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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Oct 30. 2016

전자책 예찬

전자책, 한 번 들면 종이책으로 돌아갈 수가 없어요

주말에 책 5권을 읽었다, 그것도 모두 전자책으로. 태어나서 지금껏 유지했던 종이책을 읽는 독서 습관을 한 번 바꾸고 나니, 앞으로 다시는 종이책을 살 수 없겠다고 것을 느꼈다. 나는 책을 사는 건 매우 좋아하는데, 사실 그렇게 많이 읽는 편은 아니었다. 보통 1~2주에 책을 한 권 정도 읽는 편인데, 책을 사는 걸 좋아하다 보니 한국에서 살 때는 항상 방 한쪽은 가득 찬 책장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스페인에서 브라질로 이동할 때도, 브라질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도 다시 언제 들어와서 원서를 사겠냐며 굳이 책을 사서 꾸역꾸역 이민 가방이라고 불리는 거대 캐리어에 넣고 귀국했었다. 지금 한국에서 그 책을 다 가지고 있던 동생이 얼마 전에 이사한다기에 그냥 다 버리라고 했다. 이미 상해에 오면서, 팔 수 있는 책들은 알라딘 중고서점에다 다 팔아버리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책 2~3권만 상해에 들고 왔다. 나머지는 팔 수 없어 남겨뒀던 책이었다. 그리고 책을 팔면서 앞으로도 계속 해외 생활을 하게 될 우리 부부에게 크레마 전자책을 선물해줬다. 굉장히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전자책을 들고 다니는 것도 종이책을 들고 다니는 것에 비하면 굉장히 편리해졌지만, 가뜩이나 개발을 하느라 노트북을 짊어지고 다니며 무거운 가방에 짐을 하나 더 늘리는 행위는 쉽지 않았다. 아침에 가방을 정리하다 보면 항상 전자책은 가방 밖으로 밀려나기 일수였다. 주말이 돌아오고, 읽고 싶은 책이 있어서 한 번 다운로드하여서 읽어보기로 했다. 아래 글에서 말했던 <맨박스>라는 책인데, 외국에서 한국 사이트 결제하기가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라 어차피 영어 원문인 책이라 아마존에서 전자책을 사서 킨들 앱을 통해서 읽어보기로 했다.



방법은 아주 단순했다. 아마존 사이트에 들어가서 검색창에 ebook이라는 검색어를 치면 자동으로 ebook 전용 검색창으로 바뀌는데, 거기서 검색하고 "buy now with 1-click"이라는 버튼을 누르니 구매가 끝난다. 아, 안녕 지긋지긋한 한국의 결제창이여. 그리고 맥용 혹은 아이폰용 키들 앱에 로그인을 하면 자동으로 구매 내역이 업데이트된다. 아마존은 대표적인 중국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 중 하나이기 때문에 VPN을 켜지 않아도 돼서 편리하다. 업데이트된 책 목록을 클릭하면 자동으로 해당 책을 다운로드하기 시작하고, 다운로드가 시작되면 다운로드가 끝나지 않아도 책을 읽을 수 있다.



아이폰 7을 통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세로 화면보다는 가로로 눕힌 화면이 책 읽는 느낌이 들어서 휴대폰을 눕혀서 봤는데 개인적으로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위의 오른쪽 사진처럼 쉽게 원하는 페이지로 이동할 수 있고, 원하는 문구나 특정 페이지를 저장해두었다면 아래 직선 바에서 그 페이지로 바로 이동할 수 있다. 여기가 손쉽게 예상할 수 있는 전자책의 기능이라면 아래 기능은 킨들을 쓰면서 꽤 감동한 부분이다.



