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정말 중요하다
아래는 <인문학도, 개발자되다> 목차이자 첫 글
죽은 시인의 사회를 처음 읽었던 것이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굉장히 오래전에 읽은 책임에도 상대적으로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그만큼 여러 번 읽었고, 그 후에 영화도 너무나 재밌게 보았다. 훌륭한 선생님은 정말 많은 학생을 바꾸어놓을 수 있다. 나는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면서 그런 선생님을 한 분 만났다.
'인문학도, 개발자되다'의 네 번째 글(링크)에서 처음 한 달간 선생님을 잘못 만나서 개발 공부를 접을 뻔했다는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그러다 학원 사정으로 선생님이 바뀌었는데, 그 이후로는 개발이 재미있었다. 그 선생님이 처음 수업에 들어와서 했던 말이 "앞으로 교재는 보지 않을 테니, 예습이나 복습할 때 보든지 중고 서점에 팔아라"였다. 그 이후로 정말로 1달 간 쉴 새 없이 진도를 나가던 그 책을 덮고 다시는 보지 않았다. 대신 선생님은 개념을 설명하면서 직접 만든 예시로 그 원리를 충분히 이해시키는데 노력을 기울이셨다. 물론 처음 공부하는 내용이니 명쾌하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고, 멍한 순간도 없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학생이 질문을 하면 대충 설명하는 법이 없었다.
선생님에게 한 달쯤 배웠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과정이 시작한 지 2달이 넘어가고 있었고, 초반의 그 열정이 사그라드는지 지각과 결석을 하는 학생이 늘어났다. 하루는 선생님이 약간 상기된 얼굴로 수업 중에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선생님은 '취업이 안돼서 그냥 코딩 배워서 어디든 가려는' 학생은 필요 없다며 수업에서 나가라고 하셨다. 사명감으로 학생을 대하셨던 선생님은 만들고 싶은 서비스가 있는 예비 사업가를 키우는 마음으로 코딩을 교육하고 계셨다.
선생님은 정말 똑똑한 친구들이 코딩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지금은 한국에서 갈수록 개발자 대우가 나빠져서 똑똑한 학생들이 의대로 빠지는데, 정말 똑똑한 사람들이 한국 IT업계로 들어와서 똑똑한 서비스로 사회에 인정을 받아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업계로 들어오는 선순환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그 꿈을 이뤄가고 계셨다.
어떻게 6개월만 자리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면 취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학생들보다, 과정 내내 창업을 해보겠다며 애쓰던 나를 챙겨주셨다. 항상 도움을 구하면 응해주셨다. (음, 잘 생각해보니 3번쯤 도움을 구하면 한 번쯤 응해주셨던 거 같다.) 사업가의 길을 지지해주셨던 것도, 단순히 개발자가 아니라 자기 꿈을 이뤄나가는 길을 걸어나가길 지지해주셨던 것도 선생님이었다. 아마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분명히 여기까지 오는데 몇 년은 돌아왔을 거다.
이렇게 수업 내내 도움받은 것도 고마운데, 선생님은 졸업하는 나에게 귀한 선물을 주셨다. 당시 창업하겠다고 모여있던 나와 친구 2명이 더 있었는데, 수료할 때쯤에는 각자 회사에서 실력을 더 쌓고 모이기로 했다. 선생님은 우리의 미래가 기대된다며, 서버용으로 쓸 수 있는 작은 50만 원짜리 컴퓨터 하나와 도메인을 사비로 구입해주셨다. 당시에는 한국에 아마존 서버(AWS)가 흔하지 않았던 때라, 윈도만 써 본 우리에게 리눅스(Linux) 환경에 익숙해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덧 3년 차 개발자가 되어있는 나를 발견한다. 선생님이 주신 것은 자그마한 서버용 컴퓨터 하나 만은 아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뿌려둔 씨앗 하나하나가 훗날 싹을 틔울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도 글을 통해, 강의를 통해 그때 받은 그 배움을 나누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인문학도, 개발자되다.'는 10회를 끝으로 마칩니다. 보다 본격적인 개발 이야기로 찾아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