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하는 자의 몫
살면서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하다 못해 초등학교 시절 돈 넣고 메달 먹는 게임기에서도 흑자 한번 본 적이 없었고, 휠리스를 뽑으려 도전한 100원짜리 종이 뜯기에서도 많은 투자에도 불구하고 사탕 이상 받아본 적이 없다. 그 흔한 만득이 한번 못 얻어본 것이다. 그러니 금전운이라고 좋을 리가. 일벌레 엄마의 피 탓인지 일복은 많았던 터라 부족한 금전운도 일하는 시간으로 때운다 생각하며 살아왔다.
건당 금액을 받는 배달일의 구조상 운이 하루의 수입을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많다. 정말 운이 지지리도 없어서 일기에 적지 않고는 못 배기는 날이 있었다. 그날 있던 일을 잠시 나열하자면 내 직전에 왔던 라이더가 실수로 내 몫의 음식을 가져가 주문이 취소되었고, 마라탕을 배달하는데 멀쩡하던 봉지가 고객의 집 대문 앞에서 터져 다시 가게를 오갔다. 걸어서도 갈만한 아주 가까운 배달지가 걸려 신이 났는데, 이사를 한다고 엘리베이터를 막아놓는 바람에 하나의 엘리베이터가 지하 3층에서 40층까지 층마다 서는 사태에 그 건물 안에 25분을 잡혀 있었다. 다른 라이더가 카드기를 놓고 가 음식은 전달했지만 후불 결제를 하지 못해 대신 결제만 하라며 전화가 와 운이 좋았나 싶었더니, 손님이 잠수를 타 40분을 날려먹었다. 마침내 저녁엔 갑자기 타이어까지 터져서 근처 오토바이 수리점을 찾았다.
그저 사건만을 나열했기에 건조해 보이지만, 저날 내 기분은 순간마다 하늘과 땅을 오갔다. 저 불운의 산사태 속에서 변화하는 큰 기분 리듬을 살펴보면 짜증이 솟구치다가 정점을 찍으면 갑자기 초연해진다. 하루를 그렇게 놓아주면 한동안 마음이 편하다가 그럼에도 더 큰 불운이 지속되면 이놈의 세상이 내게 왜 이러나 싶어 문득 서글퍼진다. 그러다가 언제는 안 그랬나 하는 생각이 오히려 위로가 되니 아이러니하다.
완벽한 성과제인 배달일을 하는데 막상 일을 하며 스스로 통제 가능한 부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수익 혹은 성과가 내 능력과 열심보다는 운에 따라 하루마다 달라지는 것을 느끼니 허탈한 날이 많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멘탈이 부서졌고, 당장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참는 것에 연속 또 연속이었다. 내 마음 같지 않은 상황과 결과에, 뜻대로 되지 않는 하루에 몇 번이고 좌절했다.
돌아보면 삶도 매번 그랬다. 늘 계획을 세워보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매번 부서지길래 "가장 완벽한 계획은 무계획이다."라는 말에 마냥 웃지 못했다. 내게도 반지하 습한 공기와 냄새가 그득 베여있는 것만 같아서. 그래 봐야 다 핑계고 결국은 너의 실패라고 세상이 선 긋는 것 같아서 말이다. 핑계라는 말은 내가 쓰면 방패지만 남이 쓰면 칼이더라.
그래도 누군가 내게 있어 어떻게 살아갈 거냐고 묻는다면 "무계획이 계획이야."라고 말하기보다 조금은 더 멋들어지게 "다가오는 것을 내 나름으로 받아들이며 살 거야."라고 대답할 테다. 정작 내가 계획하고 만든 것은 어디 가고 없지만 그래도 다가온 것에 대해 반응했던 것들이 삶을 나름대로 구성하고 있으니까. 이런 태도가 글로 쓰니 엄청 무기력할 것 같지만 막상 그렇지 않다.
밑바닥에서 도망치듯 떠난 필리핀에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만났고, 믿음도 없이 그저 성실했던 전공 공부가 문득 큰 힘이 될 때가 있다. 내게는 분명 짜증 폭발하는 일이었는데 별일 아니란 듯 다시 재빨리 조리를 시작하는 마라탕 셰프님과 타이어 빵꾸를 5분 만에 때워주는 수리점 사장님의 이것쯤은 별거 아니란 듯한 태도에 괜스레 안도감이 들어 맘이 풀리기도 한다.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지만 반응하는 방식에 따라 결국엔 내 삶은 달라지더라.
그러니까 뭐든 별일 아니다. 그냥 내 멋대로 반응하면 그만이다. 하루에 얼마나 벌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내 능력 밖의 일이기 때문에. 막상 한 달 평균을 계산해보니 지난달과 퍽 다르지도 않더라. 그러니 오로지 제일 중요한 것은 그 모진 바람 다 이겨내고 오늘처럼 내일도, 모레도, 그다음 날도 꾸준히 집 밖을 나서는 것뿐이다. 그것만이 가장 확실하게 통제 가능한, 반응하는 내 하루치 몫의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