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다른 추석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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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추석 연휴가 시작됐다. 싱가폴은 추석이 휴가가 아니라 이곳에서 추석의 향기를 맡기는 쉽지 않지만, 부인님은 처가댁 가족들과 함께 유럽으로 떠났고, 나도 곧 싱가폴로 올 어머니와 동생을 기다리며 추석을 맞이하고 있다. 내 브런치를 처음 읽는 분들이라면 '명절 편하게 지내는구나' 하실지 모르겠지만, 이전 여러 글(아래 링크 참고)을 통해서 이번 추석에 한국을 벗어나 정말 가족들이 행복한 마음으로 함께 보내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밝힌 적이 있다.
아쉬운 건은 이번에 결혼한 처제가 처가댁 가족들 유럽 여행에 함께하지 못했고, 아버지 퇴직 후 준비하시는 시험공부 때문에 싱가폴행 비행기 왕복 티켓을 하나를 취소해야 했다는 점이다. 그래도 이번 추석 가족 여행을 통해서, 결혼이 서로를 묶고 주저앉히는 행위가 아니라 더 행복하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이 된 거 같아서 기쁘다. 조만간 누구 한 명 빠지는 사람 없이 여행을 떠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이 놈의 가부장제. 항상 나오는 이야기지만, 명절 며칠 전부터 고생을 하는 사람과 '제사를 어떻게 지낼지', '명절을 어떻게 보낼지' 결정하는 사람이 다르다. 매년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제사가 되풀이되는 것은 바로 고생하는 사람의 의사가 행사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리에 앉아 "고기 내와라, 과일 내와라, 수저 가져와라"라고 소리치고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에게 명절은 그간 못 봤던 친척들을 만나고 안부를 전하는 시간이겠지. 그런데 누군가에겐 음식 차리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옆에서는 음식 가져오라고 난리치고 심지어 자기가 먹은 걸 치우지도 않고 사라지는 끔찍한 날이다.
그리고 또 하나 슬픈 점은 고부관계에 악의 축으로 그려지는 시어머니가 사실 며느리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바로 그 며느리였다는 점이다. 20년 넘게 '남편 집 제사에 불려 다니며 출가외인'으로 살아왔던 그 며느리가 며느리를 본 순간 다시 증오의 대상이 된다는 건 아이러니다. 그러고 보니 살면서 비슷한 경험을 한 번 해본 적이 있다. 바로 군대에서였는데, 선임들이 강요하는 악폐습에 신음하며 "나는 선임이 되면 절대로 그러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던 수많은 선후임들이 선임이 되면서 그토록 싫어하던 선임의 모습을 닮아가는 걸 보면서 사람의 본성에 대해서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20%, 내가 근무하던 부대에서는 딱 5명 중 1명만이 2년 간 자기가 지키려고 했던 자기 모습을 지키고 제대했다. 20년 넘게 시달린 시집살이에서 '나는 이걸 대물림하지 않겠다'던 다짐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요즘 며느라기(아래 이미지)라는 웹툰이 한창 인기다. 이 웹툰에서는 사린이라는 며느리가 시댁 식구와 함께 있으면서 겪는 내적 갈등이 너무나도 잘 나타나 있다. 그중 정말 압권이었던 구절은, 제사를 지내느라 다들 너무나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서 "오늘 제사 잘 지냈으니 자손 모두 행복하게 잘 살겠지?"라고 말하는 부분이었다. 이 문장을 보고 숨이 턱 막혀왔는데, 자손이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고 지내는 제사가 다시 자손의 목을 죄고 있는 이 상황을 다시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해오던 것이니 어쩔 수 없다"는 비겁함 뒤에 숨지 말고 말이다.
나는 결혼하기 전 명절부터 물밑 작업을 시작했다. 부인님은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결혼 전까지 한 번도 제사를 지내기는커녕 제사를 본 적도 없었다. 항상 가족들과 다 같이 모여서 여행을 떠났고, 누구 하나 명절 음식 차리는 스트레스 없이 외식을 했단다. 그런데 결혼을 했다고, 명절 며칠 전부터 여자들이 고생을 하고, 심지어 제사에는 참여하지도 못하고, 뒤처리까지 다 여자들 몫인 제사에 등을 떠밀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체제에 저항하는 결혼한 남성이 직면하기 쉬운 공격은 "결혼하더니 자기 부인만 싸고돈다."이다. 그래서 우선 결혼 전 명절 음식과 설거지를 도맡아 하기 시작했다. 명절날 당일에는 제일 먼저 일어나서 준비된 음식을 상에 차렸다. 그리고 제사가 끝나고 나면 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했다. 죽을 거 같았다. 명절이 다시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걸 20년 넘게 했을 어머니를 생각하니 미안함이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무지는 죄다. 부디 1년에 몇 번 없는 제사가 뭐 그렇게 힘드냐는 말이 쉽게 입에서 기어 나온다면 제발 한 번이라도 앞 장 서서 해보고 이야기 하자.
