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에 대하여
세상만사가 그렇듯 모든 일이 익숙해진다.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 그랬던가? 세상엔 잠들지 못하는 숱한 밤마다 마음을 괴롭히는, 도무지 적응되지 않을 것만 같은 신경통들도 분명 있지만 적어도 직업적인 측면에선 맞는 말인 것 같다.
하루에 10시간 이상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오니 긴장이 풀려 온 몸이 쿡쿡 쑤시던 날도 지나갔고 대형 쇼핑센터 앞에만 서면 쫄아있던 가슴도 조금은 뻔뻔해졌다. 더 이상 목적지로 출발할 때 방향을 틀려 유턴하지 않아도 되고 웬만한 큰길은 네비 없이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많은 길들의 신호등 변경 순서까지 외워졌다. 신규 입점이 아닌 식당들은 다 몇 번씩 가보았기에 이제 식당 입구가 헷갈리지 않는다.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면서도 헤매지 않고 척척 주소를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 기름 게이지가 F근처에 있으면 오토바이를 얼마 정도 더 탈 수 있는지 정확히 알게 되었고 머릿속으로 경로를 짜며 근처 주유소 하나쯤 추가로 넣는 것은 일도 아니게 되었다. 시간이 쌓이니 이렇게 기술이라 하기도 애매한 잔기술이 는다. 근데 꼴랑 그것도 경력이라고 처음에 비해 시간 대비 수익이 커진다. 익숙하지 않아 신경 쓰이던 일들이 많이 줄어드니 그만큼의 시간이 빠진 탓이다. 그렇게 신경 쓰일 일이 줄어드니 머릴 메우던 생각도 점점 단순해진다. 분명 적응되고 익숙해져 단순해지는 것은 큰 축복이다.
근데 이와 함께 별일 아닌 일들도 자꾸 많아져만 가고 모든 일이 결국은 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되는 것만 같다.
그 틈새를 비교와 교만이 비집고 들어온다. 내 수입이 커져가니 다른 사람의 수입을 보게 되고 이제 왠지 나도 그만큼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니 오토바이를 조금씩 무리해서 타기도 하고 짜증이 늘어간다. 내 능력은 그만치 되는 것 같은데 운이 안 따라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늘어난 수익에 대한 감사는 안중에도 없고 내가 오늘 놓친 것들에 대한 아쉬움만 커진다. 때로 반복되는 일의 지루함이 일보다 고될 때가 생기고 그럴 때마다 오토바이 엑셀은 더 강하게 감긴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했던가? 꼭 연애에만 적용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모든 일이 익숙해질 때 가장 신중해야 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 같다. 내가 이 일의 모든 것을 이제 다 아는 것만 같은 교만이 툭툭 튀어나올 때 사고가 나더라. 긴장이 풀려 저지른 실수로 인한 사고는 그나마 낫다. 다시 긴장하고 정신 차리면 되니까. 익숙해지면 이젠 훤히 꽤고 있어 빈틈이 보이는 일의 시스템 사이에 조금의 부정을 끼워 넣으면 더 큰 수익 창출이 날 것이 보인다. 그 유혹을 못 이기고 그렇게 알고도 저지른 사소한 일들이 쌓이고 쌓이다가 처음엔 들킬까 가슴이 쿵쾅 거리던 부정들마저 익숙해져 감흥이 없을 때 한 번에 무너지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배달 일에 부정이 어디 있고 무너지는 경우가 어디 있나 싶겠지만 생각보다 많더라. 매장에 도착하거나 배달을 아직 완료하지 않았는데 조금 더 빨리하려는 욕심에 미리 누른 버튼들의 기록이 모여 계약 해지가 되기도 한다. 감사를 잊은 하루의 짜증과 억울함이 폭발해 손님이나 식당 사장과 필요 이상의 욕까지 하며 싸워 계약이 해지되기도 한다. 단거리 배달만 하고 싶어 자전거로 배달 수단을 거짓으로 변경해 일을 하다 사고가 나 무보험 처리가 되어 그간 번 돈을 다 날려먹는 경우도 있다. 보험료를 아끼려 오토바이 출퇴근 보험으로 일을 하며 사고 후 보험 처리를 했다가 보험 사기로 고소를 당한 사람도 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상황을 미리 방지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감사함을 돌아보는 것뿐이다. 점점 거지 같아지는 것만 같은 세상이 자꾸 감사 감사 거릴 때 이 상황에 감사 같은 소리 한다며 종교를 대신하는 새로운 민중의 아편이 아닌가 괘씸한 마음이 들 때가 있었다. 억지로 찾는 감사 클리셰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도 숱하게 들었다.
그런데 남으로부터 주입된 것이 아닌, 스스로 하는 감사는 삶과 태도를 건강하게 지키기 위한 생각 근력 같은 것이었다. 자연스레 내게 찾아와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가기 싫어도 건강을 위해 미리 또 자주 찾아야 하는 헬스장 같은 것이다. 익숙해진 부위를 더 큰 감사의 무게로 쳐 근육통을 계속 주입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긍정적 고통으로 오늘 내게 주어진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생각을 다잡는 것이다. 주변에 "감사합니다."를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주는 건강한 에너지가 이 습관으로부터 온 것 아닌가 싶다.
감사는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 시시한 하루 태엽을 다시 감아 찬찬히 더듬어 특별함을 발견하는 것, 흐트러져 있는 순간들을 정돈하는 것, 찌그러진 미간을 다시 펼쳐 오늘 하루 다가온 햇볕들을 받아들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