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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아톰 Oct 14. 2021

어른스런 마음

반복 그리고 밥의 온기

일을 나가면 보통 밖에서 11-12시간가량을 보내고 돌아오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밤늦게 터벅터벅 돌아온 내 원룸 자취방엔 밥 냄새가 날 물리적 시간의 틈이 없다. 얼른 하루끼를 때우고 잠자리에 들어야만 한다. 늘 가벼운 불면을 달고 살며, 눈을 감고도 쉬이 잠에 들지 못한 밤이 숱하다. 그러니 경험적으로 내일 일에 지장이 없으려면 그래야만 한다.



다행히 먹을 것을 전혀 가리지 않는 나이기에 그저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려 도시락을 사 오면 그만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넣어 돌리고 그 시간 동안 옷을 재빨리 갈아입는다. 재료와 반찬은 달라도 끝맛이 모두 똑같은 편의점 도시락을 우물우물 씹어 넘겨 재빨리 치워버리고 씻는다. 그렇게 채 한 시간도 안 되는 하루의 마무리를 반복하고 있노라면, 이대로 살다간 내 모든 하루의 뒷맛이 편의점 도시락 마냥 똑같을 수밖에 없겠다는 씁쓸한 공포가 덜컥 차오른다. 조금의 기대와 설렘조차 없는 하루를 반복하는 일이 아직 난 많이 버겁다. 여전히 어리고 미숙한 마음인가. 근데 이게 어른의 삶이라면 평생 어른이 되고 싶진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때에 전화로 100중에 7정도 어제와 다른 오늘을 들춰내 꼼꼼히 나누고, 휴일을 기다리게 만드는 연인이 없었다면 버텨내는 삶이 훨씬 더 버거웠을 게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늘 텅 빈 동공과 가난한 마음으로 일했을 테니 이 관찰기조차 쓸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건넨 좋은 연애는 어떤 연애냐 묻는 물음에, 연인과 지낸 하루가 쌓여간 만큼, 한 걸음씩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답하곤 했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어린 날엔 연애가 지속될수록 서로 발전하고 있다 느껴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마음과 몸이 지탱할 수 있는 무게보다 조금씩 더 무거운 하루를 반복하고 있자니, 발전과 성장을 위한 채찍질 속에 뜬구름으로 치부받던 위로의 소중함이 폴폴 떠오른다. 평범한 하루를 뒤져 연인에게 나눌 아주 작은 새로움과 특별함을 찾아 샅샅이 나누는 위로도, 또 그것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소중함을 새롭게 깨달아가는 순간도, 그렇게 고마움을 되새겨 다시 사랑하는 마음으로 채우는 순환도 서로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좋은 연애를 하는 우리만의 방식이 되었다.



하루는 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요리를 좋아하는 애인이 서프라이즈로 꼭 생일상 같은 밥상을 차려놨다. 군대 첫 휴가를 나와서도 엄마의 김치찌개에 조차 별 감흥이 없던 둔해 빠진 나인데, 이 밥상에 놓인, 좁디 좁은 주방에서 내가 좋아할 것을 상상하며 혼자 복작복작 요리했을 애인의 예쁜 마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조금 고인다. 이 사람을 위해서라면 반복되는 지겨운 하루를 팔아 돈만을 쫓아도 생의 끝에 후회는 하지 않을 것 같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던 악착같은 엄마의 어른스런 마음이 이제야 살펴진다. 결국 나도 속절없이 어른이 되어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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