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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Jan 09. 2016

스페인에서 벙어리 생활을 시작하다

<외국어 덕후의 학습법> 스페인어 편

아래 링크는 <외국어 덕후의 학습법> 첫 글이자 목차




처음부터 스페인을 가려던 것은 아니었다. 6개월 간의 집중 영어 학습 기간 이후에 한참 영어 공부에는 속도가 붙어 있었고, 전 세계의 외국인 학생을 만났던 학생 회의 이후에는 영어는 혼자 공부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다들 미국이나 캐나다로 어학연수 혹은 교환 학생을 떠나는 시기였다. 나도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영미권으로는 가고 싶지 않았다. 한국에는 이미 영미권 문화가 많이 들어와 있었고 그곳에서도 분명 새로운 것을 느낄 수 있었겠지만, 조금 더 다른 것을 원했다. 당시 갓 배우기 시작하던 스페인어와 떠오르는 중국어 사이에서 고민을 했다. 그리고 조금 더 멀리 떠나 보기 위해서 스페인어로 선택했다. 내가 중국어를 선택했다면 다르게 살고 있을까?


처음에는 남미로 가려고 생각했다. 당시 외국어 고수의 조언에 따라 대학교의 한국어 교육을 받고 있던 멕시코인과 스페인어와 한국어 언어 교환을 하고 있었다. 그 멕시코 친구는 멕시코의 삶은 위험해서 본인도 멕시코에서는 매우 조심한다고 대신 걱정해줬다. 그러다 어느 날 멕시코 기사를 하나 보내줬는데, 수십 명의 사람이 살해된 채 트럭에 쌓인 채  발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아하. 그리고 당시 언어 교환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페루 친구 하나가 삼촌이 총에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왔다. 아하.


나는 스페인으로 가게 되었다.


아, 마드리드


나는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고 약 3개월 정도 더 준비하다 스페인으로 떠났다. 어느 도시에서 살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가능하면 수도에서 생활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마드리드로 정했다. 마드리드는 거의 바르셀로나와 비슷한 물가로 스페인에서는 생활비가 가장 많이 들었지만, 저가항공을 통해 다른 나라로 이동이 용이했고, 상대적으로 다양한  문화생활이 가능했다. 장기 학생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6개월 이상의 어학원 등록증을 요구했기 때문에, 최소한 반 년 이상은 살 계획이었다. 대략 1년 정도를 목표로 떠났다.


굉장히 추운 날이었다. 한국에서도 한 겨울에 떠났지만, 스페인의 이미지는 정열의 땅이었기 때문에 조금 더 따뜻하길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는 송두리째 무너졌다. 중국 베이징을 경유해, 30시간도 넘게 걸려 도착한 마드리드 공항은 내가 처음으로 여행이 아니라 거주하게 될 땅의 시작이었다. 굉장히 이른 시간에  도착했는데도, 세관을 지나 출구로 나오자 많은 스페인 사람들이 가족, 혹은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커다란 이민 가방을 끌고 나갔더니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 없었다.  30분쯤은 늦어줘야 예의인 스페인의 신고식이었지만, 먼 비행에 피곤했던 나에게는 전혀 반갑지 않았다.  20분쯤 지나서 데리러 오기로 한 집주인이 어슬렁 나타났다.


숙소에 도착해서 방에서 찍은 마드리드 풍경


집주인은 짧은 영어만 구사할 수 있었고 나는 그것보다 더 짧은 스페인어를 구사했기 때문에, 일단 피곤하니 잠을 자겠다고 한 마디만 던지고 침대에 몸을 눕혔다. 눈을 좀 붙이고 일어나서는 집주인이 주변을  구경시켜주겠다며 데리고 나가서 근처 바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나는 혼자서 장을 보겠노라 호기롭게 마트에 갔다. 다행히 마트에는 계산대에서 가격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큰 대화를 하지 않고도 첫 장을 성공적으로 볼 수 있었다.


너무나 뿌듯했던 스페인에서 첫 장보기


첫 외국 생활에 스페인 사람처럼 살아보겠다며, 평소에는 집에서 잘 먹지도 않는 스파게티와 바게트 빵, 그리고 올리브를 사 왔다. 그리고 올리브 뚜껑을 열어서 처음 맛봤는데, 캬 그 맛이란. 너무 짰다. 너무너무 짰다. 이후로도 계속 현지인처럼 살기 프로젝트를 이어 나갔는데, 딱 두 달이었다. 두 달이 되던 어느 날 나는 결국 한인 마트를 찾아냈고, 맛의 즐거움을 다시 되찾을 수 있었다.


3살짜리 어린애보다 못하다


그래도 약 5개월 정도 한국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갔던 것 같은데, 스페인에 도착하고 나니 도통 말이 통하지 않았다. 심지어 한국에서 마지막 1달은 만반의 준비를 한다며 스페인어 회화반 수업도 들었는데, 스페인 사람들은 큰 높낮이 없이 엄청나게 빠른 말을 뱉어냈다. 길거리에 엄마 품에 안겨 대화를  주고받는 아기들의 유창함을  부러워할 때였다.


그 언어를 잘 못하는 나라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나의 경우에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무력함이었다. 한국에서는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사회의 한 구성원이었는데, 내가 스페인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제일 비참했던 건, 식당에 들어가서 메뉴를 보고도 주문을 할 수 없을 때였다. 만약에 여행을 갔던 것이라면 아무런 생각 없이 생활했겠지만, 1년을 지내겠다고 도착한 곳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힘든 경험이었다. 그래도 내가 만족할 스페인어를 구사할 때까지 한국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외국에서 생활하면 몰려다니는 한국인 무리를 볼 수 있는데, 나도 외국 생활의 외로움을 아는 사람이지만 가능하면 최대한 멀리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 외로움만 이겨낸다면 말은 더디지만, 생각보다 빨리 는다.   




외국어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영어, 스페인어, 일본어 공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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