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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아톰 Oct 18. 2021

"Winter is coming."

배달러의 겨울

계절 중에 겨울을 가장 사랑한다. 한시적으로 사라지는 벌레에 대한 공포도, 온도의 구간에 발맞춰 정하는 외투의 두께도, 가장 추운 날 침낭 같은 롱패딩을 입고 성에 찰 때까지 걷는 것과 애인의 손을 함께 포개 숨기는 주머니, 소리가 잦아드는 귀도리, 그리고 무엇보다 차갑고 마른 숨의 들락과 조금 대펴진 채로의 날락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배달을 하는 동안만큼은 이 겨울을 피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가만히 서 있어도 추운 날씨에 바람을 맞으며 일한다는 게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서 배달에도 장비빨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자신의 오토바이로 일을 하는 전업 기사들의 경우,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 이 장비들에 과감히 투자한다. 기능성 방한복, 방한화, 장갑, 목토시, 바라클라바부터 오토바이 그립에 열선을 달기도 하며, 최근엔 보조배터리를 연결해 사용하는 전기열선 조끼까지 등장했다.

내 경우 일을 오랫동안 하지는 않을 것이었고, 오토바이도 렌탈이었기 때문에 따로 튜닝을 할 수 없었고 장비에 큰 투자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기본적인 방한복, 방한화, 장갑만 갖추고 일을 했는데, 워낙 겨울을 좋아하고 추위도 잘 타지 않는지라 영하 8도 정도의 온도까지는 일을 하는데 큰 지장이 없었다. 사실 난 그 이하의 온도에서도 일부러 조금씩 뛰며 바쁘게 일을 하면 몸에 온도가 올라가서 그렇게 춥지는 않다. 근데 밖으로 삐져나온 손가락은 도무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더라.



배달 기사들은 핸드폰을 통해 일을 하기 때문에 보통 장갑에 일부러 구멍을 낸다. 엄지와 검지 손가락 부분을 뜯어 스마트폰 터치가 가능하게끔 하는 것이다. 터치가 가능한 장갑을 쓰면 되지 않냐 묻겠지만, 계속해서 콜을 받고 길을 찾아야 하기에 아무래도 맨손만 한 것이 없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는데 오토바이 그립에 방풍 토시를 달았더라도 영하 5도 이하의 온도에선 손가락이 미칠 듯 시려온다. 시림은 중첩 데미지가 되어 곧 아리다가 아파오는데, 이때부터의 막막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기에 최근 도보, 자전거, 전동 킥보드 등을 이용한 아마추어 배달러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음에도 이런 날엔 찾아볼 수가 없다. 바로 이런 날 전업기사들의 장비와 능력이 빛을 발한다. 오히려 추운 날이 돈 버는 날이라며 반기는 기사들도 많다.



아직 아마추어에 가까운 나는 그럼에도 지금만은 프로라는 마음을 가지고 일을 나간다. 그러나 추위만 장애물은 아니다. 눈이 오지 않았음에도 곳곳에 얼어있는 빙판과 헬멧의 김서림, 6겹의 옷으로 인해 둔해진 몸 등등 겨울은 배달러에게 조심해야 하고 거슬리는 것 천지다.  



그래서 그저 안전 귀가만을 생각하며 내가 좋아하는 겨울을 즐기며 천천히 일을 하기로 했다. 가장 스트레스였던 조리 대기 시간도 이런 날은 반갑다. 짧은 시간이나마 앉아 손과 몸을 녹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런 날은 식당 사장님, 손님 가릴 것 없이 평소보다 감사 인사를 유독 많이 듣고, 따뜻한 캔커피나 핫팩을 건네받기도 한다. 추운 날에도 일을 나온 성실한 다른 배달 기사들과 눈이 마주칠 때 받는 동질감, 무언의 응원과 위로는 덤이다.



글을 쓰고 보니 겨울을 사랑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사람은 날이 추울수록 웅크려 속을 데운다. 그래서 서로를 향하는 온기가 알게 모르게 더 따뜻하게 전해진다. "Winter is coming." 겨울은 나에게 두려움이 아니라 따뜻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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