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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아톰 Feb 14. 2021

요구르트 효과

친절과 투자 사이

배달 기사들이 식사를 해결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일반적인 식사시간이 바쁠 때니 그 시간이 조금 지나서 식당이나 편의점에서 해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하는 내내 먹지 않고 참았다가 퇴근 후 집에 가서 식사를 하는 방식이다. 나는 후자에 속하는데 하루에 10-12시간 일을 하며 그게 가능한가 싶겠지만 애초에 식사시간이 불규칙하고 하루에 한 끼를 양껏 먹는 게 다반사였어서 그런지 크게 힘들진 않았다. 집중하지 않으면 길을 잘못 든다든가 사고가 난다든가 불상사가 날 수 있기에 늘 몸이 긴장하고 있어 딱히 배고픔을 크게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이런 상황에 때로 생각지 못하게 주어지는 간식이 여간 반가울 수 없다. 가게 사장님들이 고생한다며 건네는 작은 간식거리 하나가 그렇게 맛나고 따뜻하다. 당 당길 때 하나씩 까먹으라며 한 움큼 쥐어주시는 사탕에 주머니는 늘 불룩했고 서로 다른 가게에서 매일 같이 받은 요구르트에 별도의 유산균 없이도 장 활동이 활발했다. 한 도넛 가게의 입구에 쌓인 못난이 도넛들은 가게가 조금 까다로운 위치에 있음에도 배정되면 기쁜 마음으로 향하는 이유가 되었다. 추운 날 아직 음식이 안 나와 조금이라도 기다려야 할 때는 따뜻한 커피 한잔을 건네면서도 미안하다 하시는 사장님이 있었으며, 한 시장의 횟집 사장님은 갈 때마다 배달음식과 함께 먹고 천천히 하라며 크린백에 삶은 계란과 요구르트를 담아 건네셨다. 연세 지긋한 할머니가 하시는 떡볶이 가게에서는 어차피 오늘 팔만큼 다 팔아서 이거 하고 들어 갈 거라며 남은 떡볶이를 한 아름 포장해주시는 바람에 퇴근 후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유독 달고 가벼운 날도 있었다.

물론 이런 가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다 많은 경우 그저 평범한 배달원과 식당 주인의 관계 그 자체이고 꽤나 많은 사장님들이 배달 기사들이 자신들 덕에 먹고 산다 생각해 하대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가게를 찾아 들어가 "안녕하세요 사장님. 음식 가지러 왔습니다."하고 밝게 인사를 건네봐도 쳐다보지도 않고 "음식 나오면 부를 테니 나가서 기다리세요." 하며 쫓아내듯 추운 겨울 밖으로 내모는 사장님들도 있다. 그리고 이런 경우 높은 확률로 꽤 오랜 시간 밖에서 대기해야 한다. 나는 시급을 받는 것이 아니고 건당 돈을 받아서 기다리는 시간 동안은 한 푼도 못 버는 사람인데 말이다.



