶의 방법이 아니겠냐는 이야기였지. 거기에 굴원이 이렇게 대답해. 

“머리를 새로 감은 사람이 더러운 관을 쓸 수 있겠소? 반드시 관의 먼지를 털어 쓸 것이요. 목욕을 새로 한 사람이 더러운 옷을 입을 수 있겠소? 깨끗한 몸에 때를 묻히지 않는 옷을 입을 것이요. 하얗고 깨끗한 몸을 속세의 티끌로 더럽히느니 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에 장사를 지내는 게 낫소.”

타협할 수 없다는 뜻을 더욱 분명히 한 것이지. 그리고는 <회사(懷沙)>라는 시를 지었다고 사기에 기록되어 있어. 


(상략)
모난 것 깎아 둥글게 만들려 하지만 / 본래의 법도는 바꿀 수 없네. 
처음 뜻을 바꾸는 것 / 군자는 부끄러이 여기네. 
먹줄을 긋듯 바르게 줄을 긋는 것은 / 오랜 법도를 어기지 않네. 
(중략)
흰 것이 검은 것이 되고 / 위가 뒤집어져 아래가 되네.
봉황은 새장에 갇혀 있고 / 닭과 꿩은 하늘을 나네. 
옥과 돌을 뒤섞어 / 하나로 헤아리니 
저들은 깔보고 시샘하여 / 내 좋은 점을 알 수가 없네. 
(중략)
근심을 만났으나 마음을 바꾸지 않고 / 내 뜻 뒷날의 본보기가 되기 바라네. 
북쪽 길로 가서 머물려하니 / 날은 어둑어둑 저물어 가네.
근심 삼키고 슬픔 달래면서 / 끝내 죽음을 바라보네. 
(하략)


굴원이 보기에 전국 시대의 혼란한 세상은 모난 것을 깎아서 둥글게 만들려는 곳이었어. 네모는 네모대로 존중해 주고, 둥근 것은 둥근 것 그대로 존중해 주는 세상이 좋은 세상일 텐데 그렇지 못하니 굴원은 견디기 어려웠지. 오히려 흰 것이 검은 것이 되고, 위가 뒤집어져 아래가 되는 세상이었어. 초나라를 살리는 굴원의 말은 왕의 미움을 받는 말이 되고, 초나라를 망하게 하는 말은 받아들여지는 세상이었으니 말이야. 또 봉황이 새장에 갇히고 보잘것없는 닭이 날아오르는 세상이었지. 굴원같이 재주가 비상하고 올곧으며 충성스러운 신하는 변방 습지로 쫓겨나 비참한 삶을 살고, 제 아비를 죽음의 자리로 내몬 자란 같은 자는 재상이 되어서 떵떵거리는 세상이었으니까 말이야. 굴원은 그런 세상을 살기 어려웠어. 그래서 그는 죽음을 생각하게 되지. 어부의 말처럼 자기를 지키며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길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아. 그가 시에서 말했듯이 자신의 뜻이 뒷날의 본보기가 되길 바랐기 때문이야. 살아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고결한 마음을 간직한 채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아름다운 가치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거야. 

결국 유배지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던 굴원은 세상과 타협하는 삶 대신 죽음을 택했어. 어느 날 돌을 안은 채 멱라강에 몸을 던졌지. <회사>라는 시에서 말한 그대로였지. 그리고 그것은 이미 <이소>라는 시에서 예견된 것이었어. 


(상략)
길게 탄식하며 눈물을 닦고
내 인생에 고난 많음을 슬퍼하니
미덕을 좋아하고 언행을 절제했건만
아침에 바른말 전하고 저녁에 쫓겨났네. 
혜초를 둘렀다고 이미 버려졌으나 
다시 구리때를 두르고 있었으니 
그래도 내 마음이 찬미하는 것이기에 
비록 아홉 번 죽는다 해도 후회하지 않으리. (雖九死其猶未悔)
(하략)


향초(香草)인 혜초와 구리때를 둘렀다는 것은 그만큼 굴원이 고결한 삶을 살았다는 말이야. 지저분한 세상에서 혜초를 둘렀다고 버려졌으나 다시 향초인 구리때를 두르고 살아가기를 마다하지 않은 삶이 굴원의 삶이었지. 마음에 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아홉 번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태도로 살아가겠다는 것이 굴원의 각오였고, 결국 그 각오를 지킨 셈이야. 유량이 주를 단 것처럼 아홉 번을 죽어 한 번을 살지 못한다 해도(雖九死無一生) 자기 뜻을 지켜나갔던 것이지. 

굴원이 죽은 뒤에 굴원의 올곧은 삶과 죽음을 칭송하는 사람들이 많았어. 굴원처럼 좋은 시를 쓰는 사람도 많았고. 하지만 굴원처럼 초나라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간언 하는 사람은 없었어. 그러니 초나라는 날로 쇠약해지다가 한 세대쯤 지난 후에 진나라에게 멸망하고 말았지. 

후대 사람들은 고결한 삶을 산 굴원을 높이 기렸어. 오월 오일 단오절 행사가 바로 굴원을 기리기 위한 행사야. 

우리의 단오가 전통 신앙에서 비롯된 것과는 많이 다르지. 사실 이름만 같지 완전히 다른 행사야.

중국의 가장 큰 전통축제가 굴원에게서 비롯한 것이지. 그뿐 아니라 굴원은 중국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삶, 아름다운 죽음의 문제를 제기한 최초의 인물로, 죽음을 불사하며 정의를 지키는 동양의 지조 있는 삶을 대변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어. 


우리 딸들에게도 굴원의 삶과 죽음이 기억되길 바라. 자기가 정한 원칙을 끝까지 지키려는 태도,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자신의 고결한 뜻을 간직하는 모습. 구사무일생의 삶. 그것보다 더 바라는 것은 굴원이 죽음을 택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야. 옥과 돌을 제대로 구분하는 세상, 재능 있는 사람을 시샘하지 않는 세상, 진정성 있는 말들이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되길 바라. 그래서 옳은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필요가 없는 세상, 자기 원칙과 자기 개성과 자기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이길 원해. 구사무일생의 각오를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어 그 안에서 아름다운 삶을 펼치는 너희들을 상상해. 함께 그런 세상을 만들어보기 위해 노력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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