우선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는 킨들 내 전자 사전을 통해서 아주 간편하게 단어의 뜻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하이라이트를 해놓은 문장의 경우 한 공간에 모여있기 때문에 나중에 편하게 찾아보거나 공유하는 것도 가능하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문장을 공유하는 기능의 경우 지금은 이메일과 카드 형태로 내보내기 밖에 지원하지 않지만 발전할 경우에는 단순히 전자책이 책의 디지털 버전이 아니라, 책 산업 전반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기능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기존에 YES24에서 책을 구매해왔던 터라 전자책도 다 YES24에서 샀는데, 크레마뿐만 아니라 YES24 전자책 앱도 이용해 보고 싶어서 함께 다운로드하여 보았다. 100MB가 넘는 책을 다운로드하는 데 다소 문제가 있었는데, 인터넷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국내 환경에만 적용되도록 만들어져서 그렇다고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 외에는 화면 방향을 전환할 때 현재 페이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만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킨들과 비교하더라도 뒤지지 않는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다만 국내에는 전자책을 함께 내는 것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아서 전자책을 구매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은 치명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 같은 소비자는 멀쩡히 한국에 번역서가 있음에도 아마존에서 원서를 구매해야 하는 불편함을 겪기도 한다.


전자책의 미래


사실 전자책은 한국에서는 한물 간 트렌드라고 볼 수 있다. 더 정확히는 '한물갔다'라고 말할 수도 없을 정도로 한국에서는 제대로 성과를 보인 적이 없다. 나는 지금껏 두 번 출판사와 출판 관련 계약을 진행했었고, 한 번은 계약 후 집필 단계에서 다른 한 번은 계약 전 협의 과정에서 중단된 적이 있다. 두 번째는 비교적 최근 일이고, 마침 상해로 넘어오기 전 책을 처분하던 시기라 나는 전자책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었다. 그래서 계약을 진행하면서 전자책으로도 동시 발간이 가능한지 물어봤는데, 출판사 측에서 돌아온 답변은 보통 계약하고 책을 발간하면 기본 수량인 2000권을 다 팔아 내는 경우가 3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 출판사의 경우 그 재고를 떠안게 되는데 전자책까지 동시 출간할 경우 재고가 더 늘어날 우려가 있어서, 같이 진행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답변이 '한국의 워낙 작은 전자책 시장으로는 기존 종이책을 전자책으로 변환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상쇄할 수 없다'로 들렸다. 아래는 네이버 트렌드에서 검색한 전자책 검색 추이이다. 오프라인 서점 혹은 온라인 책 구매 대비 전자책 구매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낮은 것을 볼 수 있다.



아래는 같은 항목을 구글 트렌드에서 검색한 결과인데, 전체 도서 검색 관련 중 10%가 넘는 비중이 전자책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걸출한 아마존이라는 출판 유통업체와 그 업체가 가지고 있는 킨들의 영향력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누군가는 전자책은 한국에서 더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기존의 종이책을 읽는 것을 선호하고, 디지털카메라가 기존의 필름 카메라를 뒤엎는 변혁은 책에 관해서는 불가능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또 다른 시장의 변화를 느낀다. 그것은 바로 웹툰 시장에서 시작된 온라인 콘텐츠에 대한 유료화 열풍이다. 전자책 이야기를 하다가 왜 갑자기 웹툰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해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오랜 웹툰 독자로서 주된 변화라고 느끼는 점은 사람들이 온라인 콘텐츠도 돈을 주고 구매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굉장히 오랜 시간 인터넷에서 얻는 정보나 콘텐츠는 무료라고 생각해왔고, 가끔 앱 리뷰 페이지에 "애들 공부하라고 만든 앱을 유료로 파냐"라는 등의 댓글을 보면서 아직 시장 성숙도가 굉장히 낮다고 생각해왔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공을 들여서 만든 콘텐츠나 무형의 서비스의 값어치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라는 것이다. 그런데 웹툰 시장은 그것을 유료로 판매해내는 기염을 토하더니, 최근에는 웹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장문의 글을 다시 유료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나는 기존의 전자책이 팔리지 않은 이유가 기존의 종이책과는 다른 매체를 통해야 한다는 점과 함께, 종이책처럼 실제가 남지 않는 '콘텐츠'에 종이책과 거의 유사한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거부감이 강하다는 생각을 한다. 책은 읽고 나도 집에 남는데, 전자책은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디지털 매체는 갈수록 짧은 호흡의 글을 생산해내고 있는데, 전자책은 문자 콘텐츠를 소비하는데 굉장히 긴 호흡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긴 호흡의 책을 소비하는 기성세대와 짧은 호흡의 매체가 만나면서 일어나는 불균형을 구독형 웹소설이 기가 막히게 풀어내고 있다고 판단한다.


