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사기열전(史記列傳)> ‘골계열전(滑稽列傳)’ 중
-이번에 들려주고 싶은 옛 문장은 서문표투무라는 말이야. 서문표(西門豹)라는 사람이 무당[巫]을 던졌다[投]는 뜻이란다. 서문표라는 사람이 왜 무당을 던졌을까? 어디다 던졌단 이야기일까? 궁금해지지? 이 이야기는 사기열전의 골계열전에 실려 있는 이야기인데, 골계란 유쾌함, 재미있는 풍자(諷刺)를 뜻하는 옛날 말이야. 사마천이 유쾌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모아 놓은 부분이 골계열전인데, 그 안에 있는 이야기이니 너희들에게도 꽤 재미있을 거야. 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생각의 힘에 대해 배울 수 있어 더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해.
때는 전국시대 위(魏)나라 때였어. 서문표라는 선비가 업(鄴)이라는 고장의 수령으로 가게 되었어. 그는 공자의 제자 중에서도 가장 명성이 드높았던 자로(子路)의 제자로 유가(儒家)의 합리적인 전통을 잘 잇는 사람이었어. 그는 업에 도착하자마자 마을에서 존경받는 원로(元老)들을 불러 업의 백성들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물었어. 마을을 파악하기 위한 당연한 조처였지. 원로들이 대답했어.
“이곳의 백성들은 하백(河伯)에게 처녀를 바치는 일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가난하기도 합니다.”
하백은 강을 뜻하는 하(河)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강의 신을 말해.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 일본에도 비슷한 신들을 하백이라고 불렀어.
처녀를 바친다는 이야기는 뭐고, 그것 때문에 가난하다는 건 뭘까? 서문표는 그 이유를 자세히 캐물었어. 원로들이 대답했지.
“우리 고장의 삼로(三老, 지방에서 교화를 담당한 관리)와 아전(衙前, 관청에 딸린 구실아치)들이 해마다 백성의 세금을 수백만 전을 걷는데, 그중에서 하백에게 처녀를 바치는 데 2,30만 전을 쓰고 그 나머지는 무당들과 나누고 돌아갑니다. 그때가 되면 무당이 백성들의 집을 돌아다니면서 예쁜 처녀를 골라 하백의 아내로 점찍어서는 데리고 갑니다. 처녀를 목욕시키고 새로 짠 비단옷을 주고 얌전히 머물게 합니다. 재궁(齋宮)을 강 쪽에 짓고 장막을 쳐놓고 처녀를 머무르게 하면서 소고기와 술과 밥을 잘 먹입니다. 열흘쯤 지나면 화장을 시키고 시집갈 때 딸려 보내는 이부자리나 방석 같은 것을 만들어 그 위에 처녀를 태워 강 위로 띄어 보냅니다. 처음에는 떠 있지만 수십 리쯤 가면 물에 가라앉습니다. 이렇게 억울하게 딸들을 잃게 되니 처녀가 있는 집에서는 무당이 자기 딸을 하백에게 바칠까 봐 딸을 데리고 멀리 달아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니 성 안에 갈수록 사람이 없어 비게 되고 그러니 가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된 지 참으로 오래되었습니다. 민간에는 하백에게 여자를 바치지 않으면 백성들이 빠져 죽을 것이라는 말이 계속 돌고 있고요.”
가만히 듣던 서문표가 말했어.
“삼로와 무당과 부로(父老)들이 하백에게 보내려고 처녀를 물 위로 보낼 때 와서 알려주기 바라오. 나도 가서 그 여자를 전송하겠소.”
새로 온 수령의 말이니, 모두 그러겠다고 했지.
드디어 여자를 바치는 날이 왔어. 서문표가 강가로 나갔지. 이미 삼로와 관리들과 마을 부로들이 다 모여 있고, 구경 나온 백성들도 이삼 천 명이나 있었지. 일을 주도하는 무당을 보니 노파인데 한 칠십은 되어 보였어. 여제자들이 열 명 정도 따르고 있었는데 모두 비단으로 된 홑겹옷을 입고 큰 무당의 뒤에 서 있었어.
