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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May 04. 2017

끝나지 않은 고부갈등

결혼을 앞둔 아들들에게 고함

아래 두 글을 통해서 이번 추석에 처음으로 가족이 다 함께 제사를 지내지 않고 여행을 떠나기로 한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를 '며느리'로서가 아니라, 한 가정의 일원으로서 명절에 스트레스 없이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고 합의를 이루기까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끝난 줄 알았던 전쟁이, 다른 곳에서 다시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얼마 전 결혼한 처제는 이번 구정 때 인생에서 가장 재미없는 연휴를 보냈다고 한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남편의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내려갔고, 무려 첫 명절이라고 제사도 지내고 그곳에서 2박 3일이나 지내고 올라왔단다. 원래 처가댁 식구들은 모두 명절 때 여행을 떠나는데, 아마 시댁 식구들과 제사를 지내면서 첫 명절을 보냈다면 적지 않게 충격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래 두 번째 링크에서도 썼지만, 이번 추석에는 우리 부부는 각자 가족과 여행을 가기로 했다. 장인어른께서 막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다 함께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씀을 하셨고, 부모가 자식과 여행을 떠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연히 알겠다고 말씀드렸다. 오히려 장성한 자식들과 여행을 떠나겠다며 손수 유럽 캠핑카 여행을 준비하는 장인어른의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결혼한 처제의 시댁에서는 반응이 매우 냉랭했다고 한다. 연휴 전 2박 3일을 보내고, 연휴 때는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겠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굳이 '명절날에 함께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하셨다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이지?


결혼은 남의 집 딸을 사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 부부도 한국에 있을 때는 명절 때 내 고향에 먼저 내려가서 제사를 지냈다. 그런데 이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우리 집은 제사를 지내고 처가댁은 제사를 지내지 않기 때문에, 치러야 하는 행사를 집안 식구들과 잘 치루라고 배려를 해주셔서 우리 집에 먼저 갔던 것이지 절대로 그것이 옳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집의 전통이 있다면, 사돈댁의 전통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아닌가? 조선시대도 아니고 이번 명절 때 신랑 집에 먼저 인사를 드렸다면, 다음 명절에는 신부 집에 먼저 인사를 가는 게 너무나 합리적이고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처제 시어머님께서는 "나도 결혼하고 평생 시댁에 갔는데, 넌 왜 안 하니?"라고 물어보셨다고 한다. 나는 이건 어른 입에서 나올 소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당했다고, 그걸 며느리한테 똑같이 감내하라고 주장하면 안 된다. 평생 명절 때마다 시댁에 가서 고생을 했다면, 그건 솔직히 말해 남편을 잘못 만난 탓이지 그걸 며느리한테 풀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고부갈등은 가정폭력이다


가정폭력은 이해되어야 하는가? 절대로 아니다. 그런데 대체로 가정폭력에 대해서는 '남의 집안일이니 쉽게 나서지 말라.'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폭력은 폭력일 뿐이고, 그것이 가정 내의 일이라고 해서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같은 맥락에서 악습은 악습일 뿐이다. 그것이 부모에서 자식으로 이어져 내려왔다고 해서, 악습을 전통으로 포장해서는 안된다. 


결혼은 내 딸을 남의 집에 보내는 일이 아니라, 두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것이다. 양가 부모가 개입해서 그 행복한 결혼 생활을 방해한다면, 그건 '문화적 가정 폭력' 행위라고 생각한다. 시집보낸 내 딸이 가정폭력을 당한다면 그냥 참고 있을 건가? 절대로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왜 '문화적 가정 폭력' 행위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무는가. 이제 그녀는 내 딸이 아니라 '출가외인出家外人'일 뿐인가?


시대가 바뀌었다. 모든 가족이 나서서 악습을 끊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고부갈등이라는 악습이 남아있는 것은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아서고, '출가외인'이라는 낙인을 찍어놓고, 가족이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잘못된 행동을 하면서도, 주위 사람이 잘못됐다고 소리치지 않으면, 그게 잘못되었다고 느끼지 못한다. 이제는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해야 한다. 나를 포함해 처가댁 식구들은 처제의 고통을 모른 척하지 않기로 했다. 


이 시대의 아들들에게


부디 아들들에게 부탁한다. 잘못된 일에 부모와 맞설 자신이 없으면 결혼하지 마라. 부모도 설득하지 못할 정도로 '어린' 사람이 가정을 꾸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성세대인 자신의 부모님이 결혼에 관해서는 내가 아는 것보다 10배는 더 '이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한국에서 결혼은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행동이 아니다. 그러니 결혼식에 수 천만 원씩 들여가면서 결혼을 하는 거겠지. 그러니 당신의 부모가 절대로 결혼에 관해서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단정 짓지 마라. 부탁이다.


그리고 결혼이라는 것은 새로운 가정의 일원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라. 물론 결혼을 한다고 해서 부모형제와 인연을 끊으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결혼이라는 것은 한 사람과 부부의 연을 맺고, 그 사람과 새로운 삶을 개척 해나는 것이다. 그러니 부부가 우선 행복해라. 많은 아들들이 결혼하기 전에는 그렇게 철부지에 부모 속을 썩이더니, 결혼하니 효자가 된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이건 그 전에는 엄마가 제일 만만하다가 이제는 더 만만한 부인이 생겼다는 말이 아닐까? 부디 좋은 아들이기 전에, 좋은 남편이 되었으면 좋겠다. 좋은 남편이 되는데 집중하는 것도 절대로 쉽지 않을 거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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