결혼 후에는 더 일이 많아졌다. 우리 부부는 결혼 후에 1년 정도 한국에 있으면서 명절을 두 번 더 보냈다. 그 전에는 명절에 아무 옷이나 주워 입고 뒹굴거리면 충분했는데, 이젠 어른이라고 양복을 입어야 했다. 새신부라며 한복을 입어야 했던 부인님은 더 고생이었을 거다. 그리고 항상 빈손으로 다니던 친척 집에 어른들 선물을 챙겨야 했고, 사촌 동생들 용돈도 준비해야 했다. 고향과 멀리 살아서 참석 못하는 행사가 있으면 또 매번 친척 분들께 전화도 드려야 했다. 나는 '한국의 어른'이라는 옷이 맞지 않는 게 분명했다. 딱 결혼 생활이 1년 되던 무렵 우리 부부는 상해로 떠났고, 한국의 어른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해외에 살면서는 크게 고민할 게 없었다. 한국까지 비행기로 2시간밖에 안 되는 상해에서 살았지만, 단지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는 이유 만으로 많은 행사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그런데 정말 죄송스럽게도, 내 몸이 좀 편해지고 나자 30년 넘게 막내며느리로 살아온 어머니가 선명히 보였다. (사촌 형들이 아무도 결혼을 안 해서 정말 시댁에서 막내로 30년을 보내셨다.) 어머니는 먼 길 힘들다고 해외에 나와있는 우리 부부에게, 먼저 명절 때 들어오지 말라고 하셨다. 그간 철이 안 들어 어머니 고생하시는 걸 몰랐는데, 결혼하면서 명절을 '의무'로서 보내고 명절의 불합리함에 대해 눈을 뜨고 보니 내 몸 편하다고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도 명절 때 해방시켜드리기로 계획을 세웠다. 사실 학창 시절 어머니와 이야기 나눌 때 어머니는 '명절에는 제사를 지내야 된다.'는 입장이셨다. 그런데 작년에 새롭게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제 제사상 차리는 것도 힘에 부치고 명절을 좀 더 행복하게 보내고 싶으시단다. 그래서 우선 아버지께 장난스레 명절에 여행을 가자고 운을 띄웠다. 알겠다고 대답하시기에 말 나온 김에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려고 링크를 보냈더니, 갑자기 말이 바뀌신다. 그래도 모자 지간의 끈끈한 연대 앞에서는 백기를 드시고 나는 그날 바로 비행기 티켓을 예매해버렸다.
내가 결혼을 앞두거나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 우선 예비 배우자 집안을 잘 살펴보고 결정하라는 것이다. 우리 부부의 경우는 물론 맞서 싸울 용기도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어느 정도는 노력했을 때 변화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합리성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주위에 살펴보면 정말 드라마에서 나올 것 같은 고부 갈등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사람 껍데기를 쓰고 저런 사람이 있을까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결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결혼 후 명절을 어떻게 지낼지 명확하게 이해를 나누는 게 좋다. 그리고 배우자가 될 사람의 부모님을 잘 살펴봐야 한다. 결혼 전에 뵀던 부모님의 모습이 결혼 후에는 10~100배 정도 안 좋을 거라고 생각하면 좋다. 결혼 전 '손님'으로서의 대우와 며느리로서의 대우는 정말 극적으로 다르다. 그리고 부모님 사이의 관계가 너무 수직적이지 않는지, 부모님이 배우자를 대하는 모습이 지나치게 권위적이지 않은지 등을 살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아뿔싸 결혼을 하고 나니 내 삶이 드라마 같다면? 이제는 명절 탈출을 고민해야 할 때다. 물론 가장 큰 전제는 부부가 함께 불합리함을 느끼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결코 혼자서 싸워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온전히 부부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생각보다 결혼 후에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서 사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지인 중에 한 분은 현재 제주도에 살고 계신 분도 있다. 이렇게 말하면 그동안 키워주신 부모님인데 너무 정 없는 게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하나 명심해야 할 점은 '결혼은 새로운 가정을 꾸려서 독립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결혼을 하면 독립을 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30년 넘게 자식을 품에 넣고 살다가, 결혼하면 내보내려니 힘들다. 품에서 내보낼 줄을 모른다. 그런데 그래야만 한다. 부부가 부부로서 우뚝 서지 못하면 모든 것들이 망가지기 시작한다.
(결코 쉽지 않겠지만) 명절 탈출에 성공했다면 이제는 양가 어머니를 해방시켜 드려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부부 두 사람이 명절에 가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 거다. '너희는 젊어서 우리랑 다르니까'라고 이해하고 배려해주시는 어르신들도 자기 배우자에게는 '지금까지 계속 해오던 건데 당연히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때 같이 힘이 되어드리는 것, 지금껏 해왔을지라도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물론 평생을 기존 질서에 맞춰 살아온 분들에게 너무나 급격한 변화를 말하는 것은 오히려 그분들에게 폭력적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조금 더 편하자고, 매년 벌어지는 희생 대잔치에 눈을 감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명절에 모든 식구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행복이 누군가의 숨죽인 희생 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조금만 눈을 크게 뜨고, 지금까지 생각 없이 지속해오던 행동을 멈추면 행복할 수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