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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엠미 Jul 07. 2022

1. 내가 달리기를 실패했던 이유

측정 가능해야 관리가 된다. -피터 드러커


달리는게 너무 힘들었다. 트레드밀 계기판에 시간 숫자가 30분이 되기만을 간절히 바라봤다. 보고 또 볼수록 시간은 느리게 갔다. 미간은 잔뜩 찌푸려지고 숨은 헐떡거렸다. 마침내 30분이 되면 ‘그래, 오늘도 해냈어’라는 뿌듯함이 잠깐 들었다. 그리고 몇 일 뒤부터 슬금슬금 헬스장에 안가야 되는 핑계가 자꾸 생겨났다. 가끔씩 갈 수록 달리기는 더 힘이 들었다. ‘유산소 운동은 30분정도는 해야한다.’라는 인터넷 전문가님들의 코칭은 나에겐 그렇게 버거운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더 이상 트레드밀 근처에도 가지 않기 위해서 헬스장 이용권을 연장하지 않았다. 아직 남은 일수에도 가지 않을 핑계는 충분했다. 안타까운 점은 이 싸이클이 몇 번 더 반복됐었다는 것이다. <사랑의 블랙홀>이라는 영화를 아는가? 거기서 주인공은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를 겪는다. 같은 시간에 같은 웅덩이에 몇 번이나 빠진다. 나중에는 학습효과가 생겨 웅덩이가 있는 곳을 알기 때문에 피할 수 있게 된다. 나역시 그 주인공처럼 반복되는 실패의 싸이클에 몇 번 얻어 맞으니 학습효과가 일어나 앞으로의 일이 눈 앞에 그리듯 짐작 되었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아예 꾸준한 운동 습관을 가질 생각을 안했다. 가끔씩 유튜브를 보고 홈트레이닝 정도를 따라하고 소소하게 만족했다. 



그러던 어느 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달리기를 했다. 나는 그 날이 나를 러너의 삶으로 바꾼 아주 중요한 날이라고 생각한다. 달릴 때 들었던 노래까지 생각난다. 창모의 ‘인기가요’였으며 날씨는 야간 어둑하면서 시원했다. 지금 찾아보니 노래 길이는 4분 58초이며 딱 이 노래 끝날 때까지만 달렸다. 신발도 평소 신던 운동화였으며 옷도 편한 일상복이었다. 충동적으로 달린 것이었다. 날씨도 한 몫 했지만 달릴 때와 달리고 난 뒤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래, 오늘도 해냈어’ 와는 다른 기분 좋은 만족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산소 운동은 30분 정도는 해야합니다.’라는 전문가님들의 코칭은 일부 맞다. 30분씩 달리면 좋긴 좋다. 문제는 초보자가 30분씩 자주 달릴 수 없다는 것에 있다. 날잡아서 하루쯤은 30분이든 1시간이든 이악물고 달릴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이 악물고 달리는 것은 몇 번 가지 못하고 무엇보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노래 한 곡 들을 만큼만 달리기'로 별 다른 기대 없이 달려낸 것에 기분이 매우 좋았기 때문에 

그 뒤로 몇 번 더 노래 한 곡 들을 만큼만 달렸다. 매일 달렸던 것도 아니고 내킬 때 달렸다. 그 때 달렸던 페이스와 시간을 지금 생각해보면 1km조차 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고작 몇 백미터 였을 것이다. 나는 시간과 거리를 생각하지 않고 달렸다. 단순했다. 좋아하는 노래가 한 곡 끝날 때까지만 달리면 되는 것이었다. 야외에서 달리니 계속 쳐다봐야 되는 계기판의 숫자도 없었다. 


신발 끈만 조이고 좋아하는 노래 틀고 몇 분만 달리면 되는 과정이 아주 만만했기 때문에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갈수록 자주 들었다. 거의 매일 1곡씩 달리게 되고 얼마 후 왕복 2곡으로 자연스럽게 달리는 시간이 두 배로 늘어났다. 전문가적으로 딱딱하게 얘기하면 실행 과정을 간략화시키고 목표를 낮게 잡으면 된다. 그리고 평범한 인간으로서 덧붙이자면 목표를 잡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적절한 목표이다. 내가 노래 한곡 들을 만큼 달렸던 것이 달리기의 시작이라고 해서 누구에게나 이것이 시작의 기준점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5분 달리는 것도 높은 기준일 수 있고, 기초 체력이 좋은 누군가는 5분이 너무 짧을 수도 있다. 신체적 조건도 다르지만, 감정적 상태도 제각각이다. 그날의 의욕과 게으름 정도에 따라 달성 가능한 목표는 가변적이다. 그럼에도 초보자는 자신에게 만만한 정도의 달리는 양을 찾는게 우선되어야 한다. 우선 좋아하는 노래 한 곡 끝날 때까지 기분 좋은 속도로 달려보고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굳이 안들어도 된다. 기분 좋게 달리는 것이 중요하다.) 버겁다면 조금 줄이고 느슨하다면 조금 늘려보자. 


1분이 됐든 2분이 됐든 '나는 이만큼은 달린다'라는 시작 기준점을 잡아야한다. 왜냐하면 측정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속도는 신경쓰지 말고 달리라고 하고 싶다. 오로지 계속 자주 달릴 수 있는 만만한 시간량만 찾아내라. 앞서 말했듯이 나는 처음에 달리기 어플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달린 거리와 속도를 모르고 달렸다. 그래도 내가 노래 '한 곡' 정도는 기분 좋게 달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것이 나의 측정 단위였다.  노래마다 길이는 달랐지만 무슨 노래든 끝날때까지 달렸고 얼마 후  '두 곡' 끝날 때까지 달려야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세울 수 있었다. 측정 가능해야 관리할 수 있다.  





<거의 매일 10km, 5000km를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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