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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Jan 12. 2016

스페인어 학원 원장과 맞짱 뜨다

외국어의 정점은 전화 받기와 싸우기

아래 링크는 <외국어 덕후의 학습법> 첫 글이자 목차




스페인에 도착해서 처음  한두 달은 거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거리에 나가면 사람들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나면 반 친구들과 점심을 같이 먹고 집에 돌아와서 대체로 스페인어 공부를 하면서 보냈다. 한국 사람들과 최대한 거리를 두겠다는 다짐이 있었기 때문에,  하릴없는 날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집에 오면 책을 펴서 복습하고, 인터넷에서 찾은 스페인어 교육 사이트를 찾아서 말이 들릴 때까지 따라 했다. 이 방법은 앞에서 공유했던 영어학원의 공부 방법을 따라한 것이었는데,  5분짜리 스페인어 동영상을 하나 끝내는데 하루에 2시간씩 걸리던 시간이 더 어렵고 긴 동영상을 하나 끝내는데도 더 짧은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스페인어를 활용한 첫 분쟁 일으키기


스페인 정부 공식 인증 스페인어 시험인 델레(DELE)의 레벨은 유럽어권 시험 기준과 동일한 A1, A2, B1, B2, C1, C2로 이루어져 있고, 오른쪽으로 갈수록 난이도가 어려워진다. 델레 시험은 1년에 3회 볼 수 있고, A1이 20만 원 초반대에서 시작해서 C2가 40만 원에 육박하는 비싼 시험이다. 모든 레벨에서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를 평가한다.


그렇게 두 달쯤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나는 스페인에 오기 전부터 델레 C1를 따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왔다. 당시 델레에 대한 정보를 전혀 모르게 계획을 세웠기 때문인데, 스페인에 오고 나서 나의 포부를 이야기 하자 다들 비난의 여론이 일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한국에서 스페인어 전공이 있는 대부분의 대학들이 내세우는 졸업요건이 B2이고, B1를 요건으로 제시하는 곳도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전공으로 4년 공부한 사람이 따는 레벨이 B2라는 이야기였다. 내가 그걸 미리 알았으면 저런 목표를 세우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사람이 뱉은 말은 도전해봐야지 안 그래? 그래서 그냥 C1를 따서 가는 걸 목표로 삼기로 했다.


그리고 이미 스페인에 오기 전에 유학원과 상담에서 스페인에 가면 델레 준비반이 다 마련되어 있으니, 한 달 전부터 신청하면 델레 수업을 들을 수 있다고 안내해주었다. 어느덧 스페인에 도착한지 두 달쯤 시간이 지나고 있었고, 이제 1년간 스페인에 있는 내가 볼 수 있는 첫 델레 시험이 다가왔다. 한참 고민을 하다가, B2를 보기로 결정했다. 지금 생각하면 매우 무모한 도전이었는데, 그 당시 저 결정을 내렸던 이유는 '비전공자인 내가 어차피 B1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봐야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였다. 나라도 같은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전공자가 있으면, 굳이 비전공자에게 눈을 돌리지 않을 거 같았다.


그래서 학원 원장에게 다가가서 "나는 델레 B2를 보고 싶다. 준비하게 도와달라."고 말했더니, 매우 묘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뭐, 한 마디로 요약하면 실력이 부족하니 돈 낭비라는 이야기였는데, 내가 내 돈 쓰겠다는데 왜 이러냐고 응수했다. 그리고 사실 돈 낭비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 스페인에서 1년 동안 거주하면서 정말 많은 돈을 쓴다. 그런데 시험 등록하는 비용 30만 원이 나를 공부하게 하는 효과를 생각하면 절대로 아까운 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장은 단호했고, 나한테 B2 반을 열어줄 수 없다고 했다. 학원이 크지 않았는데, 그 당시 학원에는 B2를 보려고 하는 학생이 없었다. 물론 내가 실력이 많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나를 위한 단독반을 열기에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 인생 처음으로 서툰 외국어로 언쟁을 했지만, 짧은 스페인어에 한계를 느끼며 분을 삭이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생각하다가, 이 학원을 추천한 유학원에다 이메일을 보냈다. 요지는 "분명히 델레 시험 기간이 되면 원하는 레벨의 수업을 열어준다고 했는데, 열어주지 않는다. 직접 학원과 연락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줬으면 좋겠다."였다. 다행히 유학원에서는 나의 불편함을 이해해 주었고, 직접 연락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학원 원장이 나를 따로 불렀고, "B1를 준비하는 스위스 학생이 하나 있는데 B1와 B2를 함께 준비하게 해줄 테니, 같이 해보는 것이 어떠냐?"라고 물어보았다. 나는 그 타협안을 받아들였다.


쓴맛, 그 후에 단맛


수업에 들어가니 왜 그렇게  뜯어말렸는지 이해가 되기도 했다. 아직 스페인 사람들 이야기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데, 교재의 듣기 부분에서 나오는 대화는 너무 빨랐다. 문법도 문제만 풀면 틀리기 일수였고, 쓰기는 유치원생 수준의 어휘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시험 준비반인 만큼 숙제도 많은 편이었다.


그 한 달은 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B1를 도전한다는 그 학생은 나보다도 실력이 뛰어났다. 그 날 공부한 것을 복습하고, 숙제를 하고 있다 보면 힘들어서 모두 다 놓아버리고 싶은 날이 있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한두 번은 학원도 가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방에서 꼼짝 않고 침대에서 잠만 계속 자버리기도 했다.


시험 날은 생각보다 매우 빨리 찾아왔다. 한 달 간의 고생스러운 시간이었지만, 시험지를 받아 든 순간 아직 난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결과는 너무나 쉽게 예상되었다.


그런데 시험이 끝나니 내가 달라진 것이 느껴졌다. 델레 준비반이 끝나고 원래 듣던 수업보다 한 단계 높은 반에 수업을 들어갔는데, 그래도 반에서 어느 정도 스페인어를 하는 학생이 되어 있었다.  시험공부를 하면서 외웠던 많은 단어들과 입으로 익혔던 표현들이 어느새 많이 익숙해져 있었다. 나는 시험 준비하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한 발 앞으로 나가 있었다.




외국어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영어, 스페인어, 일본어 공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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