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르코 Jul 15. 2019

육아 휴직을 만들었다

한 달 육아 휴직의 서막

오랫동안, 아이를 낳게 되면 육아 휴직을 하겠다고 생각해왔다. 아이들은 정말 훌쩍 커버린다는데, 가족을 위해 일 한다는 이유로 그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가족을 위한다며 일생을 회사에 몸 바치고, 정작 가족과 멀어져 버린 아버지들의 그 후회를 나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 가족의 새 구성원이 생겼을 때, 그 시간을 함께 하며 그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일본인 절친이 있다. 그 친구는 한국어를, 나는 일본어를 못하기 때문에 항상 만나면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지만, 그래도 국가, 언어, 나이, 직업을 뛰어넘어 항상 통하는 게 있는 친구라 연락을 주고받고, 가끔 이 나라 저 나라에서 한 번씩 만나는 친구다. 이 친구가 나이는 나보다 2~3살 어린데, 이미 3살 된 아들이 있다. 지난번 이 친구가 싱가폴에 놀러 왔을 때 아이를 만났는데, 벌써 말도 하고 자기 주관도 있더라. 이 친구의 대단한 점은 일본 남자로서 6개월 간 육아휴직을 했다는 점이다. 이 친구는 첫 회사로 일본에서 한 컨설팅 업체에서 일했는데, 면접 때 "이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쓸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이 친구는 실제로 그 이후 6개월 간 육아휴직을 했다. 한국보다 남자가 육아휴직을 쓰는 것이 훨씬 더 말이 안 되는 일본이다 보니, "남자가 육아휴직 쓰면 출세길 막힌다" 등 온갖 뒷이야기에 시달린 모양인데 크게 개의치 않았나 보다. 지금은 IT 업계 중에서 육아휴직이 길기로 유명한 페이스북으로 이직해서 일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직의 이유가 육아휴직을 쓸 수 있어서라고 답했다.


이 친구에게 "한국에서도 남자가 육아휴직을 쓰는 게 쉽지 않은데, 어떻게 일본에서 육아휴직을 쓸 생각을 했냐"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아버지가 굉장히 무뚝뚝한 편이시고, 회사와 집만 오가셨던 분이라 함께 시간을 보낸 기억이 없다고 한다. 대신 초등학교 무렵 캐나다로 홈스테이를 갔는데, 너무나 가정적이던 홈스테이 가정의 아빠를 보고, 아버지라는 존재가 저렇게 다정할 수도 있구나 생각했단다. 그 이후로 자신은 자식에게 꼭 좋은 아버지가 되어야지 생각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부모를 욕하면서도 닮아가고, 다른 누군가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하기도 한다. 누가 뭐라고 하든 자신이 평생 믿어온 것을 관철하는 이 친구가 참 대단하고 존경스럽다고 생각했다.  


육아 휴직 만들기


오늘은 매니저와 분기별 면담 날이었다. 뭔가 특별한 걸 하는 건 아니고, 회사 생활에서 힘든 건 없는지 등 매니저가 직원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의견을 듣는 자리이다. 아내가 곧 출산을 앞두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그쪽으로 흘렀다. 매니저분이 여성 분이시기도 해서, 따뜻하게 출산에 대한 경험도 나눠주고 격려도 잊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끝나고 혹시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냐기에, 물었다.


"나 한 달 육아휴직 써도 되니?"


아무래도 아내와 둘만 외국에서 나와서 생활하다 보니 육아휴직을 할 수 있으면 좋을 거 같다고 말했다. 매니저는 원격 근무해도 되는데, 특히 처음에는 애기 때문에 밤낮이 바뀌어서 일을 병행하기는 힘들 거라며 가족을 위한 일이라면 얼마든지 쉬어도 된다고 말했다. 참고로 싱가폴은 공식적으로 여성의 경우 싱가폴 사람은 16주, 외국인은 12주의 육아휴직을 받을 수 있다. 남자의 경우 따로 정해진 육아휴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 다니는 회사의 경우 5일간의 유급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 나는 유급 육아휴직 5일과 별개로 4~6주 간의 무급 휴가를 자유롭게 쓰기로 매니저와 이야기를 맞췄다.


최초의 계획은 3개월 이상 육아 휴직을 하면서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려고 했지만, 게을렀던 아빠가 때맞춘 이직에 실패하면서 한 달 밖에 함께하지 못하지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아닌가 싶다. 아빠가 될 준비를 해가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니, 내가 아빠라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