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엠미 Aug 27. 2021

<밝은 밤>을 읽고

삶이라는 깜깜한 밤을 밝히는 것


저 멀리 인도에 사는 소년이 코로나와 관련해 새로운 예언들을 쏟아냈다고 한다. 예언이 들어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그런 사람은 별로 없다. 삶을 예측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평범한 사람은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너무 많은 일들이 뒤통수를 때려 자연적으로 학습이 된 것이다. 그러니 인생은 깜깜한 밤과 같다. 어딘지 알 수 없고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는 밤. 모두 눈 가리개를 쓰고 더듬 더듬 가는 것이다. 가능하면 옆이나 앞에 사람 허리를 꼭 붙잡고서.


소설 <밝은 밤>은 4세대에 걸쳐 100년간에 벌어진 일들을 삼천이네와 새비아주머니네의 두 집안을 통해 자세하게 써내려간다. 너무 다양한 사람들의 굴곡진 인생들이 모두 한 치 앞도 알 수 없게 이어지는 것을 보고 삶이라는건 역시 전혀 알 수 없지만 차라리 자유로운 것이라고 느껴졌다. 어제의 삶과 오늘 만을 보고 예측 가능한 미래야말로 더 딱딱하고 구속된 느낌이다. 등장 인물들은 살아가다 생각지도 못한 안 좋은 일들이 벌어져 절망하고 괴로워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일에는 절망적인 일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겐 좋은 일들도 느닷없이 왔다.


백정의 딸로 태어나 사람들에게 온갖 무시를 받던 지연의 증조모인 삼천은 삶이 깜깜하다는 것을 아주 어릴 때부터 알고 느꼈으며 의지할데가 한 군데도 없었다. 아이들은 어린 삼천에게  돌멩이를 던지기도 했다. 매순간 폭탄이 떨어지는 것 같은 삶에 실제로 전쟁까지 터졌지만 삼천을 힘들게 한 것은 언제나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컸다. 어린 삼천은 돌멩이를 안고 내 동무야, 내 동무야 하고 중얼거릴 정도였다. 좋은 일도 느닷없이 온다고 말했듯이 평생 동무가 될 새비 아주머니네가 오밤중에 증조부네를 찾아왔다. 새비아주머니가 삼천에게 해준 것은 진심으로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한 것 뿐이다. 그로써 삼천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채울 수 있었다. 전쟁 중이고 여전히 삶에 고단한 점은 많았지만 삼천은 자신을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사람을 만나자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고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되뇌며 기뻐했다.

 

소설에는 등장 인물들이 각자 의지하는 사람들로 고단한 삶을 버텨내는 모습들이 나온다. 얼마 전에 배우 차인표씨가 강연하는 것을 봤는데 상황이 어려운 친구와 함께 버킷리스트에 도전해 일상이 특별하게 바뀌었던 경험을 나누며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삶이라는 무대에 모든 연기를 끝마칠 수 있도록 단 한명의 관객이 봐준다면 버틸 수 있다.> 삼천과 새비는 서로에게 삶을 지켜봐주고 응원해주는 관객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힘을 내 그 고단한 삶을 생존할 수 있었다.


이 소설에는 전쟁과 원자폭탄같은 개인을 넘어서는 재난과 개인적 고통인 출신, 이혼, 사고, 가족간에 불화 등 다양한 고난들이 예측할 수 없는 삶에 쏟아져 내린다. 그렇지만 영웅적인 서사와 특별한 능력의 주인공으로 그것들을 극복해나가지 않는다. 그저 계속해서 삶을 버텨내는 이야기이다. 혼자였으면 고꾸라졌을지도 모를 삶을 같이 했기 때문에 버텨낸 것이다. 그 힘든 과정에서 바닷가의 추억같은 빛나는 순간들도 맛보았고 누구보다 철저하게 혼자라고 생각했던 삼천은 인생의 끝자락까지 삶을 나눌 상대를 가지게 되었다. 그 삶은 다음 세대로 이어지게 된다. 증조모인 삼천이 악착같이 생존 할 수 있었던 강력한 원천은 새비다. 삼천에서 지연까지 4세대 걸쳐 100년 동안의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었던 원동력의 시작은 오밤중에 찾아온 새비아주머니인 것이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계속해서 절망을 겪는 인물들과 사건들이 나오지만 단 둘뿐이라도 서로 의지하는 것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느껴진다면 이 책은 희망적으로 다가온다.

작가의 이전글 인어 공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