나는 이 흐름을 통해서 사람들이 '무형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나는 그리고 이것을 매우 긍정적으로 판단한다. 보통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은 개인이다. 이 개인이 만들어내는 콘텐츠를 합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구매하는 문화가 들어선다면 기존의 회사 생활을 아니더라도 점차 많은 개인이 자신의 콘텐츠로 경제생활을 해내는 시기가 오리라 믿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썼던 아래의 "개인이 주인공이 되는 세상"이라는 글과도 그 맥을 함께 한다.



사실 온라인에서 콘텐츠가 유료화 되는 것은 저런 웹툰 형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알게 된 서비스 중에 아래 링크를 달아놓은 리드미라는 서비스는 자신의 사회생활을 공유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에피소드를 공유하는 플랫폼이다. 그 커리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콘텐츠를 구매하면서 콘텐츠 제공자에게 수익을 돌려주는 형태의 수익 모델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페이스북에서 받아보던 아웃스탠딩이라는 스타트업 전문 IT 뉴스 미디어가 최근에 유료화 되었다. 아웃스탠딩의 기사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단순히 딱딱한 기존의 뉴스 지면을 통해서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캐릭터를 등장시키고 대화 형태로 콘텐츠를 풀어내면서 아웃스탠딩이라는 브랜드를 소비하는 팬덤을 만들었고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수익화에 성공했다는 내부 평가를 하고 있다고 한다. 나 역시도 매달 비용을 지불하고 구독을 하고 있는데, 이제 사람들은 무형의 서비스에도 지갑을 열고 있다. 



브런치의 미래


굉장히 브런치를 아끼는 한 사람으로서 나는 브런치가 걸어야 할 길도 이 곳에 있다고 믿는다. 브런치의 최근 행보를 보고 있노라면, 브런치는 단순한 블로그 플랫폼이 아니라 책을 활발히 유통하는 도서 종합 포털이 되려는 움직임을 읽는다. '작가'라는 호칭을 부여하는 마케팅과 다양한 매체와 콜라보를 통해서 작가들이 보다 양질의 글을 쓰도록 유도함과 동시에, 작가들의 책을 각자의 프로필에 등록시켰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은 브런치 작가들이 쓴 글을 읽고 자신이 흥미가 생긴 작가의 책을 보다 '믿고' 구매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브런치는 한 편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매체를 통해서, 특히 모바일을 통해서 호흡이 긴 글을 읽도록 학습하는 역할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네이버 블로그는 글이 길어지면 '스크롤 압박'이 심하다며 뒤로 가기를 눌러버리지만, 브런치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이라면 긴 글도 참을성 있게 읽는다. 왜냐면 내가 좋아하는 이 작가의 글이 내가 들이는 시간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나를 만족시켜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브런치가 현재 걸어가고 있는 전통적인 "책의 유통"이라는 방향과 더불어, 다른 한 편에서 세차게 흘러가고 있는 유료화를 통한 양질의 콘텐츠가 축적되고 그것이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낸 작가의 경제적 수입으로 되돌아가는 선순환을 만들어 내는 플랫폼이 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물론 그것이 성급하게 진행되기보다는 지금처럼 출판업계에서 브런치가 영향력을 확대해서 충분한 입김을 발휘할 수 있을 때, 그때 브런치가 시장의 새로운 흐름을 선도하는 플랫폼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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