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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Jan 19. 2016

나의 스페인 친구들

외국 친구들과 만나면서 배운 것

아래 링크는 <외국어 덕후의 학습법> 첫 글이자 목차




앞의 글에서처럼 스페인에 도착해서 처음 3개월 간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갔지만, 제대로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델레(DELE) B2 시험에 도전했지만, 그 과정은 굉장히 스트레스 받는 일이었고,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델레는 시험 결과를 매우 늦게 알려주기 때문에, 3개월 후에  그다음 델레 시험을 등록하고 난 후에야 결과를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최종 성적표를 수령하는 것은 9개월에서 12개월 정도 걸리기 때문에, 그 전에 성적 확인이 필요한 경우라면 온라인에서 수험 번호로 시험 성적을 찾아서 대체해야 한다.


그래도 큰 변화는 짧은 기간에 스페인어 학습에 몰입했고, 그 덕분에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직 스페인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내가 원하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이제 친구를 사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한국을 좋아하는 친구들 사귀기


하지만 나는 여전히 스페인어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한국에 호감이 있는 친구들을 찾아 나섰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는 한국 문화원이 있고, 한국어 교육, 국악 등 다양한 교육과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한국 문화원에서는 쉽게 한국에 관심이 있는 스페인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처음에 사귀게 된 친구들은 아무래도 K-POP에 관심이 있는 갓 대학교를 입학한 무렵의 아이들이었다. 한국 문화가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는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하루는 아시아 음악(주로 일본과 한국 음악)이 나오는 바에 나를 데려간 적이 있는데, 그 바에 있는 모든 스페인 사람이 K-POP 노래에 맞춰서 춤을 추는 걸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유달리 그런 남자애들 중에는 게이가 많았다. 덕분에 '게이는 모두 잘생겼다.'는 편견을  집어던질 수 있었다. 그리고 다들 아주 편하게 "나 게이야."라고  이야기하는 탓에 전혀 거부감이 들거나, 위협적이진 않았다. 그리고 한국에서 게이를 거의 만날 수 없었던 나에게는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었기 때문에, 이런저런 것들을 많이 물어보면서 게이도 보통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도 잘 느낄 수 있었다. 하루는 마드리드에서 엄청나게 큰 게이 축제를 한 적이 있다. 스페인어로는 "Orgulloso  gay"라는 축제였고, 영어로는 "Gay and Proud" 혹은 "Gay Pride"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도저히 혼자 가볼 엄두는 나지 않아서 친구 몇몇에게 연락을 했더니, 흔쾌히 같이 가주겠다고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내가 게이 축제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그 친구들은 내가 게이인 줄 알았다고 한다. 지금이면 "형 결혼했다."라고 했을텐데.



게이 축제에는 정말 많은 인파가 모였다. 마드리드에서는 Chueca(츄에까)라는 역 주위가 게이 골목으로 유명한데, 그 주위는 정말 걸어 다닐 수가 없는 정도였다. 그러다 어느 헐벗은 게이 무리를 지나가고 있었는데, 웬 몸 좋은 게이 형이 내 팔을  잡아당겼다. 나는 너무 깜짝 놀라서, 팔을 뿌리치고 사람을 밀치며 달아났다. 아, 왜 원치 않은 신체 접촉이 불쾌할 수 있는지 남자로서 느낄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가능하면 원치 않은 신체접촉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자.


성숙한 친구들


어린 친구들과 노는 일은 분명히 즐거운 일이었다. 술도 같이 마시고, 웃고 떠들고 하면서 스페인어도 부쩍 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만나고 나면 항상 공허한 느낌이었다. 나는 K-POP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들이 하루 종일  주고받는 한국  대중문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여 주어야 했다. 그건 정말 지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내 스페인어가 나아질수록 진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과 대화하고 싶었다.


훌리오 형을 만난 건 위에서 이야기했던 한국  문화원에서였다. 결혼도 했고, 나이도 당시 서른 중후반이 되어 보였던 훌리오 형은 문화 평론가였다. 일본에서 유학하며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는 형은, 주로 일본과 한국의 문화를 접하며 평론하고 알리는 일을 하고 있었다. 처음 만난 날은 훌리오 형이 한국 문화원에서 대본을 보며 중저음의 듣기 좋은 목소리로 유창한 한국어를 하는 것을 보며 놀랐다. 그리고 말을 걸었더니, 흔쾌히 식사를 대접하겠다며 집으로 놀러 오라고 했다. 한 번씩 집에도 놀러 가고, 한국 영화도 같이 보며 문화적 배경에 대해서도 설명해주고, 내가 잘 모르는 스페인어도 설명해주었다. 내가 한국에 돌아올 무렵 이쁜 딸을 낳았는데, 지금쯤이면 벌써 한국 나이로는 초등학교 입학을 한 두 해 앞두고 있겠다.


아시파 누나를 처음 만난 건 내 스페인어 첫 수업에서였다. 아시파 누나는 인도계 캐나다인이었고, 캐나다에서도 프랑스 지역에 거주해서 영어와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남편 이브도 마찬가지로 같은 지역의 인도계 캐나다인이었고, 스페인에 있는 캐나다 대사관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 부부는 굉장히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스페인에 있을 때는 저가 항공이 워낙 저렴해서,  한두 달 전에 미리 예매를 해놓고 혼자서 여행을 자주 다녔다. 한 주말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도 하지 않고, 포르투갈로 떠났다. 아무 생각 없이 포르투(Oporto)에서 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아시파 누나, 이브 형 부부와 마주쳤고, 같이 저녁을 먹으며 와인을 기울였다. 남편 이브는 이미 스페인에 오기 전부터 빡세게 스페인어 공부를 하고 와서 나보다 훨씬 스페인어를 잘하는 사람이었고, 기자였던 아시파 누나도 스페인을 공부하며 경력을 살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나이가 있고 깊이가 있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것은, 매일 함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성숙하게 너그러운 만남으로 서로를 품어주는 매력이 있었다. 대체로 스페인 사람들은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서 5명이 모이면 5명 모두가 말하는 기괴한 상황을 만나게 되는데, 성숙한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은 온전히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서로에게 즐거움이 되는 시간이어서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좋은 친구들은 외로운 타지 생활에서 정말 큰 활력소였다.




외국어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영어, 스페인어, 일본어 공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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