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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Mar 24. 2016

와이프? 유리창을 닦아야 할 거 같아요

호칭을 정하다

이 매거진의 가장 첫 글에서도 고백한 적 있지만, 나는 사귀기 전부터 부인을 '부인'이라고 불렀다. 2011년부터 부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해서 2014년 말에 사귀기 시작했으니, 무려 4년 가까이 여자친구도 아닌데 '부인'이라고 불렀으니 역시 말의 힘은 대단하다. (근처에 좋은 사람이 있으면 오늘부터 부인이라고 불러보길 바란다. 농담이다. 울면서 찾아오면 안된다.)



그러다 다시 사귀면서 여자친구로 호칭이 '강등'되었고, 내가 여자친구를 부를 때는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결혼을 하면서 다시 부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미 4년 가까이 부인이라고 불러왔던터라 나는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다만 문제는 이제 사람들에게 부인을 가리킬 때 호칭이 문제였는데, 결혼하고 하루는 부인에게 물어봤다.


밖에서 내가 부인을 어떻게 불렀으면 좋겠어?


 부인은 잠시 고민하더니 '부인'이라고 이야기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해주었고, 워낙 어른들의 입을 통해 많이 들어서 입 안에서 멤돌던 '와이프'라는 호칭을 치워버리고 부인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와이프'라고 누군가에게 부인을 말하는 것이 오히려 많이 낯설다.



외국어 단어로 내 사람을 가리키다


가끔 내 지인분이 내 부인을 가리킬 때 '와이프 분은'으로 문장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서 어느 날 문득 생각을 해보았다. 왜 부인은 '와이프'라고 부르면서 남편은 '허스번드 분은'이나 '허비 님은'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일까?


내가 느끼기에 부인을 굳이 멀쩡한 한국어인 '부인'이라는 단어를 두고 외국어 단어로 표현하는 건 일종의 거리감 만들기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집 밖에 나가서 '부인을 부인이라 부르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지 못하는' 모종의 사회적 분위기가 '와이프'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아니면 자동차 앞 유리창을 열심히 닦는(Wipe) 와이퍼(Wiper)처럼 집안일을 열심히 하라는 구시대적 성차별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라는 망상도 해보았다.


아무튼 나는 내 부인님에게 굳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외국어 단어로 거리감을 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니 편하게 부인이라고 불러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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