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면하기
토요일 오후 요즘 시작한 운동이 있다. 바로 테니스!!
코로나로 외출하기도 힘들고 여행하기도 부담스럽고 부대끼면서 운동하는 것도 걱정스러운 시기를 지내면서 생각한 것이 자전거 타기, 등산 하기에 이어 코트를 사이에 두고 공을 주고받는 것이었다.
눈에 자꾸 보이면 관심이 간다더니... 집 근처 주상복합 상가에 실내 테니스가 생겼길래, 상담받고 등록을 했다. 물론 혼자가 아니라 중3 아들과 함께 말이다.
함께 운동한다는 것만으로도 아들의 세계를 조금은 들여다볼 수 있어서 행복한 순간이다. 그리고 이 경험은 아들의 다른 세계로까지 확장이 된다. 취미로 하는 운동도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자신의 인생은 더욱 정성껏 살겠지,라고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어느 토요일 오후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땀범벅에 얼굴을 붉게 상기되어 있고 채는 크로스로 메고, 자전거를 타고 있는 모습이 얼핏 보면 아마존의 여전사 같은 모습???
힘들긴 한데 '아~기분 좋다~집에 가서 얼른 샤워해야지~' 하고 운동 후의 만족감을 만끽하고 있는데, 아파트 도서관 앞을 지나는데 도서관 앞 나무 그네에 너무나도 낯이 익은 청년들이 담배??? 를 피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게 무슨 일이야?
자전거를 타고 지나고 있었기에 정말 1초? 사이에 고민할 겨를도 없이 내 입은 열리고 말았다.
"안녕~"
하고 지나가고 있었다. 난 그저 우리 아이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공중도덕을 잠시 일깨우고 싶었을 뿐 어떤 행동을 저지하거나 따끔한 충고를 하거나 하고 싶지 않았다.
"아, 선생님" 하더니, 피우던 담배를 손으로 재빨리 끄고 뒤로 얼른 감추고는 둘이 벌떡 일어서서 나에게 조금씩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앗, 저런 손 데이면 안되는데. 순간 너무 놀래서 자전거를 멈추고 나도 조용히 다가갔다.
"서,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며 쭈뼛거린다.
"잘 지내고 있어?"하고 씩~웃어주었다. 그리고 선생이 병인지라 한마디 안 할 수가 없어서 했다. 그리고, 나는 인사만 건네고 유유히 사라지려 했는데 아이들이 다가왔다는 것은 나에게 잔소리를 들을 마음의 각오가 서있다는 것이니 기대에 부응해 주기로 한 것이다.
"뭐야... 고3이면 열정을 불사르고 있어야지. 아직도 몸 안의 산소를 태우고 있는 거야?"
"하하하"
아이들 머릿속에는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아, 좆됐다. 걸렸다. 현장에서 걸렸으니 이건 선도 각이다.' 등등...
사실 [학생이 담배를 피운다.]라는 문장에는 아주 많은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
1. 미성년자인 학생이 담배를 구입한 것은 불법이다.
2. 학생에게 담배를 판매한 가게는 영업정지 처분을 받는다.
3. 학생이 담배를 사지 않았더라도 피울 수 있도록 제공해 주는 '어른'이 있다.
4. 아이가 스트레스를 아이들끼리 담배로 푼다.
5. 학생이 담배를 사는 것은 불법이나 피우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이 외에도 여러 문제점들이 보일 것이다. 도대체 뭐가 제일 큰 문제일까? 물론 사회구조, 법적인 구조 자체가 모순인 부분이 큰 문제이긴 하지만 나는 4번, [아이가 스트레스를 아이들끼리 담배로 푼다.]가 가장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받고 있는 스트레스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어긋난 시스템 안에서 쌓이는 것인데, 그것을 어른에게 말하지 못하고 또래 아이들끼리 바람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풀어낸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기에 말할 수 있었던 것이지 나와 상관없는 아이들이 피우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런 태도를 취할 수 있었을까?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다.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학생 시절을 돌이켜 보면 날마다 밤마다 만화책만 읽었던 것 같다. 야자 시간은 죽기보다 싫어서 탁구부 기숙사 장독대를 발판 삼아 담을 넘어 학교를 탈출해서 집에 가서 할 일 없이 잠만 잤던 날들도 많았다. 담 넘어 탈출할 기력도 없으면, 몸이 아프다고 거짓말하고 또 집에 가서 만화책만 읽었다.
담배 피우는 아이들을 사회에서는 [문제아]라 낙인찍었다. 어쩌면 담배 피우는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낙인]이 더 큰 문제일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한 번쯤은 곁길에 서 보았을 것이다. 아니 지금도 서있지 않을까?
'제 좀 이상해, 문제아야, 큰 일이다'라고 하기 전에, 우리 서로를 직면해 주는 것을 해보면 어떨까?
우린 아직 땡감들이라 그 맛이 떫고 쓰고 머금고 있기에 고통스러운 것 같다. 어른인 나도 감히 어른이라 말하기 두려운데 10대 아이들에게 너무 어른스러움을 기대하는 것은 폭력이라는 생각도 든다. 감나무의 감들이 좋은 햇살만 곱게 받으면 홍시가 될까? 비도 견디고, 바람도 견디고, 찬서리도 견디다 보면 맛있는 홍시가 되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곁길에 서있는 것들을 직면하여 서로 바라봐주기를 하다 보면 서로 익어가며 너그러워질 것이다.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혹은 주위 사람들에게 "안녕"이라고 말을 걸어주길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