사실 이런 사장님들의 심정이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로 인해 배달이 호황이라 배달을 하는 가게들은 돈을 많이 벌었을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고객이 지불하는 배달비는 사장님이 지불하는 추가 배달비에 못 미치며 플랫폼이 주문마다 가져가는 수수료와 원가, 인건비를 제하면 사실 10000원짜리를 팔아도 2-3000원도 남기기 힘든 실정이다. 그럼에도 하는 것이다. 힘든 시기에 뭐라도 해야 하니까. 조금이라도 꾸역꾸역 벌어야만 하니까. 그러다 보면 배달만 하면서도 자신보다 돈을 더 버는 것 같은 기사들을 보며 얄미운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그저 그럼에도 베푸는 가게 사장님들의 마음의 여유가 놀랍고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그렇지만 배달기사를 하대하는 태도는 합리화될 수 없고 또 그건 자신에게 결코 좋은 일로 되돌아올 수 없다. 한 번은 이런 상처들과 기다림이 겹겹이 쌓여 한 배달 커뮤니티에 가게의 상호명이 올라왔고 배달 기사들은 그간의 경험을 서로 토로하며 단체로 그 가게의 콜을 잡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직접적인 불이익만이 아닐 것이다. 결국 사장님이 배달 기사에게 보인 태도는 그대로 고객에게 돌아간다. 배달 기사도 감동받고 상처 받는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기분은 이어져 곧 태도가 되고 말투가 되고 분위기가 된다. 반가운 인사나 좋은 말을 한 번이라도 더 듣고 요구르트라도 먹었으면 적어도 그 가게의 음식만큼은 조금 더 빨리, 친절하게 손님에게 건네고 싶어 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또 흔히 똥콜이라 불리는 더 먼길, 더 험한 길의 콜이더라도 친절을 베풀었던 가게의 콜이라면 거절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수락을 누르는 것이 배달 기사의 마음이다.  그리고 난 믿는다. 내가 가게에서 받은 마음과 태도가 내가 들고 움직이는 동안 음식에 그대로 담길 거라고, 그리고 그 마음이 음식을 조금이라도 더 맛있거나 맛없게 만들 거라고 말이다. 이 믿음은 문과생의 단순한 감상이 아니다. 초등학생 때 식물을 키우며 좋은 말 이쁜 말만 해준 식물들이 더 아름답고 이쁘게 큰 것을 본 과학적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가게에서 기사를 자신 덕에 먹고사는 사람이 아니라 동업자라 생각하고 친절을 베푸는 것은 일종의 투자가 될 수 있다. 자신의 가게에만 헌신하는 배달 종업원을 쓰기 힘든 현실에서 그 작은 투자들은 짧은 시간이나마 배달 대행 기사를 자신 가게의 직원같이 만든다. 더불어 자신이 행한 선행에 대한 뿌듯함과 기사에게 주어진 따뜻함과 감사함은 덤이다.



이효리가 핑클 멤버들과 함께 떠난 캠핑에서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날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이 있었다. 가장 앞장섰던 이효리는 신호에 멈출 때 멤버들이 잠시나마 나무 그늘에 있게 하기 위해 자신이 일부러 그늘 앞에 섰다 말했다. 그런데 그다음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그것이 한편으론 자신을 위해 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더라.

 "자신 스스로가 기특한 순간이 쌓이면 그게 자존감이 되는 것 같아."

바야흐로 자존감 열풍의 시대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애를 자존감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자기애만 부풀리다가는 언젠가 펑 터져버릴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자존감은 지하철, 버스 좌석에서 노약자를 앞에 두고도 오늘도 수고한 나를 위해 모른 척 눈 감았던 순간이 아니라 몸은 지쳐있어도 다른 이에게 미루지 않고 벌떡 일어나 양보한 순간에 드높아진다. 애초에 사람은 혼자 설 수 없는 존재이니 자존감 또한 그럴 테다. 절대 나 혼자 세우고 높일 수 없다. 자존감의 가장 큰 기둥은 결국 타인을 돌아 나에게 주어진다.



이런 생각과 배달의 경험이 더해지고 나니 일상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태도도 조금 달라진다.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숙명처럼 이웃사랑에 대해 들어왔기에 늘 조금의 손해는 당해도 괜찮다, 이왕이면 친절하자는 생각으로 살아가곤 했다. 하지만 때로 마음 한켠 베푼 만큼 돌아오지 않는 것만 같은 세상에 상처 받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었는데 내가 베푼 작은 친절이나 선행이 남을 위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좋고 편하다. 이 스스로가 기특한 순간이 쌓이고 쌓여 돌처럼 단단해지면 모든 것이 부서진 어느 순간에도 변함없이 날 지탱해줄 거라고 난 그렇게 믿는다. 그리고 내가 친절이나 선행을 베푼 이로부터 지금 당장 나에게로 돌아오진 않겠지만 그 따뜻함이 다른 이에게로 또 다른 이에게로 돌고 돌아 언젠가 힘든 순간 나에게로 올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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