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르코 Apr 18. 2016

밤새고 스벅

재택근무에는 책임도 뒤따른다

아래는 <출퇴근 없는 삶>의 목차이자 시리즈 첫 글




이탈리아에 돌아와서 시차 적응에 완전히 실패했다. 첫날 10시에 잠들기 성공하고 그 다음날 무난히 아침에 잠을 깨서 별 일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날 정오에 일어나서 낮잠을 2시간 더 잤다. 그러니 잠이 올리가. 새벽 6시까지 한숨도 못 자고 침대에서 뒤척이다가, 이대로는 시간 낭비하겠다 싶어서 짐을 챙겨서 집 앞의 스타벅스로 나온다. 7시에 나와서 일 할 수 있는 곳은 스타벅스뿐이다. 잘 찾아보면 다른 곳도 있겠지만, 상해로 가기 전 공덕역 근처에서 머물고 있기 때문에 근처에 뭐가 있는지 제대로 모르는지라 편한 이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선 한국에서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긴 일정으로 유럽 여행을 간다는 것 자체가 힘들겠지만, 어렵게 만든 휴가를 다녀와서 이메일을 확인하고 밀린 업무만 처리하고 나면 동료들과 커피 한 잔 마시며 여유를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밀린 업무가 며칠 야근을 해야 해결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데 원격으로 근무하는 프리랜서에게는 휴가를 다녀온 후에 몸의 상태가 어떻든지 최상의 업무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에 내가 이탈리아 다녀온 경우는 예외적으로 클라이언트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하고 떠났기 때문에 온전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컴퓨터를 싸들고 여행지에서도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어디서든 일 할 수 있는 개발자의 특성은 반대로 '어디서든 일해야'하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나도 거의 여행에 집중을 하는 일정을 보냈지만, 여행 말미에는 한국에 돌아와서 처리해야 하는 프로젝트 일정이 마음에 걸려 이메일을 들여다보다 정신 차리고 부인에게 미안함을 전하기도 했다.


어제저녁에는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디자인 업체 대표 한 분과 만났다. 같이 프로젝트 이야기도 하며 잠깐 시간을 보냈는데, 예상하지 못했던 클라이언트의 요구나 변경 요청 혹은 개발자의 실력 부족을 접할 때면 힘들다고 이야기를 한다. 개발 역시 2달로 생각하고 시작했던 프로젝트가 클라이언트의 기능 변경 혹은 추가 요청으로 3~4달로 늘어나는 경우가 있다. 프로젝트가 길어지면 쉽게 지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개발에 비전문가인 클라이언트와 일하다 보면 아무리 꼼꼼하게 챙겨도 변하는 곳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다. 어떻게 보면 어느 정도는 예상 가능한 회사 일보다는 훨씬 뜻밖의 일이 많이 일어나는 것이 프리랜서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힘들어도 출퇴근 시간을 지켜가며 회사에 나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본인이 '스스로 생활을 관리하기 어렵다'거나 '혼자 큰 책임을 지는 것이 부담스럽다'거나 '변화에 순발력 있게 대응하기보다 예상 가능한 반복적인 일이 좋다'면 프리랜싱을 하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리랜서 개발자의 계약서 도장 찍는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