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빠가 된다
한국에 임신과 육아에 대한 다양한 믿음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인 의사 선생님의 조언을 받고 있고, 각국의 임신과 육아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보고 연구하고 있으니, 개인적인 조언과 경험 공유는 정중하게 사양합니다. 저희 부부의 방식대로 이 시간을 보내보려고 합니다.
부인님께서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지셨고, 혹시 임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저녁에 집에 있던 테스트기를 사용해봤다. 한 줄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에 그 테스트기를 다시 살펴보니 두 줄이 되어있었다. 바로 다시 다른 테스트기를 사용했고 이번에는 빨간색 두 줄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은 축하한다고 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은 의미심장한 조언을 해줬다.
임신은 질병이 아니에요. 날 것만 먹지 말고 그 외에는 평소 생활하던 것처럼 하면 됩니다. 만약 유산된다면 그 아이는 그렇게 약하게 만들어진 아이고, 유산되어야 하는 아이니 만약 유산이 되더라도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
우리 부부는 의사 선생님의 사려 깊은 이야기를 들으며 부부가 될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사실 아주 최근까지 아이를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부부가 살아가는데 사실 자식은 선택일 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은 지금도 같다. 뿐만 아니라 부모가 된다는 그 무게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내가 과연 한 생명에게 커다란 영향을 남길 만큼 충분히 성숙한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왔다. 하긴 나는 이전에 결혼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결혼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하는 거지, 결혼을 해야 할 때에 옆에 있는 사람과는 하고 싶지 않았다. 운이 좋아서 아내를 만나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결혼을 해야 하는 때라는 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혼해서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어리더라도 하는 거고, 그런 사람이 없다면 혼자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결혼을 했다고 해서 아이가 필요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그 무엇보다도 부부의 선택이어야 한다.
나는 결국 결혼하기로 결정했고, 그리고 아이를 갖기로 결정했다. 결혼이라는 결정과 그로 인해 보냈던 시간들에는 전혀 후회가 없다. 그리고 나는 새롭게 만날 아이와 함께 보낼 시간이 축복 그 자체 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결혼 생활이 그랬듯.
싱가폴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경제적, 시간적 여유를 경험하게 되었다. 한국 생활이나 싱가폴에 오기 전 상해 생활은 항상 팍팍했던 것 같은데, 싱가폴에서는 회사에서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가족이 생겨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편 왜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결혼이나 출산을 포기하는지도 이해하게 되었다. ‘내 삶이 안정되어야 더 큰 가족을 꾸리겠다는 결정을 할 수 있게 되는구나.’하며.
결혼 사실을 동료들에게 밝혔다. 매니저의 첫마디는 “오늘부터 언제든지 휴가를 쓰거나 재택 휴가 해도 상관없어. 휴가나 재택근무할 때 나에게 말하지 않아도 돼. 아내 몸 상태만 신경 써줘. 너무 축하해!”였다. 개인의 삶이 안정되지 않으면 회사 일에도 집중을 할 수가 없다며, 아내와 새로 태어날 아기에게 최대한 시간을 쏟으라고 했다. 덕분에 지금까지 평일에 아내와 함께 산부인과에 모두 함께 같이 갔다. 아내가 아프면 재택근무를 했다.
한국에서는 결혼을 하면 인생은 끝나는 거라며, 애가 생기면 인생 종 치는 거라며 말을 많이 했던 거 같다. 그런데 여기서는 임신과 육아가 “amazing”한 일이라고 한다. 임신을 통해서 얻게 되는 여성의 몸의 변화가 너무 아름답지 않냐며 임신을 경험한 여성 동료들은 이야기하고, 아빠인 남성 동료들도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지, 그 커가는 모습이 어떤 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이렇게 새로운 가족이 생기는 경험을 존중하는 문화라면 이 곳에서는 가족이 생겨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된다. 아직도 여전히 자신은 없다. 하지만 아내와 함께 결정했고, 결심과 함께 생겨 준 아이 덕분에 아내와 아주 특별한 10달을 우리 나름대로 채워가고 있다. 올해 아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