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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아톰 Oct 19. 2021

필요한 만큼

가성비인간


자의식 과잉인 채로 살았던 어린 날을 돌아보면 친구들을 친구 이상으로, 내 일부처럼 여겼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 자신이 주인공이라 생각하지 못한 채, 그저 내 이야기 속 조연과 단역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때로 누군가 떠나갈 때, 멀어질 때 내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고통이 찾아왔다.

나에게서 한 발치 멀어진 지금, 누군가를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 또한 일방적일 경우 폭력과 상처가 될 수 있단 사실을 안다. 소중할수록 상대방의 입장에서 틈을 두고 더 조심스레 대해야만 한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그 시절부터 이어온 인연들에 대한 진심은 여전히 애틋하다. 이젠 그들을 더 이상 예전처럼 자주 만날 순 없어도, 내게 무얼 주거나 갚지 않아도 말이다. 그런 내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을 하더라. 지난 토요일 결혼한 은지는 서툴고 삐딱해 가시나무 같던 내 스무 살에 처음 다가와 준 당찬 친구다. 은지와 은지 덕에 만난 친구들과 함께 지냈던, 유독 짧고 진했던 그 1년을 생각하면 아직도 그리운 마음에 말랑해져서 뭉클해진다.



"방황해라, 태만해라, 죄를 지어라. 그러나 올바른 사람이 돼라."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들이 아니더라도 방황도 하고, 태만도 하고, 죄도 지었을 테다. 그러나 올바른 사람이 되어가자고 마음먹진 못했을 것 같다. 그래서 유난스럽고 과잉되었지만 때론 그 1년이 내 20대를 구원했다고 느끼곤 한다.

이들뿐만 아니라 그럼에도 삶은 아름답다 가르쳐준 친구와 선생님들이 참 많다. 감사하다 정말.



난 돈 욕심이 근본적으로 많지는 않은 사람이다. 아니 돈이 많이 필요치 않은, 유지보수에 비교적 돈이 굉장히 적게 드는 인간이다. 친구들은 그런 날 보고 가성비 인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엄마부터도 어릴 적 농사를 지으며 컸으니 아마도 난 농부 dna를 지니고 있을 거다. 즉 기초 체력과 지구력, 둔한 감각을 타고났다. 잔병치레가 없고, 여타 별다른 영양제가 필요치 않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 박카스 한 병이면 족하다. 더불어 고른 치열과 안정적인 피부를 물려받았다. 그래서 헌혈하고 받는 스킨로션을 발라도 피부에 별 무리가 없다. 이마저도 잘 바르지 않지만. 심지어 수염도 잘 나지 않아 면도기도 따로 사지 않고 족집게로 몇 가닥 뽑으면 그만이다. 이발병 때 배운 기술로 머리카락도 집에서 직접 자른다. 운동은 헬스장을 몇 번 다녀봤으나, 아무래도 사람 없는 곳을 좋아하는 내 취향에 늦은 밤에 안양천을 따라 걷기나 뛰기, 자전거 라이딩이 제일이다. 술은 몸이 받질 않고 담배는 하지 않는다. 추위도 잘 타지 않아 겨울철에 보일러를 트는 날이 손에 꼽는다. 먹는 것도 가리지 않고 그냥 있는 걸 먹는다. 밥에 물을 말아 김치만 올려 먹어도, 국수를 삶아 설탕만 뿌려 먹어도 된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거나 살아가는 일들에는 돈보단 시간이 든다.



이런 나조차 돈을 왜 벌고 있는지 잊으면 돈을 갈망하는 마음은 자꾸 새끼를 친다. 벌수록 더 벌고 싶고 결국 나중엔 왜 돈을 벌고 싶은지도 까먹게 되더라. 그러면서 정작 내가 좋아하는 일과 사람에 쏟을 시간은 자꾸만 적어진다. 돈도 별로 안 드는 인간이면서도 순간순간 욕심만 커지던 내 마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배달일을 하며 전보단 확실히 더 큰 금전적 여유가 생겼다. 금전적 여유가 생겨 정작 가장 기쁜 것은 가끔 친구들을 만나 밥을 사거나, 결혼식에서 마음 편히 축의금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크지 않은 돈이지만, 소중한 이들에게 속으로 계산하거나 궁상떨지 않고 기꺼이 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준만큼 돌아오지 않아도 아무 상관없는 마음이 생겼다. 이만큼이 내 필요라면, 채우는 데 지금 버는 만큼의 돈도 필요치 않다.

필요한 만큼을 알고 그만큼을 얻으면 만족하는 삶은 정말 불가능한 걸까? 생각해보면 정작 내가 꿈꾸고 바라는 미래와 기쁨엔 사람이 있지 돈이 있진 않다. 그래서 돈 얘기를 쓰자고 마음먹고 앉았으면서 친구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열었나 보다.



아직 책임질 가정이 없는 자의 철없는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여전히 자본의 언어와 놀음에 삼켜진 채 살고 싶지는 않다. 그러면 더 이상 지금처럼 글을 쓰진 못할 것 같으니까. 적어도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자신의 몫을 다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인간만은 되지 않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책임감마저도 돈으로 퉁치는 멋없는 인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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