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마르코 Dec 24. 2015

더 똑똑하게 일하고 싶다

<인문학도, 개발자되다> 그 첫 이야기

<인문학도, 개발자되다>의 목차이자 첫 글

1. 더 똑똑하게 일하고 싶다

2. 나는 전세계를 마주할 수 있는 비지니스를 하고 싶다

3. 대한민국 정부님께서 도와주셨다

4. 개발자로 일하기 시작하다

5. 직업으로의 개발자 깊게 이해하기

6. 좋은 스타트업 찾는 법

7. 남쪽에서 귀인을 만나다

8. 어떻게 개발을 공부해야 할까?

9. 오, 캡틴! 나의 캡틴!


같은 매거진 내 다른 글 <출퇴근 없는 삶>의 목차이자 첫 글




나는 역사학도다. 대학교 4년 동안 그것도 서양사를 전공했다. 그 누구도 내가 개발자가 되어 있으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사업이 하고 싶었다


내 나라, 한국은 나에게 항상 '필수적인 경험'을 강조했다. 무엇이든 하려면 조직에 들어가서 오랜 기간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학창 시절에 사업이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대기업 들어가서 경력을 쌓고, 네트워크를 쌓아서 나와서 창업해라."


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이 말이 지독하게도 듣기 싫었다. 나는 성공이라는 것이 경력이 많다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도 할 수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가슴 뛰는 열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아리는 창업 동아리를 선택했다. 그 곳에서 창업에 대해 배운 것은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슴 속에 씨앗 하나는 심어두었다.


나는 자본이 없었다


가슴에 창업을 꿈꾸며 살았기 때문에, 이따금 머리를 세차게 치고 지나가는 아이디어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걸 실행할 방법을 찾기 힘들었다. 정부 지원 사업은 일정 금액 이상에는 항상 본인 납입금을 요구했고, 부모님이 고생하셔서 학교 다니는 처지에 사업을 하겠다고 돈을 빌리는 것도 못할 짓이었다.


나는 그렇게 꿈을 유예하고 있었다.


나는 자유롭고 싶었다


졸업 직후 시작했던 대기업 생활을 짧게 경험하고 퇴사를 결정한 나에게 깊은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 한 번 아니라고 판단한 대기업의 삶에 다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나를 존중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배운 건 회식 자리, 막내 역할, 그리고 '나를 잊는 방법'이었다.


다시 나는 사업으로 고개를 돌렸다. 똑똑한 사람들과 어깨를 맞대고 큰 일을 하고 싶었다. 내 서비스를 만들기에 가장 현실적인 방법을 놓고 고민하다, 결국 개발을 공부하기로 마음 먹었다. 최소한 뭐라도 알아야 개발자와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그리고 내가 개발을 할 수 있다면 초기 비용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나의 비장의 카드는, 만약 사업도 여의치 않으면 개발자가 되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곳으로 떠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한국은 인간답게 살기에 참 어려운 나라였다. '헬조선', '갑과 을'의 나라는 약자에게는 너무 잔인하고, 강자에게는 너무 비굴했다. 그런데 개발자는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시민권처럼 영어만 된다면 어디든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 받는다. 그 누구도 회사에 출근하길 강요하지 않고, 서로 모셔가려고 경쟁하는 세상이 한국 밖으로 눈을 돌리니 보였다. 그렇게 난 개발자의 길을 시작했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