서문표가 말했어.
“하백의 신붓감을 불러오시오. 그가 예쁜지 확인해야겠소.”
그러자 장막 안에서 처녀를 데리고 나와 그의 앞에 세웠어. 서문표가 처녀를 보고 나서 삼로와 무당과 부로들을 돌아보고 말했어.
“이런, 이 처녀가 아름답지가 않구려. 번거롭겠지만 큰무당이 들어가서 하백에게 예쁜 처녀를 다시 구해 후일에 보내드리겠다고 제안을 해주시오.”
그리고는 바로 이졸들을 시켜 큰무당을 안아서 강물 속으로 던져버렸어.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지. 조금 있다가 서문표가 다시 말했어.
“무당이 왜 이리 꾸물거리는 게야? 제자들은 가서 재촉 좀 하라.”
그러고는 제자 한 명을 강물 한가운데로 던져버렸어. 조금 지나서 다시 말했어.
“제자도 꾸물거리는구나. 다시 한 사람 보내서 재촉하게 하라.”
또다시 제자 한 명을 강물 속으로 던져버렸어. 모두 세 명의 제자를 던져버리고 서문표가 말했어.
“무당과 그 제자들이 여자라서 사정을 얘기하기가 어려운 모양이오. 번거롭겠지만 삼로가 말을 전해주시오.”
그러고는 다시 삼로들을 강물 속에 던져버렸어. 서문표는 태연하게 붓을 관에 꽂고 쭈그리고 앉아 물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을 기다렸어. 곁에서 보고 있던 원로와 아전들이 모두 놀라고 두려워 떨었어. 서문표가 그런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어.
“무당도 삼로도 모두 돌아오지 않으니 어찌해야 하겠소?”
다시 아전과 부로들을 한 사람씩 시켜 재촉케 시켰어. 그러자 모두들 머리를 조아려 이마가 깨져 피가 땅에 흐르고 낯빛은 잿빛이 되어버렸어. 그 꼴을 보고 서문표가 말했어.
“좋아. 그대로 있어 보거라. 조금만 기다려보자.”
얼마 후 서문표가 말했어.
“관리들은 일어나라. 하백이 손님들을 오래 머무르게 하는 모양이다. 모두 돌아가도 좋다.”
그 자리에 있던 관리나 백성들 모두 크게 놀라고 두려워했어. 이날 이후로 그 누구도 감히 하백을 위하여 신붓감을 바쳐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지.
어때? 통쾌하지 않아? 하백이라는 물의 신이 있을 턱이 있겠어. 고대의 일이지만 유교의 합리주의적 사고에 익숙한 서문표는 삼로와 무당, 그리고 그 추종세력들이 백성들의 재산을 갈취하기 위해 미신(迷信)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파악했던 거지. 백성들은 말도 안 되는 미신 행사를 지탱하느라고 돈도 빼앗기고 금쪽같은 딸도 빼앗기고 있었으니 이보다 더한 불행이 어디 있겠어. 게다가 그게 무서워서 백성들이 다른 고장으로 도망가니 업이라는 고장이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되어가는 건 더 큰 일이었지. 서문표는 미신 행사의 복판으로 들어가서, 보란 듯이 그들의 사기행각을 역이용해서 백성들을 갈취하던 일파들을 처단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서슬 퍼렇게 교훈을 주었어.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하지 않는다는, 현실의 문제를 실체적으로 성찰하려는 유가(儒家)의 정신이 빛나는 순간이었지.
너희는 이런 미신, 미망(迷妄)에 빠지지 않겠지? 이외로 많은 사람들이 어설픈 속설에 속아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어. 살아가면서 항상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커가면서 주변에서 미혹(迷惑)에 빠지는 경우가 있거든, 이 서문표의 통쾌한 일화, 서문표투무를 기억하면서 어려움을 헤쳐가길 기대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